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투자자 – 국가소송제 등 곳곳에 ‘毒’… 정부정책 ‘족쇄’ \

투자자 – 국가소송제 등 곳곳에 ‘毒’… 정부정책 ‘족쇄’ \
서의동 기자 입력 : 2010-12-06 21:54:40ㅣ수정 : 2010-12-07 12:03:28

다 내준 한·미 FTA… 정책주권 침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타결돼 비준절차를 남겨두면서 FTA 발효가 우리 정책주권을 심각하게 제약하고 국민경제에 부담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본협상이 타결된 2007년 이후 비슷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지만 정부는 이를 철저히 외면했고 재협상에서 마지막 수정기회도 놓쳐버렸다. 전문가들은 FTA가 발효될 경우 경제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의약, 서비스, 투자, 환경 등에서 공공성 훼손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미 FTA가 경제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규정한 헌법정신을 부정한다는 위헌성 논란도 제기된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정부가 금융관련 규제조치를 시행하는 데 제약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FTA가 발효된 상황이라면 정부가 자본 유출입 규제를 위해 도입한 선물환 규제 등도 투자자들이 이익을 침해당했다고 판단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도 내국민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규정을 위반하기 때문이다. 물론 협정문에는 건전성 규제를 실시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 있지만 동시에 투자자의 수익성을 저해하면 안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럴 경우 투자자들은 협정문의 투자자·국가소송제(ISD)를 동원해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등에 제소할 수 있다. 국가가 소유권 이전이나 몰수 등 직접 개인의 토지나 건물을 수용하지 않아도 어떤 정책이나 규제로 투자가치가 하락했다고 판단될 경우 이를 ‘간접수용’으로 간주해 배상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ISD는 정부의 정책주권을 침해하고 공공성 훼손 우려가 커 2007년 협상 당시 정부 내에서도 반대가 많았지만 재협상에서 거론되지 않았다.

정부는 재협상에서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조항을 삭제할 절호의 기회도 놓쳤다. 이 조항은 복제약을 시판하기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청에 허가신청을 하면 특허권자에게 관련 사실을 알리고 특허권자의 동의 또는 묵인 없이는 시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조항은 복제약 시판 시기를 늦춤으로써 약값이 비싸지게 돼 의약품 접근권을 제한하고 국민의 약값 부담을 높이는 독소조항으로 꼽혀왔다. 미국도 민주당이 ‘공정무역’을 내세우며 남미와의 FTA에서 삭제한 조항이다. 재협상에서 이 조항을 삭제하지 못함에 따라 제약업체의 경쟁력이 강한 유럽연합(EU)도 자동으로 혜택을 입게 된다. 정부가 한·미 FTA 이행법안 정비차원에서 약사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EU 업체를 배제하고 미국 업체에만 혜택을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조항이 발효되면 약값이 오를 것이고 자연히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될 것”이라며 “의료의 공공성을 떨어뜨리는 대표적인 조항”이라고 말했다.

서비스 부문은 네거티브 방식으로 개방했다. 이는 양국이 제외하기로 약속한 항목 외에는 모두 개방해야 해 새로운 서비스 산업에 대한 규제나 보호정책을 취할 수 없게 된다. 네거티브 방식의 개방에 후퇴를 할 수 없도록 한 ‘래칫’ 조항도 정부의 정책 선택을 심각하게 제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또 재협상에서 미국산 자동차 환경기준을 완화해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환경정책 의지를 무색하게 했다.

농업개방도 국민경제에 부담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농산물 개방으로 국내 농업은 15년간 10조465억원의 생산 감소가 예상된다. 투기자본들의 곡물시장 교란 우려에 기후변화에 따른 생산 변동성 등을 감안하면 농업기반 붕괴로 대외의존도가 커지면서 악영향이 우려된다.

이처럼 한·미 FTA가 발효될 경우 헌법상의 경제민주화 조항(119조 2항)의 취지는 훼손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경제민주화 조항은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해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 근거를 명시하고 있다.

장상환 경상대 교수는 “국민 의견수렴을 거쳤다면 이런 문제점들이 충분히 지적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한·미 FTA가 발효되면 금융, 서비스, 농업 등의 부문에서 불안정성이 커지고 정부의 정책수단도 제약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