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세상읽기 알 수 없는 침묵의 나라 / 우희종

[세상읽기] 알 수 없는 침묵의 나라 / 우희종

  
대만의 잘나가던 여당 의원의 섹스 스캔들이라는 선정적인 제목이 온라인의 세계 뉴스로 떠 있다. 한 국회의원이 미모의 피아니스트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면서 시시콜콜한 내용과 사진까지 곁들여져 있다. 대만의 섹스 스캔들과 같은 흥밋거리에 불과한 내용마저 국내에 자세히 보도되는 것을 보니 당혹감마저 생긴다. 지금 대만에서는 연일 길거리 데모와 정권 퇴진 운동이 한창인데, 왜 그런 것은 보도되지 않고 겨우 한 의원의 섹스 스캔들이나 보도되는가.
대만 정부는 최근 뼈 있는 쇠고기와 창자 등 지금의 한국과 유사한 조건으로 미국 쇠고기 수입을 결정했다. 물론 국제적 입지가 약한 대만으로서 다른 경제적 요인을 고려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였겠지만, 수입조건이 그렇다 보니 대만 국민들이 흥분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대만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 수입조건을 보면 한국이 미국과 처음 맺은 수입조건이 아니라 작년 촛불을 든 수많은 인파가 물세례와 폭력진압을 견디고 좌빨로 매도되면서 겨우 얻어낸, 수정된 수입조건과 유사하다.

그러나 문제는 지난해 우리를 그렇게 혼란스럽게 했던 사안임에도, 대만의 미국 쇠고기 수입과 관련된 정권 퇴진 운동 상황은 국내에 전혀 전해지지 않으면서도 흥밋거리는 즉시 보도된다는 점이다. 대만 사태가 국내에 전해지지 않는 구체적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정부의 국내 언론 길들이기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지난 국정감사 때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문화방송>의 ‘피디수첩’을 지목하면서 피디수첩의 광우병 관련 방송 피해가 수조원에 달한다는 주장을 했다. 정당한 정부의 수입협상을 피디수첩이 왜곡 과장했기 때문에 수많은 인파가 참여한 촛불시위가 발생했다는 논리다.

하지만 지금 정부 퇴진을 외치고 있는 대만에서의 사태를 보면 피디수첩과 같은 탐사보도 없이도 국민과 언론이 하나 되어 정부의 실책을 지적하고 정권 퇴진을 요구한다. 광우병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보아도 일어날 상황이 자연스럽게 발생했을 뿐이다. 따라서 지금도 피디수첩을 공영방송의 책임 운운하며 소송까지 걸어 괴롭히고 있지만, 진실은 졸속협상과 소통을 거부한 정부로 인해 촛불이 있었고, 그 촛불사태의 책임 회피를 위해 피디수첩을 희생양으로 만들고 마녀재판하고 있는 것임이 명확해진다. 더욱이 이는 미디어법 개정 등 정부가 시도하고 있는 언론 장악에서 국내 언론에 대한 경고장 구실도 한다.

또한 한국 같으면 제약회사는 정부 부처의 눈치 속에 침묵하는 대표적 집단이다. 그런데 대만인의 높은 MM 유전자 비율을 지적하며 공개적으로 대만 정부를 비판하고 있는 사람 중에는 제약회사의 신약개발 책임자까지 있다. 광우병 관련 국제학회에서 단 한 번도 발표해보지 못한 이들을 광우병 전문가로 탈바꿈시킨 한국 정부의 왜곡된 주장 중에 MM 유전자가 광우병 취약성과 관련없다는 내용도 있었다. 대만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보면서 국내의 침묵을 생각해본다.

일본 관광객 사고에서 안전수칙은 선진화를 달성하는 데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조건이라고 말하면서 ‘사상자가 다수 발생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며 유가족과 피해자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조의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너무도 기다리던 마음 따뜻한 말을 한 이가 도심 한복판의 용산 참사 희생자와 이천 물류 화재사건으로 사망한 외국 근로자에게는 침묵한다. 흐르는 국민의 눈물 앞에 침묵하는 정부. 섹스 스캔들이나 보도하면서 국내 언론이 만들어내는 이 정권에 대한 침묵은 너무도 깊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