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 인의협 – 국과수의 부검결론은 의학적 판단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다

[기자회견문] 고 전용철씨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보다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결론은 의학적 판단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다 –

  농민 집회에 참여했던 한 농민이 9일 후에 뇌출혈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농민들은 망자의 사망 원인이 경찰 폭력에 의한 것일 가능성을 제기했고, 이에 경찰은 망자의 사망 원인을 밝히고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하였다. 국과수는 전용철씨 사망일인 지난 24일 부검을 실시하였는데 이 부검 과정에 우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사도 참관한 바 있다.

  국과수는 지난 25일 부검 결과를 발표하였다. 결론은 “망인이 넘어지면서 머리 뒤쪽에 손상을 입고 뇌출혈, 두개골 골절 등으로 사망하였다”는 것이다. 국과수의 이러한 결론은 여러 가지 정황과 가능성에 대한 고려 없이 너무나 단정적으로 내려진 것이다. 이번 부검을 통해 국과수가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망인의 사망 원인이 두개골 골절 및 뇌출혈이라는 것뿐이다. 국과수는 두개골 골절 및 뇌출혈이 발생하게 된 선행 요인을 망인의 넘어짐으로 언급하고 있으나 이는 타당한 의학적 과학적 판단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며 올바른 의학적 판단으로 볼 수 없다.

  국과수는 ‘넘어져서 사망했다는’ 판단의 근거로 망인의 손상 형태가 ‘대측충격손상’에 의한 것임을 내세우고 있으나, 여러 문헌들과 전문가들에 의하면 뇌의 대측충격손상은 외부 가격에 의해 생길 수도 있다. 뇌의 대측충격손상은 정지된 물체에 부딪치는 것에 의해서도 가능하지만 가격에 의한 경우에도 발생할 수 있으며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서도 가능하다.
  또한 국과수는 “사람을 넘어뜨리기 위해서는 강한 외력이 전면에 가해져야 하는데, 농민들이 주장하는 강한 타격을 받고 이분이 전도됐다는 증거를 제시하기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넘어져 사망했다는’ 가정은 잘못된 것이며 설령 넘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전면에 가해지는 강한 외력”이 없었다는 증거 또한 없다. 그외에도 국과수는 다른 상처는 모두 심폐소생술에 의한 것으로 판단하나 망인의 어깨부위와 둔부의 피멍, 표피박탈 등은 심폐소생술로 인한 상처로 설명되기는 곤란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번 부검을 통해 알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은 오직 망인의 죽음이 ‘외상에 의한 두개골 골절 및 뇌출혈’로 인한 것이라는 것뿐이다. 부검 결과는 망인의 죽음에 경찰 폭력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변하기 위한 증거로 사용될 만한 그 어떤 추가적인 정보도 제공하고 있지 않다.  
  의학은 모든 과학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 한계를 벗어나는 판단은 의학적 판단이 아니라 근거가 없는 자의적인 정치적 판단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어떤 과정으로 두개골 골절 및 뇌출혈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이를 밝혀내는 것은 부검의와 의학적 판단의 몫이 아니라 조사기구의 몫이다. 이러한 점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성급한 결론은 의학적 과학적 판단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며 우리는 이 점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  

  우리는 정부가 국과수의 부검 결과를 핑계로, 보다 정밀한 조사 없이 이 사건에 경찰 폭력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고 판단한다. 인의협은 사회운동에 대한 탄압 속에서 발생한 사망사건들이 공정한 조사과정 없이 정부에 의해 개인적인 실수로 치부되어온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을 생각한다.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사망과정에 대한 공정한 조사이지 과학적․실체적 근거가 없는 정치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이 아니다.

