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앞두고 긴박…그러나 한국은 안보인다
한반도 브리핑 <30> 자조와 상황추수주의만 난무
2006-11-28 오전 10:44:41
대결과 대화가 공존하는 과도기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미 합의한 회담 재개 약속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구체적인 회담 일자가 잡히지 않고 있고, 더욱이 사전 의견 조율과정에서 북미간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는 모습이다.
미국은 북에 대해 적어도 핵 폐기의 입장과 구체적 행동을 당연히 요구할 것이고, 북한 역시 미국에 대해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 동결 해제 등 금융제재 해법을 요구할 것인 바, 이를 놓고 의견접근이 여의치 않은 듯하다. 28일에 모여든 남북미중일 수석대표의 막바지 조율과정이 아마도 6자회담 재개 여부를 가늠할 관건이 될 것이다.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와 북한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28일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의 중재로 대면 접촉해 BDA 문제와 핵폐기를 위한 북한의 조기 이행조치 등 현안에 대한 양측의 입장을 교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일본 수석대표인 사사에 겐이치로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도 28일 현재 베이징에 머물고 있다. < 편집자>)
북한의 핵실험 이후 지금의 정세는 제재와 대결의 힘이 온존하고 있는 가운데, 대화와 협상의 힘이 공존하는 과도기적 국면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핵실험 직후 우세했던 북미 대결국면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결의안 1718호 통과로 기세를 한껏 올렸고, 지금도 제재와 대결의 기조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각국은 유엔 결의안 이행을 위한 계획서를 제출하고 각국의 사정에 따라 제재 이행에 착수했다. 일본은 안보리 결의와 별도로 대북 사치품 수출 중단 등 독자적인 제재조치를 취했고, 유럽연합(EU) 역시 북한의 화물검색에 적극 협력하기로 결정했다.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해소되지 않는 한 자위적 차원의 핵보유 입장을 아직 포기하지 않았고(폐기를 하려고 핵을 만들지 않았다는 강석주 외무성 부상의 최근 발언은 북한의 요지부동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한다) 대북제재에 공을 들인 미국 역시 북한의 핵폐기 행동이 구체화되지 않는 한 먼저 양보할 기미는 전혀 없다. 아직도 북미간 제재의 국면과 대결의 기류는 큰 변화 없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6자회담 재개를 앞두고 대화와 협상을 위한 움직임도 착실히 모색되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안전보장과 경제지원’을 하겠다는 ‘당근’을 설명했고, 곧이어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북에게 줄 수 있는 선물로 ‘한국전쟁 종료선언’이라는 깜짝이벤트를 밝히기도 했다.
최근 중간선거에서의 패배 이후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정치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긴 하지만, 6자회담 재개를 앞두고 미국이 과거의 강경기조와 무시정책보다는 조건이 맞는다면 협상에 임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한미일의 대북 공조 논의와 함께 미중간 사전 협의도 활발하게 진행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평양과 워싱턴을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인 중국의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이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와 수차례 긴밀한 협의를 하고, 북한과도 직간접 대화를 나누고 있음은 6자회담 재개 이전에 북미간 사전조율 과정의 일환임이 분명해 보인다.
▲ 대결과 대화가 공존하는 6자회담 사전 분위기 속에서 각국의 움직임이 긴박해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소극적 태도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6자회담 우리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27일 회담 사전협의를 위해 베이징에 도착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차기 6자회담 : 최소목표 설정
결국 대결과 제재의 국면이 지배할 것인가 혹은 대화와 협상의 국면이 지배할 것인가는 향후 6자회담 재개 여부와 성공 여부의 결정적인 향배가 될 것인데, 지금 상황은 비관도 낙관도 어려운 과도기에 처해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미국의 대북 요구 사항이 아직 북한에게 수용되지 않고 있는 점이 가장 큰 난관으로 보인다.
6자회담 재개 합의와 함께 BDA에 동결된 계좌의 일부를 해제하고 금융제제와 관련한 실무회담을 갖기로 한 것은 양해가 되었지만, 막상 회담에 임하는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핵실험을 한 만큼 핵폐기에 대한 명확한 행동조치를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있고(영변 원자로 가동 중단, 재처리 시설 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재입국 등 3가지 조치를 북한에 요구했다는 보도와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폐기와 관련된 구체적 행동으로 5가지 사항을 요구하기로 합의했다는 언론 보도 등이 이와 관련된 것들이다), 북한은 아직 이에 대한 정확한 수용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는 듯하다.
북한은 북한대로 미국 민주당의 승리를 의식하고 미국에게 양보를 요구할 것이지만 이 역시 만만치는 않아 보인다. 민주당의 승리가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을 제어하는 정치적 압력이 될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자동적으로’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 수정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이 부시 행정부와 마주 앉아 문제를 풀기보다 회담장 밖의 민주당과의 커넥션을 강화하고 민주당 인사와의 접촉을 통해 외곽을 때리는 노련한 전략으로 나올 경우 6자회담은 미국의 태도변화가 전제되지 않는 한 문제 해결이 아니라 교착상태를 지속할 우려마저 있다.
