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오바마 시대 vs 이명박 시대<6> 오바마 시대, 과학기술 정책은?

“이명박, ‘나도 이건 오바마보다 잘 하고 있어!’”
[오바마 시대 vs 이명박 시대]<6> 오바마 시대, 과학기술 정책은?

기사입력 2008-11-26 오전 10:48:09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5일 “새로운 미국의 변화를 주창하는 오바마 당선인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를 제기한 이명박 정부의 비전이 닮은 꼴”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오바마 당선인의 등장은 미국의 변화의 신호탄이라고 받아들여진다.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불확실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의 첨병 역할을 하던 부시 대통령에 맞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과연 오바마의 개혁은 성공할 수 있을까?

<프레시안>은 ‘건강과대안’과 공동으로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주는 보건의료, 여성, 환경 등 사회정책을 중심으로 오바마 개혁의 비전과 한계를 짚어본다. 더 나아가 이런 오바마 개혁이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각종 사회정책과 얼마나 다른지 살펴볼 것이다.

‘건강과대안’(대표 조홍준 울산의대 교수)은 시민과 함께 건강과 관련된 온갖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지난 10월 18일 출범한 싱크탱크이다. 이들은 보건의료를 넘어 환경, 노동 안전, 사회적 약자의 건강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관련 기사 : “건강하고 싶다”…’촛불’ 열망 모은 ‘건강과대안’ 출범)

미국에서 오바마의 당선을 손꼽아 기다렸던 집단 중 하나는 과학자였다. 오바마는 부시 정권이 과학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접근했다고 비판하면서 자신은 증거와 사실을 기반으로 정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관점의 변화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연구비 증가도 예상된다. 오바마는 향후 10년 동안 수학, 물리학, 생명과학 같은 기초과학 분야의 연구비를 두 배 이상 늘리기로 약속했다. 심각한 경기 침체에 빠진 현 미국 상황에서 이런 공약이 얼마나 빨리 가시화 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부시와 사뭇 다른 정책을 표방한 오바마를 대하는 과학자들의 기대는 남다르다.

특히 오바마-바이든은 생의학 연구에 관심이 많다. 향후 5년 동안 암 연구 예산을 두 배로 늘리기로 약속했고, 당선 후 1년 안에 다양한 연방기구가 참여하는 HIV/AIDS 전략을 만들기로 했다. 미국 생의학 연구의 핵심 부서인 국립보건원(NIH)의 위상이 더욱 높아지고, 예산도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 오바마는 미국인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더 안전하고 저렴하게 약을 구입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제약회사들과 약값 협상을 다시 벌일 계획이며 연구 목적의 국가 유전자 은행을 만들어 신약 개발에도 나설 계획을 가지고 있다. 물론 오바마가 연구비 증액만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은 아니다. 배아연구 및 인간 유전학 연구에 대한 예산을 늘리는 대신 이에 대한 감독도 강화하게다고 공약했다. 예컨대 유전자 은행을 만들면서 동시에 연방 차원의 유전자 차별 금지법을 제정하겠다는 것이다.

오마바의 과학 정책 중 국내의 관심을 끌고 있는 분야 중 하나가 인간배아 연구에 관한 정책이다. 오바마 당선 이후 국내 줄기세포 관련 기업의 주가가 급등한 것은 미국 정책에 대한 세간의 기대를 잘 보여준다. 부시 행정부는 2001년 8월 이후에 생성된 인간배아 줄기세포에 대한 연방 지원을 제한해 왔다. 게다가 오바마 등이 참여해 발의했던 ‘줄기세포연구증진법’에 거부권을 행사해 이해당사자들의 원성을 샀다.

그러나 오바마는 인간배아 줄기세포에 대한 연방 지원을 금지한 행정 명령을 폐지할 계획이어서 조마간 연방 자금이 인간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지원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의 대학, 기업, 주 정부 차원 등 민간 영역에서는 복제를 포함한 배아줄기 세포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결정은 배아연구에 대한 연구비 증가라는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논란이 되는 연구에 정부가 정당성을 부여할 것이라는 점에서 더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줄기세포 연구에서 배아연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황우석 사태 이후 더욱 규제 완화

그렇다면 인간배아 줄기세포 연구의 한국 상황은 어떠한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 생명윤리법은 처음 제정 당시부터 인간배아를 이용한 줄기세포 연구를 허용해 왔기 때문에 미국의 정책 변화가 우리나라의 줄기세포 정책에 미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이미 국내에서는 성체는 물론이고 잔여배아를 이용한 연구, 연구용 목적의 배아 생성, 체세포 복제 등 거의 모든 인간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결코 규제가 강한 나라가 아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미국이나 한국 모두 갈수록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황우석 사태라는 과학사에 남을 사건을 겪었음에도 오히려 인간배아 줄기세포 연구 규제는 더 느슨해졌다.

황우석 사태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인 2006년 5월 정부는 ‘줄기세포 연구 종합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약 7~8위로 평가되는 우리의 기술 경쟁력을 2015년에는 세계 3위로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원천 기술 확보(기초 연구 및 국제 협력), 체계적 임상 연구(임상 강화를 통한 실용화 촉진), 인프라 구축(줄기세포은행 설립), 생명윤리 정착(제도 정비 및 홍보)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재 해매다 약 350억 정도의 예산이 줄기세포 연구에 지원되고 있다.

