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제주도 영리병원 도입, 모든 병원 영리화의 시발점될 것”

“외국인 상대로 의료관광?…인건비 싼 후진국 산업일 뿐”
“제주도 영리병원 도입, 모든 병원 영리화의 시발점될 것”
기사입력 2010-12-02 오후 6:35:43

제주도에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단지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 영리병원을 도입하면 다른 경제 특구에도 영리병원이 들어서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영리병원이 일단 도입되기만 하면 진료과목과 사업 영역 확대는 급물살을 타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2일 성명을 내고 국회에 제주도에 영리 병원 도입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경실련은 성명에서 “이미 정부 용역보고서에도 의료기관의 영리법인화는 의료비의 상승과 직결되고 중소병원의 몰락 등의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며 이는 “전체 건강보험체계의 근간을 위협하는 시발점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논란은 정부가 지난달 26일 국내 영리법인의 의료기관 개설허가 내용을 담은 ‘제주특별자치도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하면서부터 커졌다. 애초 정부의 취지는 제주도에 의료 관광을 활성화해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론의 반발이 거세지자 최근 정부는 “성형, 임플란트 등 특화된 비급여 진료로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영리 병원을 도입하겠다”며 국회를 압박하고 있다는 소문도 돈다.

▲ 의료민영화저지 및 건강보험보장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제주영리병원 도입과 의료민영화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
영리병원 도입, 외국인 환자 유치 위해서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정부가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영리병원을 도입하려 한다는 말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며 “국내 환자를 대상으로 영리 병원을 허용하려는 것이 이번 법안의 골자”라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국내 비영리 병원도 외국인 환자를 직접 유치하거나 대행기관을 통해 소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굳이 법안을 바꾸려는 이유는 그 목적이 ‘외국인 환자’가 아니라 ‘영리 병원 도입’ 그 자체에 있음을 방증한다.

의료 관광을 근거로 영리병원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도 이어졌다. 우 정책실장은 “의료 관광이 잘되는 나라는 태국이나 인도 정도인데 태국은 국내 인건비의 10%, 인도는 국내 인건비의 2% 수준”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의료서비스를 받고자 외국까지 가는 이유는 값싼 의료비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는 “의료 관광 사업은 말은 선진적인 사업으로 보이지만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실 ‘값싼 인건비를 기초로 한 후진국 사업’”이라며 “한국의 인건비로는 경쟁력이 없다”고 못 박았다.

제주도에만 들어선다면 다른 지역은 상관없다?

영리병원은 제주도에만 허용한다는데 다른 지역에는 별 영향이 없지 없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우 정책실장은 “지금 조치는 영리병원의 전국적 허용을 위한 초석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지식경제부는 지난 정권 때부터 영리병원에 대한 여론의 반발을 고려해 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부터 먼저 영리병원을 도입해야 한다고 공언했다”고 지적했다. 처음부터 전국적으로 도입하면 반발이 거세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므로 지역부터 차근차근 도입하자는 전략이다.

지금까지는 외국인이 지을 수 있는 영리병원만 허용됐다. 정부는 이제는 국내 법인도 영리병원을 지을 수 있게 허용하려 한다. 하지만 영리병원 허용에 따른 사회적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비영리법인이 수익을 다시 병원에 재투자해야 하는 것과는 달리, 영리의료법인은 수익 가운데 상당부분을 출자자에게 배당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의료의 질이 환자가 낸 치료비에 못 미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경실련 또한 이날 논평에서 “제주도에 일단 영리 병원이 허용되면 다른 지역에서도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경제자유구역과 혁신도시에서도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태현 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제주에서 시작하면 다른 경제특구나 혁신도시에서도 ‘지역경제발전, 지역 특수성’을 근거로 영리병원 카드를 들고 나올 것”이라며 “모든 병원 영리화의 시발점으로 제주 특구에서의 영리 법인이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항목만 허용하면 국민건강보험에 지장 없다?

