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에게도 이렇게는 못 한다”…농성장에 갇힌 이랜드 노조원들
의료진 진입까지 경찰이 막아
2007-07-15 오후 11:40:48
방화문이 굳게 닫혀 있고, 그 위에 철봉으로 땜질을 했다. 이렇게 출입이 통제된 공간에 사람이 갇혀 있다. 게다가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도 땀이 줄줄 흐르는 한여름이다.
안에 있는 이들의 건강이 염려스럽다. 그래서 검진을 위해 의사가 들어가려 애썼으나, 3시간이 넘도록 들어갈 수 없었다.
농성장 통로 방화문을 닫았다. 그 위에 철봉으로 땜질했다
얼핏 들으면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과 같은 재난 현장의 이야기를 떠올릴 법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초복 더위로 잔뜩 달아오른 15일 낮 서울 마포구 홈에버 월드컵몰점과 서울 서초구 뉴코아 강남점에서 벌어진 일이다.
홈에버 월드컵몰점은 이랜드 그룹 노조 조합원 150여 명이 16일째 점거농성을 하고 있는 곳이다. 뉴코아 강남점은 같은 노조 조합원 150여 명이 8일째 점거농성을 하고 있는 곳이다.
경찰은 이들 농성장의 출입구를 차단했다. 외부인의 개입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여기에 한술 더 떠 회사 측은 지난 11일 농성장으로 연결되는 통로의 방화벽을 내리고 그 위에 쇠파이프와 쇠사슬을 가져다 댄 뒤, 땜질을 했다. 오직 하나의 통로만 남아 있는데, 그곳은 경찰이 막고 있다. 농성장 안의 조합원들은 방화벽이 닫히던 소리, 그리고 그 위에 용접봉으로 땜질하던 소리를 생생히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땀에 찌든 피부에 소름이 돋는다.
다시 나흘이 지났다. 낮 최고 기온이 29도였던 15일, 농성장 내부는 이미 거대한 감옥이 됐다. 에어컨 가동은 오래 전에 중단됐고, 물은 화장실에서 받아 써야 한다. 밀실에 오랫동안 갇혀 있어야 했던 조합원들은 공포와 불안에 질려 있다. 폐쇄공포증이 있는 몇몇 조합원들은 농성장을 떠났다. 그나마 냉장고에는 전기가 통하는 게 다행이다. 하지만 야채와 생선에서는 이미 썩은 내가 나고 있다.
의료진 진입 막은 경찰 “환자 있으면 농성풀어라”
”만약 화재라도 나면….”하는 걱정이 드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환자가 생기면….”하는 걱정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건강 사회를 위한 약사회·치과의사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에 소속된 의료진 10여 명이 농성장을 찾았다. 이들이 먼저 찾은 곳은 홈에버 월드컵몰점. 15일 오전 10시였다.
하지만 그들은 농성장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외부인의 출입을 허용할 수 없다”며 경찰이 막았기 때문이다. 다른 의료진과 함께 이곳을 찾은 우석균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보건연합) 정책실장은 “환자의 진료까지 막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경찰은 “농성자 중에 환자가 있으면 밖으로 나오면 될 것이 아니냐”며 의료진의 진입을 막았다.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차단된 상태에서 무턱대고 농성장 밖으로 나오라는 이야기는 실상 농성을 풀라는 것과 같다.
이랜드 노조, 소방법 위반으로 회사 고발 및 인권위에 긴급구제 요청
그런데 세 시간 가까이 의료진과 대치하던 경찰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방송사의 취재진이 도착한 직후였다. 그제서야 의료진은 농성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농성장 밖에서 이런 소식을 접한 한 조합원은 “우리에 가둬 둔 짐승에게도 이렇게 대하지는 못 한다”라며 울먹였다.
한편 노조 측은 화재가 난 것도 아닌데 회사 측이 방화문을 내린 것에 대해 소방법 위반 혐의로 회사를 고발할 예정이며, 국가인권위원회에도 긴급구제를 요청할 계획이다.
성현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