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한미FTA ‘이미’ 타결됐었다, 그런데 왜? 초점 ’48시간 협상 연장’의 전모

한미FTA ‘이미’ 타결됐었다, 그런데 왜?  
  [초점] ’48시간 협상 연장’의 전모  

  2007-04-01 오전 10:14:51    
  
  4월 1일 0시 현재 한미 FTA 협상이 마감시한이라던 ’3월 31일 새벽 1시’를 넘겨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계속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협상장 안팎과 양국 정부와 국회, 그리고 미 업계로부터 흘러나온 소식들을 모아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재구성해 본다.
  
  새벽 1시: 한미 양국 정부, 한미 FTA ‘先타결 後합의’ 결정
  
  3월 31일 새벽 1시경. 한미 양국 정부는 이날 오전 7시경 한미 FTA 타결을 선언하고, 몇 가지 미(未)합의 쟁점들은 이틀 간 더 협의하기로 최종적으로 합의했다. 이른바 ‘선(先)타결 후(後)합의’라는 변칙적인 타결 방식.
  
  ’후합의’ 대상으로는 △미국 측 자동차 관세와 한국 측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의 ‘빅딜’ 내용 △한국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완화를 약속하는 방식 문제 △쌀 의무수입쿼터를 확대하라는 미국 측 요구△투자자-국가 소송제(ISD)의 적용 예외 대상에 부동산 정책과 조세 정책을 넣을지 여부 등 4가지 핵심 쟁점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섬유, 무역구제(반덤핑), 의약품 관련 일부 쟁점들도 이 후합의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았던 것으로 전해지나 실제로 포함됐는지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밖의 다른 모든 쟁점들에 대해 한미 양측은 이미 협상을 끝낸 상태였다.
  
  따라서 이날 아침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선타결 후합의’ 방식으로 한미 FTA가 사실상 타결됐다는 내용을 보도한 것은 이때까지의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 결과적으로 ‘대형 오보’를 낸 셈이 됐지만, 그 당시까지만 해도 가장 정확한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앞서 30일 오후 청와대 측에서 “협상 타결 후 한두 가지 쟁점은 추후 논의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흘린 것이나, 스티브 노튼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직접 기자실을 찾아와 “협상은 30일 자정까지만”이라고 못 박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거짓말이라고 보기 힘들다.
  
  협상 타결은 한국 측이 먼저 ‘협상을 타결하고, 미합의 쟁점들만 이틀 간 더 논의하자’고 최종 제안을 던지고 미국 측이 이 제안에 동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단, 미국 측은 이런 식의 협상 타결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미 의회 세입세출위원회(위원장 찰스 랭글 민주당 의원)와 산하 무역소위원회(위원장 샌더 래빈 민주당 의원) 의원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새벽 5시: 미 의회 ‘선타결은 불가…차라리 협상시간 더 준다’
  
  새벽 2시경. 한미 양국 협상단은 미 의회의 최종 승인을 기다리며 ‘한미 FTA 타결’을 선언할 채비에 들어갔다. 이 시각 노무현 대통령은 협상이 타결된 것으로 알고 잠자리에 들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협상 상황에 대해 실시간으로 보고 받고 있는 것으로 돼 있었다.
  
  새벽 5시경. 미 의회가 보내온 답은 놀랍게도 ‘노(No)’였다. 미국의 한미 FTA 관련 핵심 의원들은 한미 FTA가 ‘선타결 후합의’ 방식으로 마무리될 경우 “위험한 선례(dangerous precedent)”가 될 수 있다며 차라리 협상 마감시한을 연장해 주겠다고 지침을 전했다.
  
  찰스 랭글 의원은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동의할 경우 패스트트랙(Fast-track, 현행 패스트트랙의 이름이 무역촉진권한[TPA]) 마감시한과 관련해선 자유재량(leeway)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미 업계는 한미 FTA 협상이 이틀간의 협상 연장 시간마저도 넘겨 더 오래 지속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내다봤다.
  
  새벽 6시경. 한미 양국 협상단은 결국 미 의회의 지침대로 48시간 시한부 협상 연장에 들어가기로 했고, 이런 사실이 노무현 대통령의 한미 FTA 라인에 전해졌다. ‘협상 연장’이라는 소식을 전해들은 취재진은 극도의 혼돈과 피로를 느끼며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의 공식 발표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오전 7시 30분. 김현종 본부장 대신 브리핑룸에 나타난 김종훈 한국 측 협상 수석대표는 “한미 FTA 협상을 48시간 연장하기로 했다”고 공식으로 선언했다. 한미 FTA 결렬이라는 소식을 고대하며 거의 한 달째 단식을 하고 있던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에게 이 소식이 전해졌으며, 천정배 의원과 김근태 의원도 단식을 계속할 채비에 들어갔다.
  
