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달라진 것이 뭐지? / 우석균
» 우석균/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검역주권을 찾았다고 한다. 안전조처를 강화했다고 한다. 정부는 5월19일 발표를 통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이 크게 바뀐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달라진 것이 뭔지 국민들은 모르겠다. 막상 양국이 교환했다는 서한을 아무리 뜯어봐도 달라진 것을 못 찾겠다.
국민이 정부에 항의한 것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안 먹는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왜 수입하느냐였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식품으로 아예 금지된 광우병 발생국의 30개월 미만의 뇌·눈·척수·등뼈 등의 광우병 특정 위험물질(SRM)을 왜 수입해야 하는지, 왜 미국에서는 안 먹고 유럽에서는 금지된 곱창을 우리는 수입해야 하는지, 미국 학교 급식에서도 제외된 이른바 선진회수육(AMR)을 왜 한국은 수입해야 하는지, 이에 대해 국민은 정부에 항의해 왔다. 그런데 정부의 대답은 30개월 이상의 등뼈와 꼬리뼈 일부를 뺐으니 안전성이 확보된 거 아니냐란다.
‘검역주권을 찾아왔다’고 하는데 내용을 보니 그 내용은 우스울 정도다. 국민의 요구는 애초에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을 중단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심지어 광우병이 발생해도 수입 중단 조처도 못하는’ 협정문 그 자체였다. 국민이 검역주권의 포기라고 항의한 것은 광우병 발생지위 변화가 없는 한 수입 중단을 못하게 한 조항(5조), 도축장 승인권을 미국 정부에 넘겨준 조항(6조), 수입 도축장 취소권한을 포기한 조항(8조), 전수검사를 제한한 조항(23조), 수입검역 중단을 하지 못하게 한 조항(24조) 등 검역주권을 전면 포기한 협정문 자체였다는 말이다.
게다가 ‘수입 중단 조처’라는 단어는 서한문에는 있지도 않다. 있는 것은 가트(GATT) 20조와 세계무역기구(WTO)의 위생검역 협정 언급뿐이다. 이 조항을 확인한 것이 검역주권의 회복이라고? 이 권리는 대한민국이 국가인 이상 어느 때나 가지고 있던 권리다. 이 조항이면 지금 당장에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을 선언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가 지금 수입 중단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수입 중단 조처의 정당성을 입증할 과학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입증할 수 있는 모든 과학적 증거를 근거로 합의한 문서가 바로 국민들이 협상 무효를 주장하고 있는 바로 그 ‘한-미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협정문이다. 그런데 이 협정문에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아무리 발생해도 광우병 통제국이라는 국제수역사무국이 부여한 지위가 바뀌지 않는 한 수입 중단을 선언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한·미 양국이 과학적 근거로 합의한 협정문이 있는 이상 가트나 위생검역 협정상의 권리조항을 아무리 들먹여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더욱이 미국 정부는 서한에 “금번 위생조건은 미국산 수입 쇠고기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적절한 기준과 절차를 포함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라고까지 밝혔다. 미국 정부는 앞으로 광우병이 발생해도 한국 정부의 쇠고기 수입 중단 조처를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즉 미국 정부는 광우병이 발생해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권리가 한국 정부에 없음을 서한에 못박아 놓기까지 한 것이다.
‘뭐가 달라졌지?’라고 묻는 것이 필자만 아닐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알고 있던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정부만 나서서 모르쇠로 일관해 왔다. 정부의 추가협의 내용이 실제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면 대다수 국민은 정부에 사기당했다는 느낌일 것이다. 사기당한 국민이 제기할 문제는 이제 쇠고기 수입조건만이 아니다. 이제 이명박 정부가 직면할 것은 국민의 이명박 정부의 정부 자격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우석균/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