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국민 건강권마저 성장 지표로 보나 / 김창보
영리의료법인 도입·민간의보 활성화 위해
국민건강 정보를 민간에 넘길 수 있다?
건강권을 경제성 종족변수로 여긴 발상
건강불평등·인권 침해 감수할 국민은 없다
지난 10일 기획재정부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7% 성장능력을 갖춘 경제’라는 제목의 ‘2008년 실천계획’은 전체적인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라고 보인다. 감세와 규제완화를 중심으로 어떻게든 ‘6% 내외’라는 가시적 성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한 이명박 대통령 특유의 ‘밀어붙이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 뼈대다. 그 안에 물가인상이라는 부작용은 경제성장이라는 지상목표 아래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분위기다. 결과중심, 성과중심의 전형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같은 맥락에서 이명박 정부는 경제성장을 위해 국민의 건강할 권리,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권리 정도는 국민들이 좀 참아도 될 문제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성장을 위한 기획재정부의 계획서 안에는 의료서비스 산업화를 적극 추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기획재정부는 경기회복과 경상수지 흑자를 위해 영리의료법인을 도입하고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하는 등 규제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여러 시민사회단체들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팔아 경제성장을 하자는 것이냐’는 거친 반발을 사고 있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짚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먼저 이와 같이 국민의 건강권과 의료이용권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정책을 보건복지가족부도 아닌 경제부처가 주도적으로 내놓았다는 점이다. 경제부처가 밝힌 영리의료법인 도입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그리고 이를 위한 국민건강보험의 정보를 이윤추구를 위해 사업하는 민간보험회사에 넘길 수도 있다는 식의 사고는 ‘경제성장’이라는 지상목표에 사로잡힌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영리의료법인을 도입할 경우 의료서비스를 돈벌이 수단화하는 경향을 더욱 강하게 할 것이어서 의료서비스의 상업화를 부추기며, 마찬가지로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보험회사와 결탁하게 되면 대단히 상업적인 의료체계가 성립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처럼 공공병원이 취약하고 민간병원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는 가난한 자들이 의료서비스 이용에서 차별을 받게 될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 건강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를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보관돼 있는 국민들의 의료이용 및 질병, 치료에 대한 정보를 민간보험회사에 넘기겠다는 발상도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인권을 무시할 수도 있다는 오만한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질병과 의료이용, 그리고 치료내용에 대한 정보는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중요한 개인정보로 철저한 관리를 하고 있다. 따라서 아무리 국가라고 하더라도 특수한 목적에서 극히 소수의 정해진 사람들만이 정보를 다룰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사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있는 국민의 정보 역시 건강보험 재정의 효율적 사용과 의료서비스 제공의 적정성을 평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국민건강보험을 관리하는 보험자라고 하더라도 그 목적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되며, 일정기간이 지나면 국민건강보험공단 역시 그 정보를 삭제해야 한다.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매년 통계연보를 발간하고 있으며,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다. 따라서 개인식별이 가능한 의료이용 및 질병 관련 정보는 더는 보관할 필요도 없으며, 보관해서도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정부는 오히려 지금이라도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국민의 허락 없이 5년 이상 지난 개인식별이 가능한 자료를 삭제할 것을 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 정부는 거꾸로 이와 같은 민감한 국민의 정보를 국민의 동의도 없이 민간보험회사에 상품개발을 위해 내어줄 수 있다는 발상을 하고 있다. 보험회사는 ‘상품개발’에 사용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겠지만, 만일 이와 같은 개인정보가 보험 마케팅에 사용될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심지어 부모의 병력이 자식의 보험가입 여부에 차별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획재정부가 ‘경기회복’을 위해 추진하겠다던 영리의료법인 도입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는 결국 차별과 배제, 그리고 의료이용의 불평등-건강 불평등을 더욱 가속화할 뿐이다. 아무리 경제성장에 좋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이 이런 정책에 동의할지는 의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결국 ‘경기회복과 경제성장’을 먼저 고려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순리대로 문제를 풀지 않고 국민의 건강할 권리를 경제발전에 종속적으로 두고 고려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순리대로 풀어야 한다. 방법은 있다. 만일 이명박 정부가 국민의 건강할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한편에서 경기회복을 이루고 싶다면, 가장 효율적인 보험시스템인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과감히 줄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건강불평등이 해소될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이 사회적 임금으로 작동해 국민소득 향상과 경기회복에 긍정적인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 특히 보험의 경우 규모의 경제가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분야라는 점에서 전국민이 가입된 국민건강보험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국가의 입장에서도 유리한 점도 있다.
국민들은 당장 눈앞의 성과를 위해 물가인상을 감내하거나 건강불평등을 무시할만큼 바보가 아니다. 단기간의 성과보다는 튼튼한 사회안전망 위에서 꾸준한 발전을 기대한다. 이명박 정부의 첫발,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김창보/시민건강증진연구소장
기사등록 : 2008-03-17 오후 06: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