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시론국민과 정말 소통하고 싶은가

[시론]국민과 정말 소통하고 싶은가
입력: 2008년 05월 23일 18:23:44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언제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2년 반 전 한국사회를 온통 혼란으로 몰고 갔던 이른바 ‘줄기세포 사태’ 당시 그 사건의 한 조연급이 주인공에게 한 말이다. 그리고 결국 줄기세포는 단 한 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거짓말과 기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는 사실도 백일하에 드러났다. 나는 그 사태를 통해 ‘거짓의 몰락’을 확실히 터득했다.

쇠고기 수입 밀어붙이기 일관

한달 넘게 지속되고 있는 이번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정 사태에서도 수많은 허위와 기만이 잇따르고 있다. “광우병은 전염병이 아니다”라거나 “미국의 사료 정책이 강화되었다”라는 등의 대번에 드러날 초기의 거짓말부터 “미국 정부가 대한민국의 검역주권을 문서로 보장해 주었다”라는 엊그제의 기만까지 정부는 스스로 신뢰를 깎아먹는 일을 거듭하고 있다.

나는 이번 사태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값 싸고 질 좋은 미국산 쇠고기를 국민에게 공급하는 것”이 이번 협정의 목적이라면, ‘소통의 부족’ 탓이든 ‘국민들의 무지’ 때문이든 절대 다수가 반대하는데도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그 까닭을 모르겠다.

광우병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것이 매우 많지만, 그동안의 연구로 밝혀진 것도 적지 않다. 광우병은 프리온 단백질이라는, 20여 년 전에 새로 밝혀진 병원체에 의해 발생하는 ‘전염병’이다. 1985년 영국에서 처음 광우병이 발견되었을 때, 영국정부와 일부 학자들은 소에게서 사람에게로 절대 옮겨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11년 뒤 광우병은 철벽이라던 ‘종간 장벽’을 뛰어넘어 사람에게서 발생했다.

또한 증상을 나타내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 감염시킬 수 있는 ‘무증상 감염자’가 환자의 몇십 배나 되리라는 것이 광우병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지금까지 광우병 환자로 판명된 사람은 세계적으로 208명이지만, 몇천명 내지 1만명에 이르는 사람이 감염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비교적 잘 알고 있는 세균성 및 바이러스성 전염병들에서 병을 퍼뜨리는 데에 무증상 감염자의 역할이 매우 크다는 점을 생각하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광우병의 잠복기가 최소 5년에서 무려 몇십 년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이런데도 광우병이 몇 년 안에 사라지리라고 말하는 것은 희망사항일지는 모르지만 객관적 사실은 전혀 아니다. 위험을 과장해서도 안 되지만 축소, 은폐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는 것을 영국의 선례가 잘 보여준다. 영국은 가장 많은 희생자를 냈을 뿐만 아니라 몇십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생명과 경제적 실리를 모두 잃은 것이다.

국민 섬긴다면 재협상 나서야

잘 알려졌듯이 광우병은 치사율이 100%이며, 아직 치료법이 없다. 특별한 예방법도 없다. 의학적으로는 아직까지 속수무책인 것이다. 그렇다고 광우병을 피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광우병을 일으키는 변형 프리온이 들어 있는 쇠고기를 먹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30개월 미만의 살코기에도 병을 일으킬 정도의 변형 프리온이 있다는 주장도 있어 100% 안전을 보장할 수 없지만, 30개월 이상의 쇠고기와 30개월 미만의 위험 부위를 먹지 않으면 대체로 안전하다는 것이 학자들의 중론이다. 손으로, 또 마음속으로 촛불을 든 절대다수 국민들은 이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국민을 섬기는’ 정부라면 당연히 그러한 소박한 요구에 따라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 이것만이 거짓을 떨쳐내고 국민과 소통하는 길이다.

<황상익|서울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