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자유화·민영화 무방비 노출, 위험한 한·미 FTA 보류 마땅”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세계 금융위기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과연 양립할 수 있는 것인가.’
한·미 FTA 재협상이 타결되면서 세계 금융위기를 일으킨 미국과 과연 FTA를 진행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일고 있다. 금융위기 발생으로 미국식 경제시스템이 도마에 오르고 있음에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기존 협정문을 그대로 밀고 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맨 오른쪽) 등 전문가들이 7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결과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7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에서 열린 ‘한·미 FTA 재협상 평가 긴급토론회’에서 “한·미 FTA는 보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전 비서관은 노무현 정부 출범 때 청와대에 입성한 뒤 한·미 FTA가 추진되기 전인 2005년 5월 퇴임했다.
정 전 비서관은 “당초 노무현 정부의 뜻대로 2006년 말에 FTA가 비준됐다면 2007년 월스트리트산 파생상품이 물밀듯 들어왔을 것이고, 미국발 경제위기의 쓰나미는 우리나라를 완전히 삼켜버렸을 것”이라며 “미국에서 생긴 신상품은 네거티브(포괄주의) 리스트 원칙에 의해 한국 시장에도 직수입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11월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선 금융분야 규제 강화가 논의됐을 정도”라며 “가장 높은 수준의 금융자유화, 민영화 등이 가능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한·미 FTA는 보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FTA를 적극 추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8년 11월 “한·미 간 협정을 체결한 후에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우리 경제와 금융제도 전반에 관한 점검이 필요한 시기”라며 “한·미 FTA 안에도 해당되는 내용이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고 고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고쳐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 전 비서관은 한·미 FTA 금융분야에 G20에서 일정 수준 합의된 거시건전성 규제(자본의 급속한 유출입 규제)를 가로막는 조항들도 가득 차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간 의료보험 확대처럼 정부가 자발적으로 민영화하는 만큼 미국 금융기관의 참여가 당연히 보장되고 이에 따라 한·미 FTA의 적용대상이 넓어지는 것”이라며 “(자본시장통합법, 보험업법 개정과 같은) ‘자발적 민영화’와 한·미 FTA가 만나게 되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확인된 복지에 대한 열망은 헛된 꿈이 되고 만다”고 말했다.
금융기관에 대한 시장접근 역시 은행 규제와 경기증폭성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를 원천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그는 “G20에서 어떤 수준의 합의를 하느냐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최소기준 대우’의 해석이 달라지겠지만 이 기준을 넘어서는 조치를 포함해 사실상 모든 규제가 투자자-국가 제소권(ISD)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또 건전성 사유일 경우 규제조치를 채택·유지하는 것이 금지되지 않지만 ‘당사국의 약속 또는 의무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하여서는 안된다’는 예외의 제한으로 인해 결국 규제조치에 대해서 ISD가 발동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FTA 발효 시 민영의료보험에 대한 규제가 불가능해지는 등 서비스 분야에서의 포괄적 개방이 가져올 위험성을 지적했다.
우 실장은 “한·미 FTA는 금융서비스 협정을 통해 민영의료보험 상품에 대한 허용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규정한다”며 “결국 민영의료보험 상품에 대한 규제가 애초에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이 노리는 바는 상품수출만이 아니라 서비스 부문의 개방을 통한 이익”이라며 “교육이나 의료, 공기업 민영화를 노리고 있는 한국의 기업에도 이러한 서비스 분야의 민영화가 커다란 이익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