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의회 ‘FTA 국빈방문 前 처리’ 막전막후>
“양당 극한 정쟁 속 내년 대선까지 마지막 초당적 협력”
(워싱턴=연합뉴스) 성기홍 특파원 = 정쟁의 늪에 빠져 있는 미국 의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처리에서만큼은 드물게도 놀라운 초당적 협력의 모습을 보였다.
한미 FTA 이행법안은 오는 12일(이하 현지시간) 하원과 상원 본회의를 차례대로 통과할 것이 확실시돼 미 의회 비준절차의 종착역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백악관이 지난 3일 이행법안을 제출한 이후 휴회일자를 빼고 의회 문을 연 회기 일수로만 따져서 6일 만에 양원의 상임위, 본회의 절차를 모두 통과하는 셈이다.
이행법안 제출 후 처리시간을 따져 미국이 지금까지 맺은 17개국과 FTA를 비교할 때 2004년의 미-모로코 FTA와 더불어 최단시일 처리기록이다.
협정서명 이후 이행법안의 의회제출까지는 무려 4년3개월이 걸려 ‘거북이걸음’을 면치 못했지만, 아이러니컬하게 법안이 의회에 제출된 이후부터는 ‘고속열차’를 탄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국빈 방미하는 13일 전까지 한미 FTA가 처리되고 이 대통령의 의회연설이 결국 성사되기까지 물밑에서는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고 이를 극복하려는 막후절충과 결단들이 있었다.
◇美 양원제도 입법기술 총동원 = 민주, 공화당 간 극단적 갈등을 빚은 국채 상한증액 협상으로 여름 휴회 전 비준이 무산된 이후 소강상태를 보이다 9월 다시 의회가 개회되자 FTA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양원 제도에서 비롯되는 독특한 의회 입법기술이 총동원되다시피 했고, 뿌리깊은 정치적 불신을 넘어 백악관과 공화당 쌍방이 원하는 것의 처리를 담보하기 위한 아이디어들이 등장했다.
공화당이 반대해온 무역조정지원(TAA) 제도까지 한미 FTA와 함께 통과시키기 위해 상ㆍ하원을 오가며 ‘행동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절차를 밟아가는 ‘FTA 처리를 위한 5단계 추진계획(path forward)’ 합의가 먼저 이뤄졌다.
또 예산 수반과 관련된 법안은 하원이 먼저 처리되고 상원으로 가야 한다는 헌법규정 때문에 일반특혜관세(GSP) 제도 연장 안을 이 절차가 움직이는 ‘차량’격인 입법수단(legislative vehicle)으로 사용하는 절차가 우선 동원됐다.
이에 따라 하원은 지난달 7일 GSP 법안을 통과시켰고, 상원은 22일 GSP 법안에 TAA를 얹은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특히 상원 지도부는 TAA 법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반대파 공화당 의원들로부터 쏟아진 무려 30여개의 수정안을 차례로 정리하고 부결시키는 절차를 밟아 단 한 개의 합의안만 통과시키는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했다. 반대 수정안을 부결시키기 위해 일부러 통과에 필요한 의결정족수를 50표에서 60표로 올렸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원내대표도 자신의 수정안을 제출한 후 부결시켰다. 이견을 원내로 수렴하는 절차였다.
◇李 대통령 국빈초청 발표 영향 = 이처럼 한미 FTA 비준절차가 진행되는 와중인 지난달 13일 백악관은 “이명박 대통령을 국빈방문자격으로 10월13일 백악관으로 초청했다”고 발표했다.
이 대통령 국빈 방미가 발표되자 정상회담 이전까지 한미 FTA 비준이 완료되느냐가 초점으로 부상했다.
당연히 의회 지도부로서는 신속히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압박요인이 됐다. 백악관은 국빈 방미 발표를 서두르자고 청와대에 제안했다는 후문이어서 이런 국내적 효과를 염두에 뒀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사실 한미정상회담 발표 시점까지만 해도 한미 FTA가 그전까지 마무리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했다.
