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 시기였던 6년 전 2020년 3월 18일, 코로나19로 의심받아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만 17세의 나이로 고)정유엽은 사망했다.
유가족은 아들 잃은 슬픔을 가슴에 묻은 채,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정부와 병원을 향해 의료 공백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해 달라고 호소했다.
2021년 3월에는 암 투병 중인 유가족이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경산에서 청와대까지 천리길을 걸으며 “정유엽과 내딛는 공공의료 한걸음 더”를 목놓아 외치기도 했으나 돌아오는 건 메아리뿐이었다.
유가족은 어쩔 수 없이 우리 사회에서 안타까운 죽음의 재발을 막기 위해 2023년 1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의 지원을 받아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며, 6월10일 1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수차례의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반복하는 고)정유엽의 아버지가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음을 체감하며 생을 다하기 전에 간절한 마음으로 재판부에 호소한다. “우리 사회가 유엽의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공공의료의 가치를 바로 세워야 주십시오”
유가족의 간절한 소망에 서울중앙지방법원 담당 재판부는 건강하게 살 권리를 침해당하여 사망한 고)정유엽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만드는 판결을 해야 한다.
지난 5월 1일, 충북 청주의 한 산부인과에 입원해 있던 임신 29주차 산모의 태아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권역모자의료센터인 충북대병원을 비롯해 충청권 6개 상급병원 모두 “전문의가 없다”는 이유로 전원을 거절했다.
코로나19 확산 시기 고)정유엽 사망 등 의료공백으로 수많은 국민이 희생되었고 우리사회 의료공공성 확대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코로나19를 겪으며 깨달아야 할 교훈을 제대로 새기지 못한 우리사회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지역의료의 현실은 여전히 참담하다. 의과 공중보건의사는 2020년 742명에서 2025년 247명으로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하여, 농어촌의 의료 접근성은 한계에 다다랐다. 그럼에도 전국 70여 개 중진료권 가운데 분만•소아•응급 기능을 제대로 갖춘 공공병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정부와 병원, 우리 사회 전체가 코로나19의 교훈을 새길 수 있게 판결하는 것이 사법부의 역할이다.
지난 5월 7일, 모든 사람이 자신의 생명ㆍ신체ㆍ재산을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해 생명안전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35조(건강하고 쾌적한 환경), 제34조(인간다운 생활, 사회보장), 제10조(행복추구권)에서 명시한 국민 건강권과 생명권 보장을 위한 정부의 의무를 법률로 명확히 한 것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되찾아주는 것이 사법부가 해야 할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건강하게 살 권리를 침해당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구제할 수 있는 판결이 나와야 한다.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해 병원이 존재하는 게 아니며, 민간병원의 이익을 지켜주는 게 국가의 역할이 아니라고 따끔하게 질책하는 판결을 해야 한다.
생명안전기본법의 취지대로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 국민의 권리 보장 의무를 행정부와 사법부 모두가 실천할 수 있는 엄정한 판결을 촉구한다.
2026년 5월 21일
건강과 대안∙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보건의료단체연합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정유엽희망대책위원회
[유가족 발언]
정성재 (고 정유엽 아버지)
“열일곱 유엽이의 억울한 죽음, 이제 사법부가 답해야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난 2020년 3월 18일, 코로나19 오인과 의료 공백 속에서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열일곱 살 유엽이의 아버지, 정성재입니다.
우리 유엽이가 차가운 병원 마당에서 기다리며, 그리고 응급실 격리실에서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견디다 홀로 숨을 거둔 지 어느덧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아이의 죽음 앞에서 무너져 내렸던 우리 가족의 시간은 그날 이후로 멈춰 서 있습니다.
아이가 왜 죽어야 했는지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청와대까지 도보 행진을 하고, 거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23년 1월 16일, 저희 가족은 경산중앙병원과 영남대병원, 그리고 경산시와 국가를 상대로 민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단지 돈 몇 푼을 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응급 환자가 코로나로 오인받아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고 방치되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하기에, 또한 국가적 재난 상황이라는 핑계 뒤에 숨은 의료기관의 과실과 국가의 책임을 명백히 밝히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는 6월 10일, 길고 길었던 법적 공방 끝에 마침내 1심 선고 판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사법부의 현명하고 정의로운 판단을 구하고자, 수많은 시민의 염원이 담긴 탄원서를 제출하며 이 자리에 섰습니다.
