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논쟁>건강보험 재정 통합, 다시 분리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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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argument/509450.html

서민층 건강 악화·의료비 폭등 불러온다

위헌론이 말하는 형평성 문제는
보험료를 더 내야 하는 부유층이
덜 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보장성의 강화가 근본 해법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국민들의 불안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의료민영화 시도가 거세지고 있다. 경만호 대한의사협회장의 건강보험 통합 위헌 소송이 1월 중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다. 만일 헌재가 위헌 판정을 내린다면 전국민 건강보험은 해체될 전망이다.

전국민 건강보험은 한국 공공서비스의 가장 큰 성과로 인정되고 있다. 사회보험은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위험을 공동 대처하기 위한 제도이며 최대한 보편적으로 짜야 한다. 건강보험이 쪼개지면 저소득층이 많은 지역보험 재정은 취약해진다. 필연적으로 보험료를 올리고 보장률을 낮출 수밖에 없다. 부유층은 건강보험에서 나가려 할 것이고, 전국민 건강보험 의무가입이 위헌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민간보험 가입률이 증가하면 지역보험 재정은 더욱 취약해져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급여 수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으로 차이나는 지역을 하나로 묶기 어려워 서울·강원 등 지역별로 나뉠 수 있다. 건강보험이 쪼개지면 서민층은 의료 이용은 어려워지고 의료비는 비싸지며 기업의 경쟁력은 낮아진다. 국가 재정은 비효율적으로 사용될 수밖에 없어 서민층 건강 악화와 의료비 폭등을 피할 수 없다.

현재 건강보험 재정은 단일 체제이나 부과 기준은 직장·지역이 다르다. 위헌론자들은 소득이 100% 파악되는 직장에 비해 소득 파악이 쉽지 않은 지역가입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 부과 방식은 근본적으로 한쪽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제도상 허점이 문제다. 지역가입자의 소득이 축소되는 문제도 있지만 월급 외 자산소득이 있는 직장가입자는 제대로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소유 업체에 취직한 것으로 신고해서 2만원의 건보료를 낸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퇴직시 지역으로 옮길 때 지나치게 높은 보험료를 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 제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건보 통합은 보편성과 형평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진전이었으나 건강보험을 깨기 위한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자본은 이윤처로 의료를 노리고 있으며 현 정부가 마지막으로 관철하려는 정책은 의료민영화다. 의사협회는 건강보험 훼손에 앞장서고 있다. 역설적으로 건강보험제도가 정착된 이후 가장 많은 혜택을 본 집단은 의료인이며 건강보험의 해체는 대다수 개원의와 중소 병·의원들에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며 소수의 대형병원·영리병원만 이득을 누리게 될 것이다.

건보 이사장으로 전격 취임한 김종대씨는 1989년 당시 건강보험 통합을 무력화시킨 장본인이며 통합 당시 복지부 실장의 지위를 이용해 지속적 반대를 했고 직위에서 면제되기까지 했다. 밀실에서 진행된 취임식과 이후 기자회견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제도를 최전선에서 강화해야 할 조직의 수장이 이런 인물이라는 사실은 정부의 건강보험 쪼개기 의지가 매우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건보 해체론자들이 주장하는 형평성은 건강보험을 강화해야만 달성할 수 있다. 현 보장률은 60% 수준으로 낮으며 건강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 건강보험에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하는 기업과 부유층이 보험료를 덜 내고 있기 때문이다. 낮은 보장률 탓에 비급여 진료비가 비싸지고 민간보험 가입을 강요받고 있다.

현 정부와 자본은 건강보험의 허점을 들어 건보를 해체하고 민간보험 활성화와 영리병원 도입을 주장한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건강보험에 대한 국가와 부유층의 기여도를 높여 건강보험을 강화하고 건강보험만으로 모든 의료비를 감당할 것을 요구한다.

한-미 에프티에이 체결은 국내 공공서비스의 심각한 축소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되며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의료 부문이다. 고가 의약품과 의료기기가 무차별적으로 들어오고 영리병원 활성화로 의료비가 폭등하면 건강보험은 취약해진다. 시간이 많지 않다. 정부는 의료는 전혀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했다. 이제 약속을 지킬 때다. 건강보험 쪼개기를 당장 그만두고 건강보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김종대 이사장의 사퇴와 헌법재판소의 합리적 판단을 기대한다.

이은경 새사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