백악관과 의회 지도부의 정치적 의지가 모였더라도, 의회 내 다른 입법안들이 산적해 있고 양당이 충돌하는 상황이라 물리적으로 그 일정을 맞출 수 있을지 여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백악관은 지난 3일 한미 FTA 이행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하원 본회의에서 3개 FTA보다 TAA를 먼저 처리해야 한다는 백악관의 세부적 요구가 완전 수용되지 않았지만, 이행법안을 넘기는 결단을 내렸다.
백악관이 이날까지 이행법안을 제출하지 않으면 의회가 밟아야 할 최소한의 입법절차를 감안할 때 한미정상회담 전 한미 FTA 비준은 불가능했다.
‘패스트트랙’의 첫 관문인 하원 세입위는 의회일정상 가장 빠른 시점인 5일 한미 FTA 법안을 처리했고, 하원 본회의 처리 일자는 12일로 잡혔다.
◇상원 지도부 입장 변화…. 긴박한 막후절충 = 문제는 상원이었다. 민주당 해리 리드 원내대표와 맥스 보커스 재무위원장은 12일 하원 본회의에서 한미 FTA와 더불어 TAA가 무사히 통과된 후에야 상원의 심의를 개시하겠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공화당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이런 시나리오라면 상원 재무위 심의는 아무리 빨라도 13일이고 본회의도 14일에나 잡힐 수 있어 미 의회 비준 완료는 한미정상회담 후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리드 원내대표는 “21일까지 처리하겠다”고 느긋한 입장까지 밝혔다.
게다가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한미 FTA의 상원 통과까지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으면 이 대통령의 의회 연설초청은 어렵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백악관과 주미대사관이 전방위 설득에 나섰다. 윌리엄 데일리 백악관 비서실장이 “이 대통령 국빈 방미일 전까지 마무리돼야 한다”고 의회 지도부에 강력히 요청했고 한덕수 주미대사도 의회에서 살다시피 했다.
결국, 보커스 위원장이 입장을 바꿔 5일 밤 전격적으로 상원 재무위 심의날짜를 11일로 앞당겼고, 리드 원내대표도 한미 FTA 처리를 위한 상원 본회의를 12일 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상원, FTA 토론시간 단축 결정 =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다.
‘패스트트랙’ 절차에서 모든 FTA 안건은 상원 본회의 표결을 위해서는 20시간의 토론을 보장하게 돼 있었다. 한미 FTA 만이 아니라 콜롬비아, 파나마 FTA도 안건에 올라가므로 모두 60시간의 토론이 있어야 했다. 이대로라면 상원 본회의가 열리는 것만으로는 12일 한미 FTA 처리는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리드 원내대표는 6일부터 100명의 상원의원실로 ‘FTA 토론시간을 단축하려는데 이의가 없느냐’는 회람을 돌렸다. 규정상 단 한 명의 상원의원이라도 “반대한다”고 하면 60시간 토론이 진행돼야 했다. 매코널 공화당 원내대표는 본회의 발언을 통해 12일까지 절차를 완료해 국빈방문하는 이 대통령이 의회 연설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고 의원들에 당부했다.
결국, 토론시간 단축 제안에 100명 상원의원 전원의 ‘만장일치 동의’(unanimous consent)를 이끌어냈다.
리드 대표는 7일 밤 본회의에서 FTA 토론시간 단축 결정 사실을 밝히며 12일 한미 FTA를 가장 먼저 처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위안화 대응법안 처리절차를 놓고 양당 간 격론이 벌어지는 와중이었다.
비로소 이 대통령의 국빈방문 전에 한미 FTA의 미 의회 통과완료가 보장되는 순간이었다.
◇李 대통령 의회 초청 발표 = 이튿날인 8일 베이너 하원의장은 이 대통령이 오는 13일 의회에서 연설하도록 공식 초청한다고 발표했다.
주미대사관은 행여 한미 FTA가 정상회담 전까지 상원까지 통과하지 못했을 때도 이 대통령의 의회연설을 성사시키기 위해 베이너 의장을 설득하는 ‘플랜 B’까지 만지작거렸지만, 그 필요성이 없어졌다.
미국 언론들은 대체로 이번 한미 FTA 처리는 내년 대통령선거 때까지 볼 수 있는 마지막 초당적 협력 사례일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sg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