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농식품부 “SRM, 유럽기준 따랐다” 설명, ‘쇠고기 재협상’ 3가지 이유

‘부실 쇠고기협상’ 해명도 엉터리
농식품부 “SRM, 유럽기준 따랐다” 설명
EU와 달리 내장도 수입허용 ‘이중잣대’
한-미 다른 기준 추궁에는 “잘 모르겠다”
한겨레         김수헌 기자
        
» 진보신당 당원들이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집 앞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조건의 재협상을 촉구하며 정 장관 얼굴 사진 위에 ‘사퇴’가 적힌 붉은 카드를 붙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미 쇠고기 협상의 ‘치명적 결함’들이 잇따라 드러나는 가운데, 농림수산식품부가 논란이 된 부분에 대한 해명마저 엉터리로 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 분류 기준을, 미국 보건당국과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기준보다 완화하기로 합의한 데 대해, 15일 저녁에만 무려 세 차례나 설명자료를 냈다. 농식품부는 이 자료에서 “유럽연합(EU) 기준에 따라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의 기준을 정했고, 미국에서는 못 먹는 부위가 한국에 들어올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농식품부는 유럽연합 기준 가운데 유리한 부분만 부각시키고, 수입 위생조건 문구도 일방적으로 해석하는 등 책임 모면에 급급해하고 있다.

■ ‘유럽연합 규정’, 정부 유리한 것만 해명 농식품부는 새 수입 위생조건의 광우병 특정위험물질 분류가 미국의 기준과는 일부 차이가 있지만 유럽연합과는 거의 같은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유럽연합의 경우 척주 가운데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에서 제외되는 부분은 우리 수입 위생조건과 같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숨겨져 있다. 우리 수입 위생조건은 모든 연령에서 내장 가운데 회장원위부(소장 끝부분)만 광우병 특정 위험물질로 정했지만, 유럽연합은 십이지장부터 직장 그리고 장간막까지 위험물질로 지정하고 있다. 곧, 위만 제외하고 내장 전체를 식용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연합 기준을 제대로 따랐다면, 한국인이 즐겨먹는 곱창은 광우병 특정 위험물질로 분류돼 수입할 수 없다. 따라서 정부는 자기들에게 유리한 부분은 유럽연합 기준을 인용하고, 불리한 부분에 대해서는 못 본 척하는 ‘이중 잣대’를 들이댔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광우병 경험이 더 풍부한 유럽연합의 규정을 가지고 협상에 임했다”는 정부의 해명도 말이 안 된다. 정부가 인용한 유럽연합의 광우병 특정 위험물질에 대한 기준은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 4일 뒤인 지난달 22일에 새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즉 척주 가운데 광우병 특정 위험물질에서 제외되는 부분을 과거에는 24개월 이상 소에 대해 적용했지만, 새로 고친 규정에서는 30개월 이상으로 바꿨다. 따라서 정부가 정말 유럽연합 기준을 참고했다면, 30개월 미만의 소에 대해서도 척주의 일부는 광우병 특정위험물질로 규정해야 한다.

■ 미국서 못 먹는 부위, 한국 안 들어온다? 농식품부도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정한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의 부위가 미국 자체 기준과 일부 다르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농식품부는 “미국 국 내용과 한국 수출용은 같고, 따라서 미국에서 식용으로 금지된 제품이 국내로 수출될 우려는 없다”고 주장한다. 수입 위생조건 1조에서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은 미국 육류검사법에 기술된 소의 모든 식용부위에서 생산된 제품을 포함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 식용으로 금지된 부위가 국내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조항의 ‘포괄적 규정’과는 별도로 9조에서는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에 대한 구체적 범위를 정하면서 문제의 부위가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정부 해명을 인정하더라도, 의문은 남는다. 미국이 왜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에 대해 자신들과는 다른 기준을 한국에 강요해 관철시켰느냐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식용으로 금지된 품목이 한국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미국과 똑같은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의 기준을 한국에도 적용하면 될 텐데 굳이 다른 기준을 정했는지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는 지금까지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쇠고기 재협상’ 3가지 이유
한겨레         김수헌 기자
        
