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연대/경실련/민주노총/참여연대
노무현 정부는 보건의료 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하라
- 참여정부 출범 1개월에 즈음한 노동·농민·시민사회단체 입장 –
1.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고 김화중 보건복지부장관이 취임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우리는 그 동안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새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 입안과정을 지켜보았다. 건강보험 재정통합에 대해 더 이상의 소모적인 논란을 끝내고 재정통합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평가한다. 국민 건강을 도모하고 의료비 낭비를 줄이기 위한 적정처방 지침 및 심사원칙 마련 등의 의약분업 정착 방향에 대해서는 바람직하며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기를 기대한다.
2. 그러나 지난 해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가 제시한 보건의료의 핵심공약 사항을 시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방안은 분명히 제시하지 않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도시지역 보건지소 설립과 지방거점 병원 설립 등의 ‘공공의료 강화 정책’과 재정건전화 및 본인부담 상한제 도입을 내용으로 한 ‘건강보험의 개혁’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공공의료 강화’와 ‘건강보험 개혁’은 의료제도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국민 건강 보장을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점에서 이는 새 정부 보건의료 개혁의 핵심적 사안이라 할 수 있다.
3. 지난 4월 4일 복지부장관의 청와대 업무보고 내용과 4월14일 제 238회 임시국회에 보고한 새 정부 주요 정책 과제를 보면, 공공의료 강화에 대해서는 그 동안 논의된 내용을 뛰어넘는 구체적인 내용의 제시 없이, 원론적인 수준을 반복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실행계획이나 인력 및 재원조달 방안 등에 대해서는 의지를 확인하기 어렵다. 더구나 핵심 개혁 과제의 하나인 본인부담 상한제 도입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이는 장관이 취임 이후 여러 차례 ‘본인부담 상한제’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보여 큰 우려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감기 등 경한 질환에 대한 소액진료비 전액 본인 부담제 도입을 본인부담 상한제와 연계시키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4. 지난 정부는 의약분업 도입 과정이나 건강보험 통합 과정에서 이해집단에 휘둘리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로 인해 국민적 신뢰를 상당히 잃었다. 이는 보건의료 개혁에 대한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청사진 없이 임시방편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이와 같은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다음과 같은 과제를 중심으로 보건의료 개혁에 관한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국민 앞에 제시하고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첫째, 건강보험 본인부담 상한제 도입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건강보험 본인부담 상한제는 질병 치료에 의한 가계 파탄을 막아 주는 보험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써 반드시 필요한 제도이다. 우리는 본인부담 상한제의 취지를 실현하기 위해 ① 건강보험 비급여를 포함한 전체 비용을 기준으로 해야 하며, ② 개인 기준이 아니라 세대 기준으로 설계되어야 하고, ③ 본인부담 상한선을 현실적 수준으로 낮추어야 한다고 이미 주장한 바 있다. 또한 본인부담 상한제 도입에 필요한 재원을 소액진료비에 대한 본인부담을 인상하여 마련하려는 방향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정부는 이와 같은 우리의 주장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하며, 더불어 재원 확보방안을 포함한 세부적 도입 방안을 국민앞에 내놓아야 할 것이다.
둘째, 노무현 정부의 대표적 공약이었던 ‘공공의료 강화’의 세부안을 제시해야 한다. 공공의료 강화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력과 재원의 확보가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도시지역 보건지소 설립 및 인력 시설의 확충뿐 만 아니라, 의료시설에 대한 접근도가 현저히 낮은 농어촌 지역의 보건소. 보건지소의 인력 정원 확보와 시설 확충을 통해 형평성에 기초한 보건의료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우리는 인력 및 재원 확보와 관련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공공의료 강화를 실현하기 위한 현 정부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평가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셋째, 노무현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건전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총액예산제 도입, DRG를 모든 병원에 의무화하는 등 진료비 지불제도를 개혁하기 위한 세부일정과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하에서는 건강보험 재정악화를 극복하기 위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수십가지의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진료비 지불제도와 같은 근본적인 대책을 제시하지 않아 대부분 재정절감 효과가 미미한 수준에 그치거나 단기에 그쳤다. 이는 건강보험의 재정악화를 의료비 지출구조상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 결과였다. 노무현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건전화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진료비 지불제도의 개혁을 통한 ‘건강보험 지출 통제’뿐이다.
5. 지금은 보건의료 분야의 개혁을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아니다. 공공의료 강화를 비롯한 의료제공체계의 개선과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만이 향후 인구 고령화 사회로의 급속한 진행과 이에 따른 의료비 증가 및 국민의료 수요 증가에 능동적으로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 정부가 보다 선명한 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할 것을 요구한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된다는 식의 ‘복지부동’형 정부는 정부를 위해서나 국민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이 약속한 보건의료 개혁의 실천방안을 제시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국민과 함께 마련할 것을 다시한번 강력히 촉구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