정부의 줄기세포 정책은 생명윤리법 개정에서 더욱 분명이 드러났다. 현 시점에서 체세포 복제 허용은 문제가 많다는 1기 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보고서에도 불구하고 복제는 여전히 허용되고 있다. 수많은 난자가 필요해 당장 시도하기 쉽지 않은 복제 문제는 그렇다고 치더라고 배아 줄기세포 연구 범위를 대폭 확장한 것이 눈에 띈다. 연구 범위를 희귀 난치병 연구에서 질병 치료 일반으로 확장했으며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의 사전 심의를 받도록 했던 것을 기관윤리심의위원회(IRB)의 심의만 통과하면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미국의 인간배아 줄기세포 지원 정책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국립연구위원회(NRC)가 제정한 ‘인간배아 줄기세포 연구 가이드라인>이 그 기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가이드라인은 IRB 이외에 독자적인 감독위원회 설치를 권고하고 있다. 인간배아를 다루는 만큼 세심한 심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규정이 미국의 연방정책 보다 더 느슨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여성으로부터 난자를 얻는 방법도 논란이 될 듯하다. 난자 매매를 방지하기 위해 난자 제공자에 대한 건강 검진, 빈도 제한, 실비 보상 등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두고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라고 말하긴 애매하다. 이런 조항이 없는 것 보단 낫겠지만 불임클리닉 전반에 대한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 난자 부분만을 떼 벌률에 집어넣은 것은 연구 목적의 난자를 합법적으로 공급받기 위한 측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실비 보상 금액도 난자 매매시 받았던 금액과 유사하게 책정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난자를 팔았던 대부분의 여성들이 경제적 약자였던 면을 고려하면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우리가 미국이나 영국의 사례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지점은 다른 곳에 있다. 연구 심의과정의 투명성이다. 영국이 최초로 배아 복제와 이종 간 이식을 허용했고,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30억 달러를 투자한다라는 소식이 아니라 그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배아복제 연구 포기를 선언한 이언 윌머트는 영국의 연구용 난자 부족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명한 적이 있다. 영국 불임크리닉에서 잔여 난자와 배아를 얻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의 불임클리닉은 정부의 지침을 어기면 면허까지 취소당할 수 있으며 배아 연구의 허용 조건도 까다롭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사례도 보자. 캘리포니아 재생의학 연구소는 접수된 연구 프로젝트의 제목, 내용, 과학적 평가 결과 등을 비교적 상세히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따라서 관련 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주정부의 공공자금이 어떤 연구에 쓰이는지 쉽게 볼 수 있고, 연구비를 받거나 받지 못한 연구 신청서의 내용, 과학적 평가와 같은 구체적인 내용도 볼 수 있다. 연구 성과물 홍보 중심으로 구성된 우리나라와 홈페이지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작년 국내의 C 연구소가 캘리포니아 주정부에 연구비를 신청했다가 미국 언론과 시민단체들로 부터 비판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런 절차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임상시험의 확장과 의료 관광

앞으로 지켜봐야 할 또 다른 포인트는 정부의 줄기세포 임상시험의 확대 정책이다. 황우석 박사에 대한 열광이 절정에 달했던 2004년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의약품 임상시험 계획 승인 지침’ 개정을 통해 줄기세포 임상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임상 효과가 객관적으로 관찰되지 않거나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인 되지 않은 경우에도 IRB를 거치면 합법적 임상시험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현재는 주로 성체 줄기세포를 중심으로 약 15개 기업이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는데, 앞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과거 불법 임상시험으로 소송까지 갔던 사례를 되돌아보면 임상시험의 실질적 유용성 논란보다는 환자의 권리 부분이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 당시 환자의 문제제기가 있자 기업, 의사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했고 정부는 실태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 특히 줄기세포 임상시험은 기업의 영리 활동의 일부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정부의 관리 감독이 꼭 필요한 영역이다. 정부는 현재 임상에 참여한 환자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공개해야 한다.

줄기세포 임상 확대 정책은 현 정부의 의료 관광 활성화와도 연결될 수 있다. 의료 관광 초기에는 성형수술과 같은 우리가 비교 우위에 있는 영역을 중심으로 의료 관광이 진행되겠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국제자유도시의 영리병원을 중심으로 줄기세포 관광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사실 세포치료 관광은 인도, 중국, 싱가포르와 같은 나라에서 적극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다. 선진국에 비해 기초연구가 부족한 상황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한 방안으로 느슨한 규제에 기초해 임상시험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기사 포함 스탠더드 룸 4500달러, 디럭스 룸 5000달러, 현재 인도의 뭄바이 지역의 세포치료 관광 가격이다.

황우석 사태 이후 연구 윤리 지침이 시행되고,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IRB도 강화되고 있다. 적지 않은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벌써부터 학계 일부에서는 ‘동의서’와 ‘IRB’가 윤리성을 담보하기 위한 전가의 보도로 쓰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충분한 논의와 사전 준비 없이 특정한 문제를 IRB로 넘기는 것은 자칫 연구의 절차적 정당성만을 강화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체를 다루는 생의학 연구는 환자와-연구자 개인의 관계로만 환원될 수 없다. 일방적 홍보가 아닌 관련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며 중요한 사안들은 충분한 공론화가 진행된 후에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김병수 건강과대안 연구위원·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