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vs 의사 권리 ‘닭과 달걀 논쟁’
국가인권위, 의료기관 이용자 권리 보호 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 결과 발표·토론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지만 주고받은 의견은 첨예한 대조를 이뤘다. 국가인원위원회에서 17일 열린 ‘의료기관 이용자 권리 보호 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 결과 발표’ 토론장에서다[사진].
울산의대 가정의학과 조홍준 교수가 인권위로부터 연구용역을 받아 진행한 보고서를 발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된 이날 자리에서는 각계각층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토론의 운을 뗀 이는 대한병원협회 서석완 기획조정실장. 서 기조실장은 “의료공급자 입장에서 볼 때 의료기관 이용자의 권리 보장이란 건 생소한 개념”이라며 “토론 참석 요청을 받았을 때 솔직히 곤혹스러웠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 보고서에서 제시된 개선방안 중 (가칭)개인건강정보보호법, 의료분쟁조정법, 의료기관 이용자 안전에 관한 법을 확충, 현 체계를 보완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 “대한민국 의사들은 건강보험 때문에 30년간 손발이 묶여 있는 처지”라면서 “이상의 법이 제정되면 의사들의 눈까지 가리는 격”이라고 완강한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따라서 별도의 법을 제정하기보다는 현행 관계법령을 개정 또는 유지해야 한다는 게 병협의 입장이다.
반면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이주호 전략기획단장은 “보고서 내용에 전반적으로 동의한다”며 개선방안에 찬성하는 의견을 보였다.
이 단장은 “보고 내용을 보니 이용자 권리 보호 차원에서 노조가 더 큰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제시한 개선안도 훌륭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한의사협회 안양수 기획이사는 “낮은 수가 등 절박한 의료계 현실에서 환자 권리만 내세우기엔 상황이 좀 그렇지 않냐”면서 “3시간대기, 3분 진료라는 박리다매식 시스템으로 죽어나는 건 결국 의사”라고 보고서 내용에 반박했다.
안 이사는 “한국 의사는 미국에 비해 5.6배, 일본이나 유럽에 비해 3배 많은 업무량을 소화하느라 다른 데 신경 쓸 여력이 없다”며 “한쪽만 ‘해피’한 상황이 아닌 만큼 사안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백혈병환우회 안기종 대표는 “의사, 복지부 모두 어렵다 해도 결국 피해자는 환자”라며 “소비자 운동에 비해 의료소비자 운동이 극히 드문 이유는 환자에게 대항할 힘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지적, 의협의 입장과 대조적 견해를 보였다.
한편 환자의 권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심도 있는 견해도 제시됐다.
중앙대 의과대학 이원영 교수는 “소비자로서의 환자 권리와 기본권으로서의 환자 권리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면서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기본권으로서의 환자 권리를 논의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의견을 들은 조홍준 교수는 “환자의 권리가 신장되면 의사의 권리는 침해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며 앞으로 환자의 권리는 점진적으로 좋아질 것이며, 그 과정에서 인권위가 중간 테이블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발표한 보고서는 이날 제시된 의견을 토대로 일부 수정·보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