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의협성명 노숙인 모두를 범죄자 취급하는 지하철 방화사건의 여론몰이를 중단하라

[성명] 노숙인 모두를 범죄자 취급하는 지하철 방화사건의 여론몰이를 중단하라!

지하철 7호선 방화 용의자로 긴급 체포된 0씨가 경찰의 ‘증거 부족’으로 지난 5일 석방됐다. 현재 광명경찰서가 관련 역사에 걸어 놓은 목격자를 찾는 플랭카드에 제시한 단서라고는 “50대 남자, 검은바지, 등산 가방”이 전부이다. 그럼에도 경찰은 0씨의 모습이 담긴 전단지를 배포한다고 밝히고 있으며, 또한 새로이 목격자라고 나선 육군 00부대 소속 이아무개 병장의 경우 술을 마신 상태에서 방화 직전까지 잠이 들어 있어 범인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지난 6일 밤 이 병장을 서울의 한 역으로 데려가 용의자로 지목된 0씨가 포함된 상태에서 노숙자 20여명까지 동원해 지목하게 하는 등 표적수사 방식을 계속 고집하고 있다. 더구나 경찰은 석방된 0씨를 서울의 한 사회복지시설에 입소시켜 24시간 통제・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경찰이 그토록 다짐하고 있는 인권수사에 철저히 역행하는 짜 맞추기식 여론몰이 수사이다.

용의자로 지목된 0씨의 경우 무료급식소를 이용하고, 일용직 일자리나 노숙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고 교통과 편의시설이 발달 된 공공역사인 수원역을 이용하다 이번 방화사건이 일어나기 가장 직전인 지난 12월 22일 수원역 인근에서 불을 피우다 입건되었던 전력이 단번에 용의자로 지목되어 긴급체포 된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정황을 살펴보면 경찰이 사건 발생 직후 초동수사 단계에서 화재가 난 전동차량에 탑승하고 있던 10여명의 목격자와 객관적인 자료 확보를 통해 범인 검거의 수순을 밟았다기보다, 0씨가 노숙생활을 하고 있다는 전력과 ‘노숙자 차림’이라는 매우 주관적인 제보와 목격에 의존해 0씨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상당한 편견이 작용한 결과라 판단된다.

현재 구금에 가까운 상태에 있는 0씨는 방화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그리고 거짓말 탐지기도, CCTV도 정확한 물증이 되지 못했다. 0씨를 사회복지시설에 입소시키면서 경찰은 0씨가 지하철 방화사건의 중요한 목격자여서 증거확보 차원에서라며 입소 이유를 밝혔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결국 경찰은 인권수사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요인인 편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꼴이며, 수사의 장기화를 불가피하게 하는 원인을 경찰 스스로가 제공하고 있다. 또한 경찰의 수사가 뒤늦게 추가 목격자를 확보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느라 허둥대고 있는 사이 매번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노숙자와 같은 옷차림’, ‘노숙자 차림의…’, ‘비슷한 인상착의의 노숙자’등 마치 노숙자는 범죄자 집단인 것처럼 인식시키는 상당수 언론의 보도는 노숙인을 비롯한 위기계층을 사회로부터 더욱 고립시키고 낙인찍는데 일조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의 경향을 보면 우리사회에서 이미 사회적 실체가 되어 버린 ‘노숙자’를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범죄는 더욱 다양한 수법으로 악랄해지고 있고, 여전히 전통적인 수법의 노동 착취와 가혹행위, 폭행, 인신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진단서와 같은 공문서 발급을 위해 거리 노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몸에서 필요한 것을 채취해 수익을 챙기는 브로커들의 존재나 신분증이 도용되어 각종 금융사기에 악용당해 영원히 무적자로 살아가야만 하는 노숙인들의 존재는 그 신분적 특성상 각종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고, 그 어떠한 법적인 보호도 받지 못하는 피해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물론, 노숙인들이 저지르는 범죄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를 특별히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할 정도의 구체적인 통계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서울의 주요 노숙지라 할 수 있는 서울역을 관할하는 남대문 경찰서가 ‘노숙자 범죄 통계결과’를 제출하려 했으나 해당 범죄 행위자가 ‘노숙자’라 단정 지을 수 있는 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파악된 대부분의 유형인 ‘음주소란․상호폭력․소액 절도’ 등은 흔히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건 유형이여서 이것 또한 ‘노숙자’에 의한 특정 범죄 통계로 단정해 제출할 수 없는 것들 이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번 지하철 방화사건과 같이 매번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노숙인들을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 집단으로 인식하고 ‘노숙자’ 검거에 열을 올리는 경찰이나, 관리에 큰 구멍이 뚫려 격리만이 유일한 대책인 것처럼 접근하는 상당수 언론의 태도는 사건 해결을 위한 구조적 문제에 접근하는데 심각한 장애가 될 뿐이며, 매번 한사람의 혐의가 노숙인 모두로 연결되는 한바탕 여론몰이가 있을 때마다 사회로부터 더욱 고립되고 좌절해야 하는 노숙인과 같은 위기계층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성적 시각을 가져본다면 이보다 더한 몹쓸 짓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예비범죄자로 매도당하며 격리, 수용되어야 될 대상으로 취급당하는 우리시대 수많은 0씨에 대해 경찰과 언론이 이성적 태도를 가져주길 간절히 호소한다. 또한 이미 검찰에 의해 석방된 0씨에 대해 경찰이 구체적 증거를 제출할 수 없다면 더 이상 구금에 가까운 상태로 0씨를 속박하지 말 것과 모든 ‘노숙자’가 범죄자 취급당하는 여론몰이식 보도를 중단해 줄 것을 거듭 호소하고 촉구하는 바이다!

2005년 1월 10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