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어린이에게 진료비를 다시 물린다고? / 조홍준
왜냐면
6세 미만 면제 시행 2년도 안돼 되돌리고
환자 식비도 50%로 올려 물린다는데
참여정부의 보장성 80% 약속은 어디갔나
보험료 올리는게 건강양극화 해소하는 길
정부가 6살 미만 어린이가 입원할 때 내던 진료비(본인부담 진료비) 면제 제도를 시행한 지 2년도 안 돼 다시 되돌리고 이와 함께 식대도 환자에게 20%만 물리던 것을 50%로 올린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절약’한 돈은 예방접종이나 노인진료비 등 다른 서비스를 확대하는 데 사용한다는 것이다. 진료비를 내지 않으니 입원을 하지 않아도 될 가벼운 병으로 ‘불필요한’ 입원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주장도 곁들인다.
어린이 입원에 대한 본인부담 진료비를 올리는 이유는 소위 ‘도덕적 해이’, 즉 불필요한 서비스 이용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의도한 대로 나타나지 않는데 서비스의 필요성과 상관없이 모든 서비스 이용이 줄어든다. 문제는 사회적 취약계층인 소득이 낮은 계층의 의료 이용이 선별적으로 줄어든다는 점이다.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는 진료비가 더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건강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는지도 불명확하다. 진료비 부담 때문에 의료서비스 이용을 포기해서 결국 병을 키우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에게 본인부담 진료비를 받지 않는다고 이들이 ‘공짜’로 입원하는 건 아니다. 초음파 등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검사와 상급병실료 등은 지금도 내야 한다. 입원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입원한 아이는 결국 부모가 간호할 수밖에 없다. 정말 불필요한 입원이 크게 증가했다면 이런 의학적 이유가 아닌 ‘사회적 입원’이 일어난 이유를 찾아보는 것이 더 합리적인 접근일 것이다.
병원에 입원한 사람에게는 병원이 식사를 제공해야 한다. 당뇨환자에게 제공하는 것과 같이 ‘특별한’ 식사가 아닌 보통 식사도 환자의 건강에 아주 중요하다. 환자가 내야 하는 진료비에서 식대가 차지하는 비중도 무시 못할 정도다. 식대가 다른 진료보다 덜 중요하다고 주장할 근거가 과연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본인부담이 낮다고 하루에 다섯끼를 먹는 사람은 없다. 일단 입원한 사람에게 ‘도덕적 해이’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정부의 정책의지다. 참여정부는 임기 중 건강보험 보장성을 80%로 높이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향한 로드맵을 제시한 바 있다. 임기를 3개월 남겨둔 현재, 65%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장성에 대해 사과는커녕 오히려 시계추를 과거로 돌리려 하고 있다. 윗돌을 빼서 아랫돌을 괴는 일은 이제 그만 하자.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 수준은 지금보다 훨씬 더 높아져야 한다. 그래야 의료비로 파산하는 사람이 없어지고, 어려운 사람들도 진료비 부담의 어려움 없이 공평하게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보장성을 높이려면 건강보험 재정이 어려워지고 결국 보험료를 올려야 하는데 결국 국민만 어려워지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재정이 더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단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수가를 낮추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하지는 말자. 진료비를 절약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필요한 재정을 충당할 수 없다. 어려운 사람에게는 보험료를 더 내는 것이 진료비를 부담하는 것보다 유리하다. 보험료는 소득이 높을수록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들이 이 문제 해결에 나서라.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권영길 후보는 말할 것도 없고, 이명박 후보도 ‘영유아 의료보험 본인부담금 전액면제’를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정부가 자신들이 내건 공약을 훼손하려고 하는 이때, 자신들이 내건 공약이 ‘빈말’이 아니라면 대통령 후보들과 정당들이 나서서 이를 막아야 한다.
조홍준/서울 강남구 대치3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