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고심 끝 결국 “영리병원 반대” 카드 던져

고심 끝 결국 “영리병원 반대” 카드 던져
의료계, 정부 의료산업 정책과 배치…건강관리서비스 등 작용

노동집약적 산업구조를 가진 의료산업은 일자리 문제를 해소할 카드로 부상했다. 전국 1%의 수재가 의과대학으로 몰리는 현상은 의료산업화의 청신호로 여겨졌다. 과거 공대로 몰린 수재들이 한국을 먹여살렸듯이 ‘이제는 의료’라는 인식이 커졌다. 경제부처는 의료산업화의 중요성을 거듭 언급해왔다. 의료계 판을 뒤흔든 리베이트 쌍벌제는 건전한 시장구조를 만들어 산업화를 장려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투영됐다. 두뇌집단인 의료계를 활용한 산업화 정책은 논리적으로는 타당하다. 겹겹이 쌓인 규제에 염증을 느낀 의료계는 시장경제를 장려하는 현 정부에 거는 기대가 컸다. 이처럼 이념적 공통분모가 많은 의료계가 지난 13일 ‘영리병원 반대’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향후 추진될 정부의 핵심 의료정책과 정면 배치되는 양상이다. 친정부 성향의 의료계는 적지 않은 부담을 안고 전면전을 선언했다. 일차의료 활성화를 전제로 한 완곡한 표현을 썼지만 분명한 거절의 메시지다.

시한폭탄 건강보험, 갈등의 출발

정부와 의료계의 파열음은 미래의 시한폭탄인 건강보험 재정 절감문제로부터 출발한다. 국민이 부담하는 건강보험 급여비는 해마다 약 9.38%씩 증가해 오는 2020년에는 80조4000억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지난 2001년 약 13조 규모였던 보험급여비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지난해 30조에 달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미래세대가 짊어질 부담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급속히 진행되는 노령화도 문제다. 저성장 체질로 변해가는 한국 경제에 막대한 의료비 지출은 큰 부담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건강보험료 인상이라는 정치적 선택이 어려운 정부는 정책 방향을 재정 절감으로 틀었다. 의료계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원격의료, 건강관리서비스도 멀게 보면 재정 절감과 무관치 않다.

복지부 최희주 정책국장은 “정부 입장에선 보험료를 올리지 못한다. 그렇다면 지불체계를 개편하거나 보험심사가 더욱 엄격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막대한 건보적자를 경험한 정부는 새로운 의료시장 창출이 가능토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검토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복지부가 내놓은 정책은 온전한 의료기관의 영역인 보건의료 시장을 민간에도 열어주겠다는 뜻이다. 정부는 건강관리서비스 시장을 전체 의료시장의 20~30%까지 육성할 계획이다.

쌍벌제 후폭풍에도 건재했던 의료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것은 건강관리서비스 제도다. 의료계는 이 제도를 유사 의료기관의 탄생으로 해석한다. 원격의료 또한 대형병원을 위한 일방적 편애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극심한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의료계에 또 다른 경쟁자 출현은 생존의 문제다. 거듭된 반대에도 정책을 밀어붙인 정부의 추진력을 고려할 때 극약처방이 불가피했다. 의협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건강관리서비스 도입은 곧 집행부 퇴진을 의미한다.

의협-야당, 이해관계 맞아 떨어져

그동안 영리병원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아닌 소극적 태토를 보인 의협이 영리병원 반대로 돌아선 것은 야당의 목소리가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후의 카드를 던진 셈이다.

의협 한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기댈 수 있는 곳은 야당이지 않으냐. 사안별로 협력할 것은 협력할 것”이라며 “지금도 병원이 수없이 망하는 데 건강관리서비스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카드”라고 했다.

일단 야당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복지위를 담당하는 야당 의원실에는 “얼굴 보기 어려웠던 의협이 다녀갔다”라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오기 시작했다.

현 정부 최종 의료정책을 영리병원으로 규정한 야당 입장에서 의료공급자의 반대는 좋은 명분을 제공한다. “의사들마저 반대하는 산업화 정책을 왜 밀어붙이느냐”라는 명분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복지위에 따르면 의협은 의사와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한 원격의료, 건강관리서비스 관련 법안을 제안했다. 실제 입법화에는 많은 문제가 남았지만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는 전언이다.

야당 한 관계자는 “의료계가 던진 메시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하반기 국감에서 우리의 의지를 확인시키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정부 보건정책에 문제가 많았는데 의료계가 이에 동조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느냐”라며 “보수적인 의사들이 반대할 정도면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영리병원 문제는 논의 대상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물론 변수는 존재한다. 의료계의 또다른 축인 대한병원협회 행보다. 이에 대해 야당 관계자는 “하반기 의협과는 별다른 마찰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병협이며, 정책적 기술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영리병원 도입 계획을 수차례 연기할 정도로 심사숙고를 거듭했다. 거센 반발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의료산업화는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국내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기대할 수 없는 이념적 대결구도를 갖고 있다. 의료계는 일단 야당의 손을 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