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모르모트’ 제주도, 현실 직시하라”
[기고] 의료 관광의 환상을 버려라
2008-07-25 오후 12:10:04
제주도에 내국인에게도 영리병원을 허용해주자는 핵심 논리는 의료 관광 활성화이다. 제주도의 관광 자원을 활용하여 관광도 하고 질병도 치료할 수 있는 의료 관광(medical tourism)의 메카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2년 전 제주도가 특별자치도로 승격하면서 외국인 영리병원 설립을 법적으로 허용하였다. 외국인만이 설립할 수 있는 영리병원은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당연 지정제에서 제외된다.
1년 전 제주도는 2012년까지 10억 달러를 투자하여 영리병원과 휴양시설을 짓기로 미국 PIM-MD 병원과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1년이 넘도록 더 이상의 협상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계획이 취소되었는지는 알려지고 있지 않으나 10억 달러를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를 냉정히 고려할 때 현실화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위험을 감수한 대규모 외국 영리병원의 실현가능성에 비해, 내국인에게 영리병원을 허용한다면 상대적으로 의료 관광 산업을 용이하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영리병원이 의료시스템에 미칠 파장으로 인해,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에 설립될 외국인 영리병원의 성과를 확인 후에 내국인 영리병원 허용 여부를 결정하기로 해 추진이 보류되었다. 이것이 정권이 바뀌면서 다시 내국인 영리병원 허용이 급물살을 타게 된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영리병원을 허용해야할 이유로 전면에 내건 것이 경제를 위한 의료 관광 산업의 필요성과 제주도의 취약한 의료 인프라이다. 이것은 경제와 의료로 고통 받고 있는 제주도민에게 상당한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도가 구상하는 의료 관광 산업이 정말로 성공할 수 있는지 그 성과가 도민 살림살이에 보탬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이를 한번 따져보자.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의료관광 열풍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 열풍의 진원지는 최상의 의료 질과 고비용을 자랑하는 미국이 아니다. 인도,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와 같은 아시아 국가들이다. 기획재정부가 의료 관광 산업의 모델로 삼고 있는 나라도 이들이다.
미국은 가장 많은 의료관광 소비국이다. 미국에서는 치료를 받기 위해 해외로 떠나는 이들을 ‘의료피난민(america’s new refugees)’이라고 부른다(NEJM, 2006). 이런 의료피난민이 나타나는 이유는 미국의 치료가 아주 비싸기 때문이다. 전 국민의 15%가 완전히 무보험이며, 보험에 들어있더라도 상당수는 보장성이 취약한 부실보험으로 고통 받고 있는 상태다. 비싼 의료보험을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몇몇 중소기업은 노동자들이 치료받아야 할 경우 아예 해외에서 진료 받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즉 민영화된 의료 시스템의 부작용이 자국 국민들을 해외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유럽인들도 일부가 의료관광을 즐긴다. 이들이 의료관광을 하는 이유는 미국인들과 사뭇 다르다. 유럽은 미국과 달리 무상의료에 가까운 의료제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일부 단점도 있다. 비응급 수술인 경우에 대기시간이 길다. 보통 인공관절 수술의 경우 1년가량 대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부 유럽인은 수술을 빨리 받기 위해, 관광과 휴양을 동시에 즐길 목적으로 의료 관광을 한다. 이들은 대부분 인도로 간다. 인도는 유럽 의료 제도의 틈새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인도,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 등의 국가들이 미국과 유럽인을 대상으로 의료 관광을 활성화 시켰다. 이들은 미국과 유럽인들이 요구하는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먼저, 가장 큰 조건은 아주 저렴한 의료비이다. 인도의 의료비는 미국의 10%, 유럽의 20% 수준에 불과하다. 태국, 말레이시아도 미국의 30% 정도이다. 이들 국가들이 이렇게 매우 저렴한 의료비를 유지하는 데에는 의료 인력의 인건비 때문이다.
다음으로, 선진국 수준의 의료 서비스의 질이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이들 국가들의 영리병원은 미국과 유럽의 의료 서비스의 질과 차이가 없음을 자랑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들 영리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은 대다수가 미국에서 의사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미국에서 의사 트레이닝을 받은 덕택이다. 따라서 환자와의 의사 소통 능력도 아주 뛰어나 미국에서 진료 받는 것에 비해 아무런 불편을 주지 않는다. 인도의 경우 유럽 나라별로 모두 의사소통이 가능한 의료진을 갖추고 있다. 또 이들 병원은 국제의료기관 평가기구의 인증(JCI, ISO 등)을 받았다. 즉 병원들이 국제적 신뢰를 획득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특히 제주도에 영리병원이 들어서면 과연 이들 동남아 국가들과 경쟁에서 승산이 있을까? 결론은 별로 없어 보인다.
우선 제주도에 영리병원이 허용될 경우 들어서는 병원은 종합병원 수준의 규모가 아니다. 헬스케어타운 내에 계획되어 있는 영리병원은 사실 소규모의 전문병원들이다. 즉, 미용, 성형, 건강 검진, 치과 등과 같은 비급여 서비스에 불과하다. 그것도 아마 서울 강남의 몇몇 유명한 병원의 지점 형태로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들 병원이 제주도의 취약한 의료 인프라를 해결해 줄 리 만무하다. 이들 소규모 영리병원이 동남아의 유명 영리병원과 경쟁할 수 있다는 것도 난센스다.
이들 병원과 경쟁하려면 규모에 있어 서울의 큰 종합병원급 수준은 되어야 한다. 물론 그런 병원이 들어선다고 경쟁력이 확보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우선 동남아의 저가 의료비와 경쟁이 어렵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평균 인건비를 100으로 할 때 태국은 9.6, 인도는 1.4 정도밖에 안 된다. 현실적으로 경쟁이 불가능하다. 딱 망하기 십상이다.
결국 제주도가 영리병원을 허용해야 할 이유로 내세우고 있는 취약한 의료 인프라 개선이나 의료 관광을 통한 해외 환자유치는 실현성이 매우 낮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제주도에 영리병원이 들어서는 것이 제주도민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리병원이 허용이 되면 국내 병원들이 적극적으로 제주도에 진출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왜냐면 제주도에 들어선다고 해서 꼭 외국인들만 상대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즉, 주요 고객을 내국인으로 하면 될 일이다. 서울 강남의 성형, 피부과 고객을 제주도로 전환시키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영리병원을 통한 대규모 자금 조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병원 자본만 득을 보는 영리병원 추진을 제주도민은 결코 수용해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부와 제주도 역시 주민을 현혹하는 영리병원 추진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김종명/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