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광우병’ 불똥 ‘의료민영화’로 번질라 ‘노심초사’
복지부, “건강보험 민영화 없다”.. ‘의료민영화’는?
김삼권 기자 quanny@jinbo.net / 2008년05월21일 18시18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에 이어 민심의 화살이 이명박 정부의 각종 민영화 정책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모든 의료기관이 국민건강보험 가입자에 대해 의무적으로 진료하도록 하는 제도) 폐지 논란 등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보건복지가족부가 “건강보험 민영화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당연지정제 유지 방침을 재차 밝히며 ‘여론 진화’에 나서는 분위기다.
복지부는 20일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일부 공기업의 민영화 방안과 건강보험은 전혀 무관하다”며 “건강보험의 민영화는 검토한 바도 없으며, 그럴 계획도 없다”고 해명했다.
복지부는 이날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당연지정제 폐지, 미국식 민영보험 도입, 건강보험 민영화 등 건강보험제도와 관련해 확인되지 아니한 여러 정보가 무차별적으로 유통되고 있다”며 광우병 ‘괴담’에 이은 ‘의료민영화 괴담론’을 꺼내들었다.
의료민영화, 복지부-기획재정부 서로 ‘딴소리’
그러나 이날 복지부는 ‘건강보험 민영화는 없다’는 원칙적인 입장만 밝혔을 뿐, 의료민영화와 관련된 뜨거운 감자인 영리병원 허용, 민영의료보험 활성화 문제 등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특히 복지부가 ‘건강보험 민영화’ 문제에 대해 ‘발끈’하고 나섰지만,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에서는 지속적으로 딴 목소리를 내고 있어 복지부의 주장을 그대로 신뢰하기만은 어려워 보인다.
당장 이날 복지부는 “민영의료보험 상품개발 등을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한 가입자 개인의 진료정보를 민영보험사와 공유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정부가 민영의료보험 활성화를 위해 질병정보를 민영보험사와 공유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을 ‘괴담’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복지부의 주장과 달리 기획재정부는 지난 3월 10일 대통령 업무부고를 통해 영리병원 도입 검토와 민영의료보험 활성화 추진을 위해 공·사보험 정보공유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공·사보험 간 개인정보 공유와 관련된 보험업법 개정은 복지부가 아닌 기획재정부의 소관이다. 즉 복지부가 ‘개인정보 공유는 없다’고 선언했지만, 관련 법률 개정 등의 실질적 권한은 기획재정부에 있기 때문에 복지부의 선언은 ‘립 서비스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보건의료단체연합은 21일 성명을 통해 “복지부와 기획재정부 중 어느 부처가 이기는지를 지켜봐달라는 게 복지부의 입장이냐”고 반문하며 “만일 복지부가 국민들의 보건복지를 앞장서서 챙기는 부처이기 때문에 개인질병정보를 민영보험회사에게 넘기지 않겠다는 본연의 임무를 자임한다면 복지부는 기획재정부를 포함한 정부입장으로도 공식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복지부, “‘민영의료보험 활성화’와 ‘건강보험 민영화’는 상관없다”?
한편, 복지부는 민영의료보험 활성화와 관련해 “일부 국민들이 ‘건강보험 민영화’와 ‘민영의료보험 활성화’를 오해하고 있다”며 “민영의료보험 활성화는 병실료 차액 등 공보험인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서 공보험을 보충하기 위한 차원에서 민영의료보험의 적정화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현재 추진되고 있는 민영의료보험은 공보험 ‘보충형’에 한정하고 있고, 때문에 ‘건강보험 민영화’와 ‘민영의료보험 활성화’는 관계가 없다는 게 복지부의 주장이다. 복지부는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라는 용어보다 ‘건강보험과 민영보험의 보완관계 및 명확화’라는 표현이 보다 정확하다고 본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나 복지부의 설명과 달리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은 지난 13일과 20일부터 환자들이 부담한 실비용 대부분을 보장해주는 ‘실손형 민영의료보험’ 상품 판매에 본격 돌입했다. 두 회사가 내놓은 상품은 질병의 종류와 상관없이 환자 개인이 실제 부담한 치료비(건강보험 본인부담금+건강보험 외 비급여)의 80%를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같은 ‘실손형 민영의료보험’ 도입과 관련해 그간 보건의료단체들은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을 악화시키고, 의료양극화를 확대시킬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며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촉구해왔다.
보건의료단체 “정부, 보장성 확대 노력은커녕 민영의료보험 확대만”
실손형 보험 구매 계층은 공보험 보장성 확대의 필요성에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설령 공보험의 보장성이 줄어들더라도 이들은 실손형 보험으로 그 빈 자리를 보장받기 때문이다.
또 실손형 보험업계로서는 공보험의 보장성이 확대될수록 이윤을 창출할 시장이 줄어들게 된다. 반대로 공보험의 보장성이 줄어들고, 그 영역을 민영보험으로 채워야지만 보험업계는 ‘남는 장사’가 되는 셈이다. 예컨대 현재 64% 수준에 불과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면, 환자 입장에서는 굳이 실손형 보험을 따로 구매할 이유도 없고, 당연히 실손형 상품을 판매할 시장도 줄어들게 된다.
이 지점에서 그간 당연지정제와 전국민건강보험 의무가입제 폐지 ‘괴담’이 떠돌았다. 보험자본 입장에서는 당연지정제와 건강보험 의무가입제가 자신들의 시장을 넓히는 데 있어 큰 걸림돌일 수밖에 없고, 이명박 정부가 인수위 시절부터 이 ‘걸림돌’을 제거할 움직임을 보여 왔던 것.
이와 관련해 보건의료단체연합은 “현 정부는 40%에 이르는 본인부담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더욱 확대시키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은커녕 오히려 전혀 엉뚱한 방식으로 해결을 하고 있다”며 “즉 40%를 국민이 각자 알아서 민영의료보험으로 해결하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어 “당장은 건강보험 60 대 민영의료보험 40으로 시작하지만 신의료기술이 속속 등장하고 확대되는 현실에서 갈수록 민영의료보험의 영역이 커지게 되고 그 비율은 곧 역전될 것”이라며 “결국 의료의 이용은 건강보험에 가입이 아닌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실손형 보험 도입 등 민영의료보험 활성화에 따른 의료양극화를 경고했다.
“영리병원 허용, 당연지정제 폐지와 비슷한 효과 가져올 것”
한편, 복지부는 의료민영화 문제와 관련해 영리병원 허용 문제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고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의료 민영화 정책의 핵심은 영리병원의 허용과 민영의료보험의 활성화이고, 영리병원의 허용은 당연지정제 폐지와 비슷한 효과를 가져온다”며 “복지부가 의료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다면, 속히 영리병원 허용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지 밝히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영리병원으로 인한 의료비 폭등도 건강보험의 재정에 무리를 줄 것이고, 민영의료보험 활성화 역시 건강보험을 무력화시키려는 것이기 때문에 이 두 가지가 허용되면 결국 건강보험 제도는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병원협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영리병원이 허용이 되면 영리병원으로 전환할 의사를 밝힌 병원이 무려 80%나 된다”며 “기껏 공공병원이 10%에 불과한 현실에서 건강보험증만으로 충분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과연 얼마나 있을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영리병원 허용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끝으로 “정부가 의료 민영화에 대한 국민들의 주장이 정말로 괴담이라 여긴다면 당장 영리병원 불허 방침과 민영의료보험 활성화가 아니라 건강보험만으로 안심하고 의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성 강화 계획을 내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