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장관, 네크라소프의 시를 기억합니까”
[기고] 누가 가난한 사람을 배제하는가?
[프레시안] 2007-01-11 오전 9:51:53
1년에 병원과 약국을 2000번 넘게 다닌 정신질환 병력이 있는 환자.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작년 추석 직후 ‘의료급여제도에 대한 국민보고서’에서 국민 혈세를 낭비한 대표적 예로 든 환자다. 유장관은 이런 환자들이 국민 세금을 4조 원 넘게 낭비하고 있으니 이를 줄여보겠다고 했고 작년 12월 그 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은 본인 부담금이 면제되던 의료급여 1종 환자들에게 돈을 내도록 하고, 병원도 1~2곳만 이용하도록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 그들의 무분별한 병·의원 이용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우리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은 무분별하게 병·의원을 이용하고 있을까?
가난한 사람들, 이미 충분히 힘들다
우선 가장 많은 오해. 의료급여 환자들은 병원에 가서 돈을 내지 않을까? 우선 의료급여 2종 환자는 법적으로 본인 부담금을 15% 내야 한다. 의료급여 1종 환자들은 법적으로는 본인 부담금이 없다. 그러나 본인부담이 없다는 것은 명목뿐이다.
의료급여 1종 환자들은 공립병원에서 외래치료비 중 7~15%를 부담했고 대학병원 입원비 중 34%를 부담했다.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의료비 항목은 의료급여 1종 환자들도 100% 본인 부담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한 환자들이 건강보험 환자들은 12%였던 반면 의료급여 1종 환자들은 20%였고 의료급여 2종 환자들은 30%에 가깝다.
가난한 사람들이 본인부담금이 면제되어 병의원 남용을 한다? 그들은 지금도 돈이 없어 병원을 가지 못한다.
말이 되는 정책을 내놓아라
복지부는 한 달에 네 번 정도 동네의원을 이용할 수 있는 6000원을 미리 나누어 주기 때문에 돈이 없어 병·의원을 가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지급하는 생활비는 적자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돈이다. 의료급여 환자들은 병원비를 아껴 생계비로 쓸 가능성이 높다.
복지부가 미리 나누어주는 돈은 결국 가난한 환자들에게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말라고 유혹하는 미끼인 셈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파도 병원에 가지 말라고 몇 천원으로 유혹을 하는 것이 한나라의 정부가 재정 절감 정책으로 내놓을 정책이란 말인가? 이 돈의 이름이 ‘건강생활유지비’다! 또 한 달에 6000원 이상 병원비를 써야 할 사람들은 어찌할 것인가?
본인 부담금 면제 제도의 목적은 ‘의료이용 시점’에서 본인 부담금을 면제하여 의료 이용의 경제적 장벽을 없애자는 것이다. 재정 절감을 하겠다고 본인 부담을 부과한 나라들의 경우 저소득층의 필수적인 치료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본인부담금이 없던 캐나다 사스카촨 주의 경우 본인부담금을 도입한 후 저소득층의 의료 이용이 18%나 감소했다. 그러나 의료재정 절감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의사들이 소득 감소를 상쇄하기 위해 고소득층에게 추가 의료 이용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결국 저소득층에 대한 본인 부담금 부과는 안 그래도 심각한 의료이용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누가 그들을 배제하는가
유시민 장관이 예로 든 1년에 2000번 이상 병원에 간 환자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그러나 그는 왜 병·의원을 돌면서 하루를 보냈을까? 한국 사회에서 이들을 보살필 만한 지역사회 정신재활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국민건강보험 대상자에 비해 의료급여환자들이 외래비용을 3.3배나 썼다고 이를 줄여야한다고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더니 병의 중증도와 나이를 고려해보니 3.3배가 아니라 1.48배라고 기본 통계 자료를 해명도 없이 바꾸었다. 물론 이 수치도 의료수급권자들이 얼마나 질병이 많은지를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은 건강보험대상자에 비해 노인이 3.4배, 장애인이 6.1배, 정신질환자가 4배, 희귀난치성질환자가 25배가 더 많다.
병이 생기면 가난해지고 가난하면 병이 생길 수밖에 없는 우리사회의 심각한 양극화 때문이다. 개혁해야 할 것은 여전히 대상자가 적고 본인부담금이 많은 의료급여제도, 그리고 우리사회의 양극화이지 가난한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가 아니다.
네크라소프의 시를 기억하라
유시민 장관은 올해 신년사에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놓은 정책이 가난한 사람들을 세금을 낭비하는 자들로 취급하고 그들에게 더 무거운 짐을 지우는 정책이다.
유시민 장관은 이 신년사에서 박노해의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시를 인용했다. 나는 대학 시절 유시민의 항소이유서에서 네크라소프의 “슬픔도 노여움도 없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시 구절을 읽었을 때의 감동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러나 오늘 내가 유시민 장관이 인용한 박노해의 시를 보며 느끼는 것은 감동이 아니다. 지금 유 장관의 ‘슬픔’과 ‘노여움’은 누구를 향해 있는가? 나는 이렇게 변한 유 장관에게 ‘슬픔’과 ‘노여움’을 느낀다.
우석균/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