당시 유엽이는 단순 고열 증상이었음에도, 단지 ‘코로나가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적시, 적정의 치료를 거부당했습니다. 최종 검사 결과는 결국 ‘음성’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빨리 대면 진료를 받았더라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응급 조치를 취했더라면, 우리 유엽이는 지금 우리 곁에서 평범한 20대 청년으로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재난 상황이었다고 해서 의료기관의 주의 의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감염병 예방이라는 명목 하에 응급 환자의 생명을 방치하는 시스템이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의료가 아니라 국가와 병원의 방임이자 직무유기입니다.
물론 코로나19 초기 당시, 감염병에 대한 이해와 정보가 부족했고 컨트롤타워의 부재로 인해 병원들도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변명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참사가 야기된 배경에는 우리나라 의료기관 대부분이 민간병원이라 국가가 강제할 권한이 없었다는 한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폐해를 막기 위한 공공의료의 확대가 절실합니다. 누구나,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배제받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시스템의 재정비가 시급합니다.
사법부에 간곡히 호소합니다.
이번 재판은 단순히 한 가정의 슬픔을 위로하는 재판이 아닙니다. 앞으로 또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감염병 위기 속에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국민의 생명권을 지켜내야 하는지 그 이정표를 세우는 재판입니다. 국가와 의료기관이 책임을 회피할 때, 국민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오직 법의 정의뿐입니다.
우리 유엽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제2, 제3의 정유엽이 나오지 않도록, 병원과 국가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주십시오. 억울하게 떠난 아이의 영혼을 달래고, 남겨진 가족들이 비로소 유엽이를 가슴에 묻을 수 있도록 공정하고 상식적인 판결을 내려주시길 간절히 호소드립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유엽이의 억울함을 외면하지 않고 연대해 주신 여러 단체와 언론인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진실이 승리하는 그날까지, 우리의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정유엽대책위 대표 발언]
엄정애 (정유엽희망대책위 공동대표)
정유엽 희망대책위 공동대표 엄정애입니다.
먼저 오늘 ‘공공의료 책임을 강화하고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께 깊은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
오늘로 정유엽 님이 세상을 떠난 지 2,260일째 되는 날입니다.
참으로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2020년 3월, 당시 17세였던 정유엽님은 코로나19로 오인되어 제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하루아침에 잃은 유가족들은 멈춰 버린 일상 속에서도,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싸워왔습니다.
아버님은 항암치료를 받는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공공병원 확대”, “공공의료 강화”를 외치며 경산에서 청와대까지 도보 행진을 했습니다.
다시는 정유엽님과 같은 사회적 죽음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호소였습니다.
어머니 이지연님께서는 올해 3월, 아들을 향한 그리움과 상처, 그리고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을 흙으로 빚어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그 작품들을 보며, 한 어머니 이지연님이 견뎌야 했던 고통이 얼마나 깊었을지 가늠조차 어려웠습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아무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시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국가에 묻고 싶습니다.
정유엽 님과 유가족들이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정부의 방역지침을 믿고 따른 한 시민은 왜 소중한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까?
결국 공공의료의 공백 속에서 무고한 시민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36조 3항은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건강권과 국가의 책임을 분명히 선언한 조항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는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없습니다.
정유엽님의 죽음은 단지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닙니다.
국가와 의료체계의 실패가 만들어낸 명백한 사회적 죽음입니다.
그 책임은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
그래서 오는 6월 10일 진행되는 1심 선고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정유엽희망대책위는 재판부에 강력히 촉구합니다.
이번 판결이 시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국가의 책임을 분명히 세우는 판결이 되기를 바랍니다.
민간병원이라 하더라도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책임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주십시오.
유가족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판단해 주십시오.
한 명의 억울한 죽음에 정의를 세우는 일은, 앞으로 수천 수만 명의 생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더 이상 정유엽님과 같은 무고한 사회적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가의 책임과 생명의 가치를 분명히 세우는 정의로운 판결을 간절히 촉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대 발언 ]
변혜진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상임연구위원)
제가 유엽 어머니와 아버지를 처음 만난 것이 벌써 6년째가 되어갑니다.
2020년 그 때도 5월이었습니다.
내 아이가 왜 제 때 검사도 못 받고 코로나로 의심받으며
치료를 거부당했는지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가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옮겨다녀야 했는지를 알려달라는 것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시작이었습니다.
손수건
말씀하시던 중에 손수건 이야기에 목이 메이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차로 병원을 찾아 헤매는 동안
어머니는 급하게 들고나온 게 손수건 하나라,
아이 열을 내리려 창문을 열고 손수건을 차게 해 아이 머리를 닦이고, 고열에 손수건이 데워지면, 다시 창문을 열고 손수건 내밀어, 아이를 머리를 닦이는 일만 하셨다고.