»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미 쇠고기 협상 내용 중 15개 조항의 전면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 수입위생조건’ 장관 고시를 열흘 정도 연기했지만, 막상 재협상 말고는 국민적 저항을 피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우선 ‘한국 정부의 검역주권을 인정하겠다’는 미국 쪽 성명을 두 나라 정부 사이에 구속력이 있는 문서로 주고받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 80% 이상이 요구하는 수입위생조건의 재협상에 대해서는 여전히 거리를 두고 있다. 야권과 시민사회 단체, 관련 전문가들은 새 수입위생조건은 졸속협상의 결과물이자 검역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것으로 밝혀진 만큼 반드시 재협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협상을 해야 하는 대표적인 이유 세 가지를 짚어본다.

① 광우병 생겨도 수입해야…한국 독자적 수입중단 못해 검역주권 침해

■ ‘주권적 권리’ 양도 미국에서 추가로 광우병이 발생해도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수입 중단조처를 취할 수 없도록 규정한 수입위생조건 5조는 명백한 검역주권 침해다. 세계무역기구(WTO) 위생ㆍ검역협정(5조7항)은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하더라도 국민건강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으면 수입을 잠정 중단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런 중대 주권을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5조를 통해 미국과 국제수역사무국(OIE)에 고스란히 넘겨줬다. 최승환 경희대 교수(법학)는 “수입위생조건은 조약이 아닌데도 주권을 제약하는 요소를 담고 있으므로 헌법상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국회 동의 없이 장관이 고시하려면 재협상을 해서 5조를 삭제하든지, 아니면 수입을 금지할 수 있다는 내용을 우리가 수입위생조건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② 사료금지조처 되레 후퇴… 30개월 이상 소 해제 전제조건 치명적 착오

■ 잘못된 전제로 연령 제한 해제 광 우병 위험이 높은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입하는 전제조건인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의 세부 내용이 애초 우리 정부가 예상했고 국민들에게 설명한 수준보다 대폭 후퇴했다. 미국은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지 1주일 만인 지난달 25일 연방 관보에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를 공포했다. 그런데 2005년 미국 식품의약청(FDA)의 입안예고안에서는 사료로 사용이 금지됐던 ‘도축검사에 불합격한 30개월 미만 소의 뇌와 척수’도 사료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송기호 통상전문 변호사는 “미국이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를 공포한 시점을 볼 때, 미국은 협상 이전에 이미 사료 조처의 구체적 내용을 다 정해 놓았을 것”이라며 “때문에 미국이 그 내용을 협상 중에 알려주지 않았다면 ‘기망’에 의해 협상을 체결한 것이므로 연령 제한 해제는 당연히 파기돼야 한다”고 말했다.

③ 미국선 못먹는 부위 수입…‘미 학교급식 금지 부위’도 수입 길 터놔

■ 미국은 안 먹는데 우리는 먹어 미 국은 안 먹는데 우리는 먹어 ] 30개월 이상 소의 척주 가운데 경추의 횡돌기와 극돌기, 흉추·요추의 극돌기, 천추의 정중천골능선 등의 부위는 미국에서는 광우병 특정위험물질로 분류해 식용을 금지하는데, 새 수입위생조건에서는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에서 제외해 수입을 허용했다. 미국 정부가 자국 국민들에게는 안전을 고려해 먹지 못하게 하는 부위가 국내 식탁에는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또 정부는 지난해 9월 작성한 ‘미국과의 협상 시 대응 논리’에서 “미국은 학교급식에서 선진회수육(advanced meat recovery product: 뼈 손상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살을 긁어내거나 깎아낸 고기)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새 수입위생조건은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로 만든 것이라면 선진회수육도 수입 가능하도록 했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기사등록 : 2008-05-16 오후 08:00:14 기사수정 : 2008-05-16 오후 11:5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