반FTA 전파 릴레이 회견 ‘논리전’
협상장 앞 정부주장 조목조목 반박
집회 대신 대국민 설득 작업 공들여
전종휘 기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16일 범국민대회 개최에 이어, 17일엔 부문별로 ‘릴레이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설득작업을 벌였다.
이날 오전 10시 협상장인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앞에서 첫 목소리를 낸 건 ‘보건의료 대책위’와 ‘지적재산권 대책위’다. 이들은 회견에서 “의약품 협상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특허권 5년 연장만 수용해도 최소한 한국 국민이 5년 동안 5조8천억원에서 6조9천억원의 약값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며 정부 주장을 차근차근 반박했다.
이들은 또 쇠고기 개방에 대해 “한-미 양국 정부는 뼈는 안 되지만 뼛조각은 된다든가, 뼛조각이 발견된 상자만 반송한다는 등 꼼수로 수입 위생조건 완화를 꾀하고 있다”며 “30개월 미만 소의 뼈없는 살코기만 들여온다는 현재의 기준도 결코 안전한 기준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시청각·미디어 분야 공동대책위’는 미국이 요구하는 대로 공영방송에 대한 재정지원 박탈과 영화·애니메이션에 대한 방송쿼터 완화 등이 이뤄지면 문화의 다양성과 방송의 보편성에 심각한 해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발언에 나선 신학림 언론노조 위원장은 “모든 콘텐츠 시장이 개방되면 우리 언론계도 바로 죽을 것”이라고 했고,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도 “우리의 얼을 책임지는 방송 등 시청각 미디어를 산업이라고 보고 상업적으로 판단해 협상에 임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날 30분 단위로 같은 장소에서 계주를 하듯 열린 회견의 마지막은 ‘영화인 공동대책위’가 장식했다. 이들은 오전 11시에 연 회견에서, 오는 3월18일 국제적으로 발효되는 문화다양성 협약을 우리 국회와 정부가 비준하지 않고 있는 것을 비판하면서 “이 협약의 정신에 어긋나는 스크린쿼터 축소 정책과 방송시장 개방 정책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마이크를 잡은 배우 문소리씨는 “파리 문화다양성 국제회의에 참석해보니 문화다양성을 위해 미국과 싸우는 한국에 격려가 쏟아져 뿌듯했는데, 자유무역협정으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정지영·김경형·김대승 감독과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 등도 자리를 함께했다.
단체들이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공중전’에 치중한 이유는 협상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우리 쪽에 불리한 협상 진행 내용이 속속 드러남에 따라 논리적 반박과 설득 작업이 한층 수월해진 탓으로 보인다. 또 기자회견은 집회와 달리 경찰에 별도로 신고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단체들로선 이점이다.
이원재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상황실장은 “정부가 여전히 비공개로 ‘묻지마’ 협상을 하고 있어 여러가지 의혹이나 문제를 계속 제기할 것”이라며 “3월이 시한이라 앞으로는 대정부 전면 투쟁도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