“엄마 나 아파” “엄마 나 힘들어” 하는 쳐져 가는 유엽이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게 그게 마지막이었다고 말을 잇지 못하셨습니다.
그때 저도 5살 아이를 키우고 있던 어미이기도 했습니다. 그 기억이 어떻게 어머니의 가슴을 타도록 아프게 할지 너무 잘 알아, 마스크 뒤로 흐르는 눈물로 사회를 보는 일로도 숨쉬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때부터 저도 궁금했습니다. 왜 유엽이가 죽어야 했을까? 왜 유엽이는 고열이라는 이유만으로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이 병원 저 병원 옮겨다녀야 하고, 폐렴이 아니라 코로나 검사만 14번을 받으며 치료 지연으로 세상을 떠나야했을까?
그래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쉼없이, 아이의 죽음을 해명해 달라고, 조사를 해서 알려달라고, 우리가 믿은 건 국가의 지침 뿐이지 않느냐고, 의사의 진단 뿐이지 않느냐고 묻고 또 묻고, 이 사람에게 묻고
저 사람을 붙들고 묻고,
거리에서 묻기 시작하고,
정치인들에게 묻기 시작하고
어떤 날, 아마도 누군가를 붙잡고 아이의 왜 죽었는지, 묻지 못하는 그 어떤 날에는 하늘에도 묻고, 나무에도 묻고 흙에도 묻고, 손을 씻다 비누에도 묻고,
바람에도 묻고, 얼마나 묻고 또 우셨을까요
외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꼬박 6년을 쉬지 않고 묻는 일로 아이를 잃은 상실과 슬픔을 애도하던 기간 중에 정권은 3번 바뀌었습니다.
2020년 5월 경 이후,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물었었지요.
코로나19 한 복판에서는 열 일곱 살 우리 유엽이와 같은 아이가 또 발생해선 안된다는 마음으로 지금 지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료공백의 진실을 외면하지 말라고.
평소에 경산중앙병원이 경산시민들의 건강을 지켜줄거라고 의심없이 믿어오셨을 아버지 어머니는 경산중앙병원으로는 감염병과 재난 상황에 누구나 치료받을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되셨고, 고작 6퍼센트도 안되는 가난한 공공병원들이 국가재난 감염병 환자 모두를 감당하도록 돼 있다는 불가능한 국가 지침에 분노하셨습니다.
이 지경으로 놔두면 유엽이 만이 아니라 또 다른 죽음이 발생할 것이라는 걸 온몸으로 절박하게 주장했습니다.
이곳에 올라온 정유엽 대책위는 그렇게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외면하는 정부와 정치권력자들, 영리화된 의료를 대신해 평범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그냥 지나쳐선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항암으로 쇠약해진 몸으로, 경북 경산에서 380킬로미터를 걸어, 우리 아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고, 정부가 나서서 이 문제를 제대로 조사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고, 의료공백 문제를 우선에 두고 해결해야 한다고 했을 때, 그때 정치권력이 이 문제를 돌아보았다면,
얼마전 29개월로 한 엄마의 몸을 빌어 세상에 왔던 한 아이를 우리는 잃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재판부에게 요구하고자 이 자리에 왔습니다.
의료는 국가의 책임입니다. 모든 이들이 건강하게 살 권리,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우리나라 헌법은 보장하고 있습니다. 여기 선 고 정유엽의 부모님들은 이 싸움이, 사회적 재난 속에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 따스한 위로의 등불이 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어떤 사회적 재난의 희생자도 결코 ‘부수적’ 희생자일 수 없습니다.
살릴 수 있는 누군가를 죽이는 일로, 얻을 그 무엇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고 정유엽처럼 국가가 제대로 된 대비와 구실을 하지 못해 죽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있는 나라는 정상적이지도 제대로 된 나라도 아닙니다.
이제 재판부가 나서서.
이 문제에 응답할 차례입니다.
유가족이 행정부에 책임을 묻는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국가 재난상황일수록 국가와 의료시스템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기능할 수 있도록 구실을 다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처벌을 넘어 국정감사에서도 인정했던 의료공백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선 법 제도화되어야 사람들이 더는 죽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말합니다. 국가의 존재 의무를 묻는 이번 소송을 통해, ‘최소한 살릴 수 있었던 생명은 끝까지 보호되어야 한다’는 가치를 우리 법에 남기겠다고.
그리고 언젠가 아들을 만나면 “우리 사회는 너의 죽음을 외면하지 않았고, 법은 그 의미를 기록으로 남겼다”라고 말하겠다고.
부디, 이윤보다 생명을 우선하라는 유가족의 호소를 재판부가 진심을 다해 헌법에 기초해 다루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