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홈에버는 ‘방광염’에 걸렸다”

“홈에버는 ‘방광염’에 걸렸다”
15일 보건협회 홈에버 월드컵몰점 방문… 경찰, 의료진 출입조차 가로막아
    안윤학(sunskidd) 기자    


▲ 15일 보건협회 소속 의·약·한의사 10여명이 점거 농성 16일째를 맞은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점을 찾았다.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무료 진료했다.  
ⓒ 오마이뉴스 안윤학

“현재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감기몸살, 소화불량(위염), 근골격계 질환 등으로 고통 받고 있다. 특히 계산원 모두 방광염을 앓고 있어 깜짝 놀랐다. 화장실 다녀올 겨를도 없이 6~8시간을 서 있다 보니 병이 생기는 것이다.”

우석균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보건연합) 정책실장은 홈에버 월드컵몰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를 깊이 우려했다.

대형 할인마트 노동자들은 방광염뿐만 아니라 늘 서서 일하기 때문에 퇴행성 관절염 등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거기에 홈에버 노동자들은 15일 현재, 16일째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어 감기·위염 등으로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

그렇다고 농성장을 떠나 집에서 쉴 수도 없다. 다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경찰은 지난 11일부터 매장을 봉쇄하고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안으로 들어가지도,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농성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15일 오후 건강 사회를 위한 약사회·치과의사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보건연합 소속 5개 단체가 서울 상암동 홈에버를 찾았다. 내·외과·치과의사, 한의사, 약사 등 10여 명이 노동자들을 무료로 진료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들 의료진의 출입마저 막아 빈축을 샀다. 의료진은 2시간 30분 동안 농성장 밖에서 경찰과 실랑이를 벌인 뒤에야 겨우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비정규직 모두 방광염 앓아… 농성장 내 노동자 건강 악화

홈에버 매장은 이날만큼은 종합병원으로 탈바꿈했다. 이상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은 “경찰이 농성장을 봉쇄했다는 소식을 듣고 노동자들의 건강이 걱정돼 홈에버를 찾았다”고 동기를 밝혔다. 이 사무국장은 노동자들의 건강상태와 관련, “근골격계 등 평소 직업병이 악화된 상태”라면서 “피로·스트레스로 감기·소화불량을 호소하는 노동자가 많다”고 전했다.

일부 노동자들은 간이침대에 누워 침을 맞았다. 주로 무릎과 허리, 그리고 어깨 쪽 통증을 호소했다. ‘민중과 함께하는 한의계 진료모임 길벗’ 소속 한의사 김휘수씨(남)는 “하루 종일 서서 반복적인 일을 하다 보니 무릎, 허리 등이 성할 리 없다”고 우려했다.

일부는 치과 의사의 상담을 받은 뒤, 치간칫솔·치실·소독약 등을 받아들었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소속 김현성(남)씨는 “노동자들의 구강 상태가 청결하지 못한데다 피로가 누적돼 잇몸 염증 등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장비가 없어 치료할 수 없는 게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임시 약국에서는 감기약, 소화제 등이 동이 날 정도였다.

우석균 정책실장은 의·약·한의사들의 진료 모습을 살펴본 뒤 “30대 젊은 여성까지도 방광염에 시달리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고 털어놨다. 우 실장은 “방광염을 앓다 보면 신장염까지 병세가 악화된다”면서 “홈에버는 피를 쏟게 만드는 회사”라고 꼬집었다.

실제 계산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아무개(여·39)씨는 소변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다. 김씨는 “병원 치료를 반복해 오고 있지만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비정규직을 대량 해고해 일손이 부족하다”면서 “때문에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교대할 사람이 없어 방광염이 심해진 듯하다”고 덧붙였다.


▲ 치과의사 김현성씨가 노동자의 치아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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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협회 측 “오히려 우리가 힘 얻고 간다” 격려

이들 의료진은 오후 1시께부터 2시간가량 노동자들을 진료한 뒤 또 다른 농성장인 서울 뉴코아 강남점으로 향했다. 이상윤 사무국장은 진료를 마친 뒤 노동자들에게 “한국은 ‘아줌마’들이 이끌어 간다”면서 운을 뗀 뒤 “이 싸움이 사회를 바꾸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을 확신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이 사무국장은 “우리가 오히려 힘을 얻고 간다”고 심정을 밝혔다.

한의사의 치료를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 이임순(여·54)씨는 “좌측 머리·어깨·허리·무릎 등이 모두 아팠는데 침을 맞고 나니 조금 나은 듯하다”면서 “농성장을 찾아 준 의사들이 백의의 천사 같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이씨는 “찬 바닥에 누워 자다보니 감기몸살이 걸리는 등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면서 봉쇄를 풀지 않고 있는 경찰을 비판했다.

한편 애초 보건협회 측은 이날 오전 10시 홈에버를 찾았으나 경찰이 농성장 방문을 금지한 탓에 2시간 이상을 허비해야 했다. 이 사무국장은 “물도 끊고 전기도 끊어버린 농성장에서도 의료진의 방문을 막은 적은 전례가 없다”고 경찰을 비난했다.

경찰 측은 “진료가 필요한 환자는 밖으로 나와 진찰을 받을 수 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보건협회 측은 “밖으로 나오라는 얘기는 점거 농성을 풀라는 얘기”라면서 경찰의 대응 자세를 비판했다.

경찰이 농성장 출입을 두고 ‘불평등한 대우’를 하는 것도 도마에 올랐다. 실제 경찰은 <오마이뉴스> 기자가 현장을 방문하려 하자 “인터넷 매체는 출입을 할 수 없다”면서 입구를 막아섰다. <인터넷저널>의 김오달 기자도 출입이 금지됐다. 그러나 KBS·MBC 등 방송사 기자들의 출입은 자유로웠다.

보건협회 측 한 관계자는 “보건협회와 경찰의 실랑이가 길어져 일부러 방송사를 부른 뒤 경찰을 설득하니 문이 쉽게 열리더라”면서 경찰을 비판했다. 경찰은 “일부 인터넷신문 기자들이 농성장에 숙식하고 있기 때문에 방문을 금지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