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기고 국민을 사지로 모는 의료민영화

[기고] 국민을 사지로 모는 의료민영화 / 김종명  


» 김종명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팀장  

  

  
촛불 앞에 수그러들었던 ‘의료 민영화’ 바람이 다시 일고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병원 영리법인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입을 맞춘 듯 조·중·동은 영리병원에 대한 온갖 찬가를 늘어놓고 있다. 100만 촛불 앞에 의료 민영화는 없다던 대통령의 사과가 불과 몇 달 전이었는데 말이다.
영리병원을 해 달라거나, 해 줘야 한다는 쪽의 주장은 간단명료해 보인다. 병원을 영리병원으로 만들면 병원들이 경쟁을 하게 되어 서비스 질이 높아지고, 의료비는 싸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쟁력 있는 의료 서비스가 새로운 성장동력이자 일자리 창출도 가능한 ‘산업’이라는 것이다. 그럴듯해 보이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는 그와 같은 논리는 전혀 성립되지 않는다.

의료 민영화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에서조차 의료 서비스의 질이 좋은 이른바 우수 병원 20위 안에 영리병원은 없다. 모두 비영리병원들이다. 또한 미국 영리병원에 대한 캐나다 심장전문 의사의 연구를 보면, 영리병원의 사망률이 비영리병원 사망률보다 2% 높았다. 영리병원의 경우 더 많은 수익을 남기려고 진료비를 높게 부과하지만 실제 환자 치료에 드는 비용은 줄이려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영리병원 신장 투석의 경우 투석시간을 줄이거나 비숙련 의료인력을 써 사망률이 더 높게 나타나는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다. 병원의 인건비 비중은 50% 정도로 제조업에 비해 월등 높다. 병원이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의 질이 환자 1인당 의료 인력에 달렸기 때문이다. 영리병원이 이윤을 더 올리려면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 결국 고용이 줄어들고 서비스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보다 의료비는 더 높다. 영리병원은 비영리병원과 달리 병원 바깥으로 투자자에게 이윤배분을 하는 병원을 말한다. 건강보험이 있건 없건 영리병원의 ‘합법적인’ 목적은 환자진료가 아니라 돈을 벌어 주주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다. 당연히 의료비는 폭등하고 부당 청구나 과잉진료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영리병원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도 현실성이 없다. 선진국 경우만을 보더라도 영국·노르웨이와 같은 공적 의료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들이 미국보다도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이 정규직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보건의료 고용인력은 의료보험이 민영화된 까닭에 환자들의 보험행정업무를 처리하는 단순행정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영리병원이 들어서도 일자리가 늘어날지조차 의문이다. 이미 병상이 과잉인 상태에서는 새로운 영리병원이 설립되기보다는 기존의 병원들이 영리병원으로 전환되거나 인수·합병을 통한 영리병원화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인건비를 줄이려는 동기가 작용해 기존 병원에 취직해 있던 노동자들마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해고 되거나,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사회복지 분야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려한다면 영리병원이 아니라 사회복지 예산을 대폭 늘려 질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게 맞다.

이명박 정부에 다시 한번 알려주고 싶은 사실은, 보건의료는 전형적으로 시장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 시장실패(market failure) 영역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시장 논리로만 바라보고 한국 보건의료제도 전반을 뒤흔들 정책을 세우려 한다. 경제위기 시기에 재벌병원에만 유리하고 의료비 폭등을 불러올 이런 의료 민영화 정책을 내놓은 것을 보면 이 정부는 국민 대다수보다는 ‘소수’만을 대변하는 정권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