▲ 김종훈 한국 측 협상 수석대표는 31일 오전 7시 30분 브리핑에서 “진실한 노력을 다해 왔다”는 말 외에는 협상이 연기된 배경에 대해 함구했다. ⓒ연합뉴스  

  협상단도 헷갈려…언론은 ‘아노미’ 상태
  
  그날 밤 한국 측 협상가들의 발언이 제각기 엇갈렸던 것도 바로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나온 것. 협상가가 보기에 따라 협상은 타결이기도, 교착이기도, 혹은 연장이기도 했다.
  
  한 협상가는 “협상이 결렬될 가능성이 50%가 넘는다”고 말했고, 다른 협상가는 “그래도 오전에는 협상 타결이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협상가는 “협상 마감시한을 넘겨 이틀 정도 더 협상할 것”이라는 정확한 예언을 하기도 했다.
  
  이들 발언들을 한꺼번에 전해들은 기자들이 이날 밤 극도의 혼란에 휩싸인 것은 당연지사. <한국일보>는 ‘한미 FTA 협상, 벼랑 끝 대치’라는 가장 정확한 보도를 내보냈으나, 협상 연기라는 공식 발표가 난 오전 7시 30분 직전까지만 해도 오보가 아닌지 초조해 했다는 후문이다.
  
  다음날 아침 각기 다른 신문을 통해 각기 다른 한미 FTA 협상 소식을 전해들은 시민들은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워 했다.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한미 FTA 베이비’ 탄생 전야는 이렇게 ‘이틀 후’를 기약하며 끝났다.
  
  후(後)합의 쟁점은 무엇이었나?
  
   ◇ 미국 측 자동차 관세와 한국 측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의 ‘빅딜’ 내용
  
  한미 FTA가 넘어야 할 가장 높은 벽으로 남아 있다. 미국 측은 ‘승용차 관세철폐 3년 이내, 픽업트럭 관세철폐 10년 이내’라는 양보안을 제시하는 조건으로 ‘자동차 부문의 모든 철의 장막을 제거하라’며 80여 개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이 요구사항에는 △자동차 관세(8%)의 즉시 철폐 △배기량 기준 세제의 철폐 및 자동차 관련 기타 세제의 단일화 △한국만의 인증과 환경기준 등 포기 △외제차에 대한 소비자 인식 제고 등이 포함됐다. 즉, 미국 측이 자국 자동차의 대한 수출에 방해가 된다고 지목하는 우리나라의 제도 및 법령 80여 개를 ‘일괄’ 폐지해야 한다는 것.
  
  노 대통령은 원래 이 같은 미국 측 제안을 받으려고 결심했으나, 어떤 이유에선지 ’80여 개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려면 승용차 관세철폐가 3년 이내에서 즉시로 바뀌어야 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는 후문이다.
  
  이와 별도로, 한국 측 협상단에서는 “2.5%밖에 안 되는 미국의 자동차 관세, 안 없어지면 또 어떠랴”는 발언이 흘러나오고 있다.
  
   ◇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완화의 약속 방식 문제
  
  노무현 대통령은 쇠고기 문제에서는 한국 측이 양보하는 것으로 최종 결심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택한 방식은 ‘구두 약속’. 미국 측이 요구하고 있는 ‘서면 확약’보다는 강도가 약해 양측이 추가적인 논의를 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 쌀 시장 개방 문제
  
  ”협상에서 쌀 이야기는 없다”는 민동석 농림부 차관보의 공식 발언과 다르게 아직도 농업 분과의 협상에서는 쌀 의무수입쿼터를 추가로 확대하라는 미국 측 요구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WTO 쌀 협상에서 미국이 할당 받은 쿼터에다 ‘한미 FTA용 쿼터’를 더 얹어달라는 것.
  
  ”쌀만은 지키겠다”고 선전해온 한국 정부는 이 같은 미국의 끈질긴 요구에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의 적용 예외 대상에 부동산 정책과 조세 정책을 넣을지 여부
  
  투자자-국가 소송제 적용 대상에서 부동산 정책과 조세 정책을 넣어달라는 한국 측 요구에 대해 미국 측은 협상 막바지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어떻게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안개 속이다.
  
  미국 내에서도 이런 한국 측 요구에 대한 입장은 제각각이다. 30일(현지 시각) 미국 통상전문 매체 <인사이드 유에스 트레이드>에 따르면 셰브론 등 미 정유업계는 이 같은 요구를 들어주는 것을 극구 반대했다. 하지만 재계 일부는 이런 한국 측 요구를 지렛대로 삼아 관세 협상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낼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와는 별도로 전미주의회협의회(NCSL)는 지난 주 수전 슈워브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한미 FTA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 자체를 아예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노주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