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삼성은 돈으로 산재 사실을 덮으려 하지 마라”

“삼성은 돈으로 산재 사실을 덮으려 하지 마라”
경향닷컴 손봉석 기자 paulsohn@khan.co.kr

“딸의 목숨값을 삼성과 돈으로 합의한 것이 후회스럽고 비참한 기분입니다.”

삼성그룹 측의 회유, 협박 사례가 폭로됐다. 또 최근의 이런 회유와 협박 원인에 대한 추측도 나왔다.

지난 3월 말, 삼성전자에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박지연씨의 어머니는 지난 12일 영등포 민주노총 공공연맹 사무실에서 열린 ‘삼성의 산재은폐 규탄’ 증언대회에서 “삼성이 ‘행정소송 취하, 민주노총 및 사회단체와 만나지 말 것’을 조건으로 3억8천만원의 돈을 입금했다”고 밝혔다.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한혜경(31·뇌종양제거·장애1급)씨 어머니도 “퇴사 후 한번도 연락이 없던 회사가 위로금을 주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며 “단 산재를 신청 취소를 조건으로 내걸었다”고 주장했다.

다른 피해자 사례들도 “삼성을 상대로 이길 수 있으면 해보라”, “위로금을 줄테니 산재소송에서 빠져달라”, “반올림을 통해서 산재소송을 하면 한푼도 줄 수 없다”며 돈으로 소송 포기를 종용한 것이 폭로됐다.

이날 모임에서는 ‘외국 투자기관들이 삼성의 노동환경을 문제삼자 삼성이 산재신청자와 소송을 최소화하기 위해 무리한 압박을 가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삼성일반 노조에 따르면 세계 3대 기금운영사로 꼽히는 네덜란드 ‘APG자산운영’을 포함한 8곳의 기관투자자(총 운영자산 470조원)는 지난 5월 21일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에게 ‘투자자 공동 질의’를 보내 한국 기업의 노동환경을 문제 삼으며 질의에 나선 바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삼성은 2007년 故 황유미 씨의 백혈병 사망이 문제가 된 후 지금까지 백혈병 피해 의심 노동자들의 제보가 이아져도 ‘직업병이 아닌 개인 질병’을 주장하며 공식적인 책임을 회피하고 발병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다가 최근에 ‘건강연구소’를 설립했다.

하지만 이 연구소 설립 역시 외국 투자자들의 압력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투자자들은 삼성에 대해 ▲현재 투병 중인 사실이 알려진 전직 노동자들을 위한 의료적지원 등 대책이 있는 지 ▲노동자들에게 적절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지 ▲전체적인 작업장 안전 관리가 효과적으로 이뤄지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질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삼성전자는 언론을 통해 “유가족의 생계 등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해서 지급된 위로금이지 그 외 어떤 의도도 없다”고 입장을 밝힌 상태다.

정치권에서도 이런 삼성 측의 행태를 비판하는 소리가 나왔다. 진보신당은 13일 삼성 그룹에 대해 “진실은 돈으로 은폐되지 않는다. 삼성의 노동자들이 삼성의 작업현장에서 젊은 나이에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 무엇으로도 은폐할 수 없는 진실”이라며 “삼성은 이제라도 각 공장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 대대적인 작업환경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6월까지 시민단체에 신고된 삼성전자 반도체 라인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을 비롯한 직업병과 암 피해 제보자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업재해가 불승인 난 후 2010년 1월 행정소송에 접수한 6명, 근로복지공단 산업재해 심사청구 중인 1명, 2008년까지 제보한 15명, 2010년 5월 13일 산재신청자 5명, 故 박지연 씨 죽음 이후 피해 제보자 28명 등 총 55명에 달한다.

이중에 삼성전자에 근무하다 숨진 사망자는 17명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