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G20′에 뒤통수 맞은 MB정부, ‘헷갈리네’

‘G20′에 뒤통수 맞은 MB정부, ‘헷갈리네’
“출구전략 없다”던 윤증현, 이틀 만에 “저금리가 위기 잉태”
기사입력 2010-04-26 오후 3:00:00

     연 2.0%라는 사상 최저 금리를 14개월째 이어가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금리 인상 등 본격적인 출구전략을 쓰지 않는 이유로 내밀었던 게 ‘국제공조’였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침체에 빠졌지만 전세계가 ‘금리 인하’와 ‘확장적 재정 정책’을 공동으로 시행해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는 것. 이런 국제공조는 지난해 9월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지난해 11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회의 때도 확인됐다.

하지만 4월 2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이번 G20 재무장관회의에서는 “세계경제는 당초 예상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그 회복은 국가별 지역들 간에 다른 속도로 진행된다”며 “우리는 다른 나라로의 파급효과를 고려하면서 그동안 취했던 거시 및 금융분야의 예외적 지원조치로부터 자국의 상황에 맞는 신뢰할만한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출구전략 시행 시기를 각국의 상황에 맞게 마련하라는 것으로 이명박 정부가 강조해왔던 ‘국제공조’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G20′을 믿고 사실상 연말까지 출구전략은 없다고 단언해온 이명박 정부 입장이 난감해졌다. 한국은 2009년 0.2%로 드물게 플러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한데 이어 올해도 정부가 5%대 이상의 고성장을 예상하고 있어 출구전략을 시행해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졌었다. 수비르 랄 국제통화기금(IMF) 한국과장도 “한국의 견실한 성장세로 볼 때 금리 인상을 단행해도 된다”고 출구전략 시행을 조언한 바 있다.

윤증현, 이틀 만에 “저금리, 또다시 위기 잉태”

그러자 이전과 다른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재무장관회의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25일(한국시간) 특파원들과 만찬에서 “이번 경제위기도 전 세계가 공조해 저금리로 유동성 공급을 했다”면서 “저금리로 빚어진 과잉유동성 때문에 이런 사태가 생겼는데 다시 한번 저금리로 이 사태를 수습하고 있어 위기를 다시 잉태하고 가는 거다”고 말했다.

G20회의가 끝난 직후 나온 윤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이 출구전략에 대한 정부 정책 기조의 변화를 의미하는 게 아닌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윤 장관이 저금리의 부작용을 공식석상에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 장관은 불과 이틀 전인 23일에는 “민간 부문보다는 재정적인 지원에 경제회복을 많이 의존하는 게 전 세계적인 기류라서 아직은 본격적인 출구 전략을 시행하기에는 이르다는 게 대체적인 세계적 흐름”이라면서 “한국도 그동안 많은 경제지표가 나아지고 있고 우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비교적 빠른 속도로 회복이 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고용이 많이 어렵고 민간의 자생적인 회복력이 아직 본격적으로 살아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출구전략 시기상조론’을 거듭 강조했었다.

더구나 윤 장관은 출구전략 시행 시기에 대해 “꼭 특정시점을 꼬집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11월에 서울에서 G20 정상회담이 열리기 때문에 그때까지 아마 이러한 문제들을 포함해 금융계의 문제, 국제 금융질서의 새로운 창출문제 등이 계속 논의될 것”이라고 빨라야 연말이 될 것이라고 밝혔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9일 첫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민간 자생력이 어느 정도 회복됐다는 판단이 있어야 한다”며 기준금리는 당분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김 총재는 또 “부동산 가격에 급격한 변동을 가져오는 정책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자산가격의 변동을 가져올 수 있는 금리 인상은 당분간 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였다.

2%대 은행 예금 금리…늘어만 가는 ‘저금리 주름살’

이번 G20회의에서 출구전략에 대한 국제공조가 사실상 깨진 것은 국가간 이해관계가 달라 공조를 취하는 게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번 세계경제위기의 진앙지인 미국을 비롯해 유로존, 일본 등은 여전히 금리 인상 얘기를 꺼내기 힘든 상황이지만 인도, 중국 등은 인플레이션 위험이 있어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는 기준금리를 이달 들어 0.25% 올렸다. 호주도 지난해 10월부터 5차례 금리 인상을 단행했으며, 브라질과 캐나다도 조만간 정책금리를 인상할 것임을 시사했다. 한국은 미국, 유로존, 일본보다 이미 출구전략에 시동을 걸고 있는 신흥국들과 사정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G20회의 직후 나온 저금리의 위험성을 강조한 윤 장관이 발언에 대해 재정부는 “원론적인 얘기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이명박 정부가 출구전략을 뒤로 미루는 이유는 “세계경제의 불안정성”, “민간 자생력 회복”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정권 차원의 ‘중간평가’라고 할 수 있는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한 결정이기도 하다. 자칫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금리 인상을 최대한 선거 이후로 미루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부가 지난 23일 대한주택보증 등 공기업을 앞세워 미분양 주택 해소에 5조 원을 지원하기로 하는 등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발표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돈을 풀어 유동성 위기에 빠진 일부 건설사를 지원하고 부동산 가격 하락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에 악영향을 끼칠 금리 인상을 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미 저금리에 따른 부작용은 이미 여러 곳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2008년 688조 원이던 가계부채가 지난해 말 733조 원으로 급증한 것은 ‘저금리 효과’다. 막대한 규모의 가계부채는 한국경제의 위험 요소로 꼽힌다.

또 저금리는 기업 구조조정을 지연시켜 경제회복을 오히려 지연시킬 수 있다. 금융조달 비용이 싸고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이 수월하다 보니 한계기업들의 퇴출이 지연되고, 이처럼 시장불신이 해소되지 않으면 시중자금의 동맥경화 현상이 심화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월 통화승수는 24.0배로 지난해 3월(22.4배) 이후 1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통화승수는 광의통화(M2, 평잔)를 중앙은행이 시중에 공급한 본원통화로 나눈 값이다. 통화승수가 낮다는 것은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다는 얘기다. 은행은 기업대출에 소극적이고 기업, 가계 등 경제주체들은 돈을 묶어둔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은행들은 시장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으니 중소기업 대출에 소극적이고, 사내 유보금으로 현금을 쌓아두고 있는 대기업은 은행 돈을 빌려다 쓸 필요가 없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개인들도 은행 예금 등 안전자산에 쏠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은행 예금 금리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25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이달 23일 기준 1년 만기 은행 특판정기예금 금리도 2%대로 떨어졌다. 일반예금은 이미 몇 달 전부터 1년 만기 상품의 금리가 2%대로 떨어졌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제로 금리, 내지는 마이너스 금리 상태다. 저금리로 퇴직자 등 이자소득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이들의 수입이 줄어들면서 소비에도 영향을 미친다. 저금리정책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일본처럼 소비부진이 고착화되면서 장기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또 저금리 상태에서 갈 곳을 잃고 헤매는 뭉칫돈들이 다른 쪽으로 쏠려 거품을 만들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표적인 게 채권시장이다. 저금리로 금융수익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금융기관들 뿐 아니라 개인들의 회사채 투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이는 시장금리의 추가 하락도 가져온다.

/전홍기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