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채권 허용 “동네치과 다 망한다”
[기획] ‘의료채권 발행법 제정’ 무엇이 문제인가
2007년 10월 23일 (화) 강민홍 기자 rjunsa@gunchinews.com
보건복지부가 공공의료기관을 제외한 민간비영리법인에서 의료기관 설립, 부대사업, 의료장비 및 시설 확충 등을 위해 자기 자본의 4배까지 의료채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채권 발행법』 제정안을 지난 18일 입법예고 했다.
복지부는 의료채권 발행 허용을 단지 “의료기관이 유동성 위기와 신규자금 소요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는 영리법인 허용에 버금가는 악효과를 낼 것으로 판단된다.
의료연대회의 정책위원장인 한양 의대 신영전 교수는 “의료채권 발행 허용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의료상업화 정책의 핵심이고, 사실상 ‘주식화 전 단계’라는 점에서 적극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지에서는 의료채권 발행 허용이 실제 우리나라 의료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간략히 분석한다.
의료채권 발행의 의미
우선 의료채권 발행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보통 의료기관이 시설투자를 위해서든, 장비 구입을 위해서든 자금이 필요할 경우 금융기관의 대출을 받게 된다. 그러나 채권 발행이 허용되면, 굳이 대출을 받을 필요 없이 채권을 발행하면 된다.
금융기관 대출이든 채권발행이든 다 같이 채권자한테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그것이 갖는 의미는 같지 않다. 채권발행과 금융기관 대출의 차이점을 짚어보자.
금융업계의 한 전문가는 “보통 금융기관 대출은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지만 채권발행은 시설투자를 위한 것”이라며 “따라서 채권의 만기가 금융기관 대출 만기보다 긴 것이 일반적이고 때문에 채권 발행 허용은 병원 규모를 키우기 쉽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그렇지 않아도 대형병원들이 몸집 불리기에 혈안이 돼 있는 현 상황에서 채권 발행 허용은 이를 더욱 부채질 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게 될 경우 대형병원은 갈수록 대형화되고, 상대적으로 동네의원들은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한양 의대 신영전 교수는 “채권 발행은 의료기관간 자본 경쟁을 심화시키고, 장기적으로는 대형자본 병원의 독점력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개원의의 상대적 어려움이 심화되고, 결국 일차의료체계 붕괴 및 대형자본에 귀속화가 가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파산 병원 속출할 듯…
또한 금융업계의 전문가는 “금융기관을 통해 대출을 받는 경우에는 자기 자본 이상을 대출받기 어려운데, 법안은 자기자본의 4배까지 채권을 발행할 수 있게 해 놨다”며 “그러나 채권발행을 통해 자금조달을 하면 레버리지 현상으로 병원의 리스크가 증가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의료채권을 자기자본의 4배까지 발행할 수 있다는 이면에는 이자 부담이 4배까지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럴 경우 의료기관은 수익의 변화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채권 발행 허용에 따른 자본 경쟁 심화로 시설, 장비의 무분별 확대가 진행될 것이고, 경쟁에서 진 기관은 파산의 길로 접어들고, 이러한 경쟁이 고용 불안정 등의 문제를 야기시킬 것이라는 것이 신영전 교수의 지적이다.
특히, 제정안은 채권발행 허용 대상에서 공공의료기관과 개인법인을 제외하고 있어, 민간병원처럼 대규모 자금동원이 어려운 공공병원의 경쟁력은 더욱 급격히 약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경영 ‘자본의 요구’에 귀속
무엇보다 채권발행 허용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점은 병원의 경영이 결국 자본의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는 것이다.
금융업계 전문가는 “채권발행(채무증가)이 증가하면 채권자의 입김이 세질 가능성이 크고, 채권자들은 자신들의 채권을 확보하기 위해 병원의 경영상태를 알고자 할 것”이라며 “경영상태가 드러나면 자연스럽게 수익성 위주의 경영이 정착될 가능성이 크다”고 피력했다.
병원 경영에 수익성이 떨어지면 채권자들은 채권을 처분하려 할 것이고 그러면 채권가격이 시장에서 떨어지게 될 것이며, 그 결과 나중에 다시 채권을 발행하기가 힘들어지게 된다. 때문에 높은 이윤을 요구하는 채권자가 병원 영리의 적극적인 주체로 변신할 수밖에 없다.
특히, 발행된 채권은 시장에서 유통이 가능하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채권은 상환 기간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는 금융기관 차입과 유사하지만 양도가 가능하다는 면에서 주식에 가깝다”며 “즉, 채권 발행은 이미 주주자본주의로 가는 첫 걸음을 떼는 것과 같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채권이 시장에서 유통된다는 것은 이미 채권을 발행한 주체가 시장에 발을 어느 정도는 담그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채권을 발행하기 위해선 금융감독기구의 감독을 따라 신용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신용평가사들은 평가 기준을 ‘시장주의에 얼마나 잘 적응하고 있는가’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국내외 투기성 자본의 유입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라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