2005. 11. 27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
[첨부]
부검참관소견서

참관의사 : 원진호(내과전문의)
참관일시 및 장소 : 2005. 11. 24. 오후 6시 40분-9시20분 보령아산병원 영안실 부검장
사망자 : 전용철(46세, 남자)

1. 사망경과  
2005. 11. 15.
: 쌀협상비준안 국회 통과 저지를 위한 농민집회에 참석. 서울 경찰청 소속 1기동대 전경에 의해 집단 구타.
2005. 11. 16.
: 상태 악화되어 혼미한 의식상태 관찰됨 (drowsy mental state)
2005. 11. 17.
보령아산병원에 내원하여 뇌 컴퓨터 단층촬영 시행. 전두부 양측 두개내출혈(intracranial hemorrhage, ICH)로 진단됨. 충남대 병원으로 전원
2005. 11. 18.
충남대 병원에서 두개골 천공수술 시행(burr hole)
2005. 11. 24.
새벽에 출혈 지속되어 두개절제술(cranioectomy) 시행.
뇌출혈로 인한 뇌부종에 의한 뇌손상으로 사망함.

2. 부검 경과 및 소견
- 보령아산병원 영안실 지하 1층 부검장에서 국과수 부검의 3사람을 비롯하여 5인에 의한 부검집도를 집도를 6시 40분에 시작함.
- 유족 측으로는 유족대표로 고인의 형, 보령시 농민회장, 전농 부회장, 전농 대외협력국장, 원진호 본인(유족측 의사), 검사 측에서는 검사를 비롯한 형사 관계자들이 참석.
- 먼저 외관상 나타나는 신체계측과 증후에 대한 평가를 하였는데 오른쪽 어깨 부위에 약한 충격에 의한 피멍 자국과 왼쪽 엉덩이부위의 표피 박탈(abrasion), 좌측 후두정부 부위의 표피 박탈, 양측 상안검에 피멍(ecchymosis)자국, 공막의 황달 증상 이외에는 입원과정과 수술과정에서 얻은 상처 자국으로서 결정적인 치명타를 가할 만한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 이어서 시행한 내부장기 손상에도 고인의 병력에는 없었으나 간경화와 비장 비대소견이 있었고 심장내막하 출혈이 보였으나 사인과의 직접적 증거는 없었다.
- 오후 8시를 넘어 본격적인 두부에 대한 검사가 이루어 졌다. 여기서 결정적인 소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앞서 언급하였듯이 좌측 후두정부 부위의  표피박탈(abrasion)된 두피 바로 밑으로 미세한 골절 선이 있으면서 두정부 봉합선을 따라 약간 봉합선이 벌어져 있었다. 이는 충격으로 인한 손상으로 판단되었다. 두개골을 열고 들어가 확인한 뇌실질에서는 양측 전두엽 실질내 출혈 응괴가 있었고 오른쪽 부위가 병변이 더 저명하였고 오른쪽 측두엽까지 출혈이 있었다. 두저부(skull base) 전측부(anterior fossa) 안와위판(supraorbital plate)에 우측에서 좌측으로 이어진 선상의 골절선이 있었고 이를 통해 안와쪽으로 출혈이 있어 안검 피멍이 생긴 것으로 판단되었다.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역시 외상성 지주막하 출혈이 우측 전두부에서 확인되었다.
- 오후 9시 20분 부검 종료

3. 결론
  사망원인 : 두부외상에 의한 뇌손상
  뇌손상은 좌상(맞거나 부딪쳐 생긴 상처)에 의해 발생하였고 전두부 실질내 출혈, 골절, 외상성 지주막하 출혈 등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인 기전으로는 왼측 후두정부가 뭔가에 세게 부딪치고, 뇌의 대측충격손상(countercoup injury)에 의해 오른쪽(왼쪽도 존재) 전정부 뇌실질에 저명하게 뇌좌상을 입히고 출혈을 유발했다고 볼 수 있다.

4. 기타
  부검을 참관한 의사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과정, 보령아산병원 주치의 및 충남대 병원 주치의 선생님들과의 전화 통화를 종합해 볼 때 위 결론을 내리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어떠한 과정을 통해 이러한 손상을 받았는가는 부검 소견으로 이것까지 밝히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여러 정황을 따져서 진실을 밝혀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부검참관의 : 원진호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2005.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