결국 대결과 대화가 공존하고 있는 지금의 과도기적 상황에서는 어렵게 마련된 회담의 국면과 대화의 가능성을 어떻게든 살려내서 북미간에 원만한 협상이 이루어지도록 환경과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장은 재개하기로 합의한 6자회담이 실제로 열리도록 총력을 다해야 하고, 개최가 된다면 한꺼번에 높은 기대를 갖기보다는 최소한의 목표를 이루도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즉 6자회담이 열리면 북한은 추가 핵실험 모라토리엄을 확인하고, 미국은 금융제재 해제를 위한 실무회담을 수용함으로써 일단 북미간 대화를 시작하는 조건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논의의 공개적인 결과로는 최소목표, 즉 9.19공동성명이 여전히 유효함을 재확인하고 쟁점에 대한 일괄타결의 노력이 앞으로 필요함을 확인하는 정도로 합의사항을 도출하면 충분할 것이다. 다만 공개된 합의사항 외에 실질적인 9.19 프로세스 이행에 대한 각국의 의견을 충분히 개진하고 구체적인 동시행동 순서와 상응조치 등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야 한다.
결국 향후 6자회담에 대해 전망해본다면, 그동안 회담이 무산된 원인이었던 북미간의 쟁점을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북한의 핵실험 유예 혹은 핵폐기 원칙을 재확인하고,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해제 용의를 상호 교환하고 실제 회담 과정을 통해 겉으로는 다시 9.19공동성명 정신으로 돌아간다는 최소목표를 합의해내는 한편 속으로는 실제적인 공동성명 이행 절차와 조치 등을 심도 있게 논의하면 될 것이다.
한국의 역할 회의적
문제는 최근의 긴박한 움직임 속에 한국은 도통 보이질 않는다는 점이다. 10월 31일 6자회담 재개 합의과정에 한국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만한 저간의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이후 대화국면의 준비과정에서도 한국의 모습이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다면 이는 치명적인 결함을 의미한다.
10.31 합의 이후 지금까지 거의 한 달의 기간이 사실은 6자회담을 준비하고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긴밀한 사전협의과정인 바, 여기에서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빈약해보임을 부인할 수 없다.
2005년 6.17 정동영-김정일 면담과 6.11 한미정상회담 등과 같은 활발한 노력은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6자회담 준비과정에서 소외되는 우는 범하지 않아야 이후 국면에서 우리의 역할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핵실험 이후 한국 정부의 무능을 탓하면서 사실상 지금의 국면이 한국정부의 실질적 역할을 제한하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는 만큼 지나친 기대를 하지 말자는 자조섞인 이야기마저 나온다.
또 한편에서는 이미 한국의 손을 떠난 만큼 북미 양자의 처분에 맡기고 양측의 선의를 기대하거나 아예 모순이 극단적으로 첨예화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 무슨 수가 있겠냐는 상황 추수주의마저 등장하고 있다.
핵실험과 대북제재를 가지고 북한과 미국이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충돌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할 역할이 근본적으로 제한되어 있음은 일견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어렵사리 대화의 가능성과 협상의 불씨를 살려야 하는 지금의 상황에서도 북미만 쳐다보고 있자는 주장은 지나친 자기비하에 다름 아니다.
과거보다는 한국의 역할을 찾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미 양자의 대화와 협상을 가능케 하는 우호적인 환경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한국이 할 일이 없는 게 아니다.
우선 미국 중간선거의 결과를 최대한 살려 미국의 대북 입장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한국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난 해 9.19공동성명 채택 후 논의됐던 한미간의 9.19 이행 로드맵 작성을 다시 시작해야 하고, 한국이 주도적으로 안을 만들어서 미국에게 제시하고 설득해야 한다. 9월 14일 한미정상이 합의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 논의도 지속해야 한다.
북한의 핵폐기 절차와 대북 상응조치 및 북미 관계 정상화 등을 어떻게 합의해낼 것인지 북한과 미국 모두 수용가능한 안을 만들어 우선 미국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얻을 수 있도록 한국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북한에 대해서도 한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미사일 발사 이후 남북관계가 공식 중단된 상황이지만 가능한 채널과 통로를 통해 북한의 전략적 결단을 설득하고, 그것이 지금의 제재 포위망 하에서는 북한에게 유리한 것임을 알리고 또 알려야 한다. 행여라도 민주당의 승리를 과신하고 공화당을 회피하는 시간 끌기에 나서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잘 설명해야 한다.
책임자 없는 한국 외교안보라인
이처럼 해야 할 일이 많은데도 최근 한국 정부의 모습은 그리 활발하지 않다. 극단적 대결 끝에 오히려 미국은 6자회담을 앞두고 대북 인센티브를 적극 밝히고 있는데도 정작 한국은 중단된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그 어떤 적극적인 노력과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유엔 제재 동참이나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찬성 등 지엽적인 것은 고민하면서 정작 중요한 국면에서 남북관계 복원을 통해 상황을 적극 개입할 생각은 아예 잃어버린 듯하다. 이제 정상회담이나 대북특사 등의 요구는 지겨울 정도다. 위기 상황에서 역할을 해야 할 남북 비공개 라인이 약화되었거나 실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정부는 걱정도 안하는 눈치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가장 중요한 최근 한 달 사이 한국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이 사실상 공백상황을 맞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을 보좌해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를 진두지휘해야 할 안보실장이 한 달 가까이 임명되지 않았고 외교부, 국방부, 통일부, 국정원 등 외교안보 라인의 인적 교체 과정이 지연되면서 기존 장관은 결정할 의지를 잃고 신임 장관은 결정할 수 없는 묘한 공백상황이 최근 한 달의 모습이다.
6자회담을 앞두고 각국이 치열한 외교전을 전개하고 있는 이 때, 정작 한국의 외교안보를 책임지는 주무장관이 누군지 헷갈리는 지금의 상황이야말로 북핵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애매한 입장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아무리 잘하다가도 결정적인 국면에 제 일을 못하면 한꺼번에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다.
김근식/경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