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서울시는 노숙인 의료 이용 제한을 철회하고, 노숙인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긴급 대책을 마련하라
1. 서울시는 지난 4월 26일 공문을 통하여 노숙인의 입원. 수술비 지원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는 올해 노숙인 의료구호비 예산이 8억원 정도인데, 2002년 이후 누적 적자분이 계속 이월되는 바람에 올 한해 예산이 1분기만에 모두 바닥났다는 것이다. 더불어 서울시는 꼭 입원이나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한 달 이상 노숙인 쉼터에 거주한 뒤 주민등록 발급 등의 절차를 거쳐 의료보호 대상자로 지정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2. 서울시가 노숙인 의료구호비로 책정한 올 한 해 예산이 1/4분기가 지난 시점에 바닥났다는 이유로 노숙인의 의료 이용에 실질적 제약을 가한 것은 그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는 노숙인의 건강할 권리를 침해한 것을 넘어 간접적 살인 방조 행위이다.
3. 서울시는 예산이 바닥났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우리는 책정된 예산 자체가 터무니없이 적다고 생각한다. 서울시는 한 해 노숙인 의료구호비 예산으로 8억 원을 책정해 놓고, 그것이 1/4분기만에 바닥났다고 하며, 노숙인의 무분별한 의료 이용을 탓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몇 년 전부터 주장한 바와 같이 이 예산 자체가 너무 적다. 노숙인의 최소한의 의료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의료 서비스 제공을 전제로 우리가 추산한 바에 의하면, 이것을 위하여 최소한 매년 20억 원 이상의 정부 부담이 필요하다. 서울시는 이러한 우리의 주장을 귀기울여 들을 생각은 하지 않고, 저평가되어 책정된 예산 부족만을 탓하고 있다. 지금 책정된 예산으로는 노숙인의 최소한의 의료 요구도 충족시키기 어렵다. 이는 노숙인의 무분별한 의료 이용의 결과가 아니다. 당연히 올 것이 온 것뿐이다.
4. 서울시는 노숙인 의료구호비 예산을 증액하는 것에 대하여 다른 의료보호 수급권자들과의 형평성을 문제삼으며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그래서 서울시는 노숙인들이 정당한 절차를 거쳐 의료보호 수급권자로 등록하고, 그 이후 의료보호 수급권자와 같이 의료보호 체계 내에서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노숙인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 행정이다. 노숙인은 다양한 이유로 체계에 편입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들에게 체계에 편입될 것을 전제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은 행정편의적 발상이다. 그리고 노숙인들이 의료보호 수급권자에 비하여 더 많은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다면, 이는 노숙인의 의료서비스를 제한하여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의료보호 수급권자의 의료서비스를 확충하여 해결할 문제이다. 여러 가지 문제로 비판받고 있는 기존 제도를 기준으로 빈곤계층의 보건복지 제도를 하향평준화하겠다는 것인가?
5.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는 서울시가 당장 노숙인 의료 이용 제한과 관련된 방침을 철회하고, 노숙인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긴급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 먼저, 터무니없이 모자라는 관련 예산을 추경 예산의 형태로든 긴급 구호의 형태로든 편성하라. 그래서 예산 부족으로 노숙인의 의료서비스 이용권이 제약받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현실을 반영하여 당장 다음해부터는 노숙인의 의료구호비가 현실화되어야 한다. 최소한의 의료서비스를 충족시킬 수 있을 정도로 예산을 상향 책정하라.
6. 한편, 보건복지부는 지방자치단체에 모든 책임을 미루지 말고, 책임 있는 자세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나서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당장 필요한 예산 지원뿐 아니라, 노숙인의 인권 보장을 위한 보건복지 체계를 구축하려 노력하여야 한다. 언제까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땜질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더 나아가 이번 계기에 보건복지부는 빈곤계층의 건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서라.
2004. 5. 14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