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한미 FTA 재협상 합의문서 서명에 대한 긴급 논평

논 평

한미 FTA 재협상 합의문서 서명에 대한 긴급 논평

한국 정부는 2010년 12월 미국 정부와 잠정합의했던 재협상의 결과를 오늘 외교 서한 형식으로 서명했다. 우리는 이번 재협상이 연평도 피격 사건으로 남북 긴장관계가 최고조인 점을 역이용한 미국의 요구로 시작되었고 그 결과도 굴욕적이고 불평등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지적과 더불어 오늘 발표된 합의문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1. 앞으로 이런 식의 재협상은 공동위원회를 통해 무한 반복될 수 있다.

합의문서 제6절 ‘최종 규정 및 분쟁 해결’ 제3항은 원 협정문안 제22장 제1절을 준용하고 있다.  그런데 원 협정문안 제22.2조 제3항다호에 따르면, 공동위원회는 협정 상의 약속을 수정할 권한을 갖는다.  이러한 권한은 협정의 개정과 달리 국내 절차를 이행하지 않아도 효력을 갖는다(원 협정문안 제24.2조).

따라서 이번과 같은 재협상은 한미 FTA가 발효된 이후 공동위원회가 얼마든지 반복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원 협정문안은 이러한 재협상에 대해 국회가 견제할 수 있을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했고, 이번 합의문안이 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앞으로 가령 양국의 통상관료들만 합의하면, 한국의 자동차 관세 유예 기간을 더 늘릴 수도 있고,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의 반쪽짜리 유예기간도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공동위원회에 이처럼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것은 미국의 다른 FTA에 비해 전례가 없는 것이다. 가령 미국-호주 FTA 제21.1조 2항(e)호, 미국-바레인 FTA 제18.2조 2항(d)호, 미국-싱가포르 FTA 제20.1조 2항(d)호는 협정문의 개정 뿐만 아니라 협정 상의 약속에 대한 수정도 각 당사국의 적법절차를 완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 이번 합의문서만 국회 비준 절차를 밟을 수는 없다.

합의문서는 미국 무역대표부 론 커크가 보낸 서한에 한국 통상교섭본부장 김종훈이 확인하는 형식의 외교 서한이다.  다시 말해 이번 합의문서는 하나의 문서에 조약체결권자 또는 전권대사가 함께 서명한 통상적인 조약문이 아니라, 행정협정문안에 불과하다.  외교부는 이번 합의문서가 원 협정문안과는 독립된 별도의 조약이라고 하지만, 재협상의 결과를 이처럼 전례를 찾기 어려운 외교 서한 형식으로 처리한 것은 순전히 미국 통상법의 규정 때문이다.  즉, 미국 무역법의 무역촉진권한(TPA: Trade Promotion Authority)에 따른 절차를 밝기 위해서는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서명된 조약문의 형식을 취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TPA 절차는 2007년 7월 1일 이전에 서명된 협정문에 대해서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국회는 TPA를 기초로 한미 FTA의 체결·비준 절차를 진행하지 않기 때문에, 통상관료들끼리 주고받은 외교 서한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국회 동의절차를 요청하는 편법을 부리지 말고, 원 협정문안이 수정된 전체를 하나의 조약으로 보고 국회 동의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3. 미국산 자동차에 대해서는 한국의 자동차 안전기준을 영원히 적용하지 못할 수 있다.

합의문서는 자동차 안전기준을 변경하여 미국 자동차는 한국의 자동차 안전기준을 준수할 필요가 없도록 보장해 주었다.  특히 합의문서 제2절 “안전기준” 제2항에서는 미국산 자동차의 수입이 25,000대에 근접할 경우 자동차의 대수를 늘릴 수 있는 근거 조항을 마련함으로써, 미국산 자동차의 수입이 아무리 늘어나더라도 한국의 안전기준은 지키지 않아도 되도록 하였다.

특히 한미 FTA가 발효되고 나면, 한국의 자동차 안전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미국산 자동차의 수는 양국 통상관료를 위원장으로 하는 공동위원회에서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국회는 아무런 견제를 할 수 없다.

4. 자동차 안전기준은 사전예방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합의문서 제2절 “안전기준” 5항 가호는 인간의 건강이나 안전 또는 환경에 위험을 초래한다는 점을 증명한 경우에만 안전기준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아직 충분한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예방하여야 한다’는 ‘사전예방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고, 안전하지도 않고 환경친화적이지도 않은 자동차의 출시를 막을 수 없도록 할 위험이 있다.

또한 합의문서의 각주 5에서 픽업트럭은 상용차로 취급하지 않는다고 하여, 미국산 픽업트럭은 한국의 자동차안전기준 항목을 준수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였다.

5.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 3년 유예는 반쪽 짜리에 불과하다.

합의문서 제5절은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 의무 전체를 3년간 유예한 것이 아니다.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는 2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 특허 의약품과 동일한 제네릭 의약품의 품목허가 신청이 있는 경우 그 사실을 특허권자가 통보받는 단계 (이는 원 협정문 제18.9조 제5항 가호에 해당함), 둘째, 특허권자가 제네릭 의약품의 품목허가에 동의하거나 묵인하지 않는 한 제네릭의 품목허가를 방지하는 단계(이는 원 협정문 제18.9조 제5항 나호에 해당함).  그런데 이번 합의문서는 2010년 12월 한국 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위 2단계의 허가-특허 연계 전체를 3년간 유예한 것이 아니라, 두 번째 단계에 대해서만 3년 유예를 적용한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허가-특허 연계 제도의 1단계를 시행할 경우, 특허권자는 어떤 제네릭 의약품이 품목허가 신청되었는지를 자동으로 통보받기 때문에, 제네릭 제약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제네릭 의약품의 시판을 저지할 수 있다.  또한 1단계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허가-특허 연계 제도를 거의 그대로 시행하여야 하며, 식약청의 품목허가 절차만 유예할 수 있을 뿐이다.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 제도의 문제점 중 하나가 제네릭 제약사를 상대로 한 특허침해소송의 증가인데, 이러한 문제점은 이번 재협상을 통해 어떤 유예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따라서 재협상을 통해 허가-특허 연계 조치의 3년 유보라는 성과를 이루었다는 정부의 발표는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다.

이런 점에서 한미 FTA 저지 범국본은 이번 합의문서가 원 협정문안과 통합된 하나의 조약으로써 국회 동의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함을 분명히 밝힌다. 또한 여기서 지적한 문제점과 더불어 원 협정문안의 문제점을 국회에서 철저하게 검증하여 사회양극화를 심화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저하시킬 한미 FTA가 비준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