이러한 반발을 고려해 정부는 “영리병원의 사업 범위를 성형수술, 임플란트 등 비급여 항목에 제한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김 국장은 “이마저 일단 영리병원을 도입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성형수술과 같이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항목은 영리 병원을 허용하지 않는 현행 법 아래서도 충분히 사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리병원 의료 행위가 전체 진료 과목에까지 확대되리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이때문이다. 김 국장은 “일단 도입되기만 하면 진료 목록 확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정부가 일단 먼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 영리 병원 제도를 도입해놓기만 하면 영리 법인화 사업영역 확장은 급물살을 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액을 들여 영리법인을 만들어 놓고 특화된 진료만 하면 원한 만큼 수익을 얻지 못할 것”이라며 “영리법인은 곧 사업 확장을 요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병원비 천정부지로 솟을 것

영리병원이 국민건강보험 체계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김 국장은 “영리병원을 도입하면 수익이 많이 나는 진료 중심으로 가게 돼 있다”고 말했다. 병원이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상품을 개발하리라는 얘기다. 그는 “영리의료법인은 돈 있는 환자들을 끌어들기 위해 고급 의료 시설에 투자하고 이것을 다시 의료비로 회수할 것”이라며 “의료비 인상에 대한 우려는 정부 연구 보고서에서도 확인된 된 바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대형 병원이 생기면 의료 서비스가 향상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김 국장은 “의료 서비스의 고급과가 의료 수준 고급화가 아니라 편의시설 고급화로 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의료 상품화의 주된 방식은 외형적인 서비스로 가게 될 확률이 높다”며 “호텔 같은 시설을 갖춰놓고 외부 부대시설에 투자한다고 해서 의료의 질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렇다고 가난한 서민들은 다른 병원에 가기도 쉽지 않아진다. 동네 병원이 대형 영리병원에 밀려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큰 병에 걸린 경우, 환자는 울며 겨자먹기로 입원 시설이 갖춰진 대형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 김 국장은 “동네 병원이 대형 병원에 못 이겨 문을 닫는 상황”이라며 “지금도 대형 병원 간의 경쟁은 과잉 시설투자나 과잉 진료를 낳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영리병원은 이러한 경향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결국 병원이 고급 시설에 투자한 만큼 의료비는 올라가고, 지역 주민이나 일반 국민의 접근성은 떨어지리라는 게 김 국장의 판단이다. 그는 “건강보험제도에서 보험혜택을 받는 항목이 80~90% 정도 된다면 그 이후에는 부분적으로 특화된 영리 법인이 생겨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민건강보험 보장률은 평균 60%에 불과하다. 절반도 채 보장되지 않는 질병도 많다. 김 국장은 “지금처럼 보험체계, 공공의료가 취약하고 의료취약계층이 있는 상황에서는 영리병원은 문제가 있다”며 “누구를 위한 영리법인인가”라고 반문했다.

제주 도민이 반대하는 영리병원 도입은 “명분 없다”

제주특별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여야가 영리병원 도입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영리병원 도입이 빠진 법안은 처리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야당은 영리병원 조항을 삭제해야 처리해줄 수 있다고 버티고 있다.

우석균 정책실장은 “2008년 영리병원 도입을 추진하던 김태완 전 도지사는 제주도민 여론조사에서 졌다”며 “영리병원 도입에는 논리적 근거도 없지만, 제주도민이 반대하는데 강행하는 것은 정치적 근거도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나 도의회는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제주특별법 통과를 강행했고, 그 사이 도지사가 바뀌었다.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지난 6.2 지방 선거 때 “영리 병원 도입 반대”를 내걸고 당선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 도지사 또한 영리병원 도입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태현 국장은 “우근민 도지사는 국회가 (해당 법안을) 통과시키면 도민과 합의하면서 고민하겠다고 얘기하지만 (영리병원이 결국 들어설까) 우려된다”는 심정을 밝혔다.

/김윤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