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바그람 부대 근무자가 파병반대국민행동에 보낸 글

* 2004년 8월부터 2005년 2월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했던 강성주씨가 파병반대국민행동에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글은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파병반대국민행동에 강성주씨가 보내주신 글은 삭제되지 않은 전문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한국군

강성주, 대학생

나는 2004년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윤장호 병장이 근무하던 다산부대의 통역병으로 파병생활을 했었다. 윤 병장이 테러로 아까운 목숨을 잃은 바로 그 바그람 기지 정문에서 윤 병장이 수행하던 현지인 에스코트 임무를 나 자신이 여러 번 수행하기도 했었으니, 그의 파병부대 선배인 셈이다.

내가 아프간 파병에 지원하기로 결정한 2004년, 한국 사회는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에 휩싸여 있었다. 대량살상무기를 제조 및 확산시키려는 사담 후세인을 저지하기 위해 이라크를 선제공격해야 한다는 미국의 논리에 대한 찬반의 여부를 떠나서, 과연 도대체 왜 한국군이 미국의 일방적인 이라크 침공을 왜 거들어야 하냐는 의구심이 확산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서 내가 파병에 자원하기로 결정한 데에는, 9/11 테러에 대한 미국의 정당한 자위권 행사로 여겨졌던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이라크 전에 비해서 덜 논쟁적이라는 사실도 작용을 했겠지만, 무엇보다 김선일 씨의 참혹한 참수사건으로 기억된 이라크에 비해서 아프가니스탄이 비교적 안전할 것이라는 계산도 분명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대테러 전쟁이라는 세계적 현상을 몸소 증언해보겠다는 젊은 혈기로 나는 한국군 전세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차량으로 약 2시간 정도 거리에 떨어진 미군의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6개월간의 파병생활을 시작하게 된 나는 얼마 되지 않아 전쟁의 추악한 진실을 하나 둘 씩 경험하게 되었다.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조악한 한국군 막사의 한켠에서 검은 기념비 하나를 발견했다. 이 비석은 한 한국군 장교의 순직을 무덤덤하게 기록해 놓고 있었다. ‘대테러 작전 중 순국한 한국군을 기념한다’ 는 비문의 진실을 알아보던 나는 본국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사건을 알게 되었다. 2003년 아프간에 파병된 동의부대 소속의 장교 두 명이 말다툼을 하다가 상급 장교가 하급 장교를 권총으로 쏘아서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전쟁지역이기 때문에 모든 다국적군은 항상 실탄이 장전된 총기를 휴대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파병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한국군 장교는 이역만리 타국에서 평화재건이 아닌 동족상잔을 자행하고 만 것이다. 한국의 파병반대 운동에 불을 붙일까 우려했던 탓인지, 한국군은 치밀하게 관련 보도를 통제했고, 덕분에 이 참극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이 사건 이후 한국군은 총기 내 실탄장전을 금지하는 내부규정을 만들어야 했다. 미군 주도의 아프간 대테러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한국군은 윤장호 병장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6개월간의 파병생활 동안 간헐적인 탈레반의 로켓공격보다도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바로 ‘적’이 아닌 ‘우리’였다. 한국군 간부의 통역을 전담해야 했던 나는 한국군의 불의한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산부대에서 근무하는 현지 근로자들에게 ‘수도 카불에서 진품 보석을 사오지 않으면 이 총으로 쏴 버리겠다’는 한 간부의 협박을 통역하면서 한국군 소총 앞에 겁에 질린 현지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심한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아프간 국민들에게 평화와 재건을 선사하기 위해 파병을 간다는 대의명분과는 달리 나는 점령군으로서 피지배자들을 협박하고 모욕하는 일에 끊임없이 동원되어야 했다. 학창시절 한반도에 주둔한 외세에 의해 능욕당한 조상들의 기록을 공부하면서 평화를 사랑하는 한민족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게 된 나에게 점령군으로서의 한국군의 횡포는 통쾌함보다는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또한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내 편 네 편을 따질 것 없이 여성이라는 만고의 진리 또한 체험하게 되었다. 한국군과 협조관계에 있던 미군 여성에게 ‘예쁜 몸매’ 운운하면서 ‘수영장’에 같이 가자는 농을 일삼는 한국군 간부의 말을 통역하지 못하겠다고 거부하다가 병사 주제에 명령에 따르지 않으니 강제 귀국시키겠다는 협박과 신체적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국방의 의무라는 헌법적 의무를 다 하기 위해 군에 입대해서, 현지인을 협박하고 남의 나라 여군을 희롱하라는 명령을 받는 내 신세가 처량하고 또 동시에 그들에게 죄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과거 한국전쟁을 통해 미군에게 능욕 당했던 조선인민의 후손들이 이제는 중동 침략전쟁에 참가해서 현지인을 협박하는 가해자가 되었고, 미군에게 능욕 당하던 어미와 누이를 보며 울분을 삭이던 조선의 남성들은 이제 동맹군이 된 미군 여성을 희롱하고 있으니 이것 또한 조국근대화를 통해 ‘강한 나라’가 된 조국의 업적으로 자랑스러워해야 할까?

미군의 강요에 의한 한국군의 해외 파병이 정당했던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 전에 내 나라를 지키기 위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를 해서, 엉뚱하게 ‘남의 나라’ 침략전쟁에 동원되어 있는 수천의 우리 젊은이들을 이제 어떻게 안전하게 한국으로 데려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파병장병의 안전은 물론이거니와, 전쟁의 나락에서 여성과 약자의 가해자로 전락한 우리 젊은이들의 양심을 건사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하루빨리 조국에 돌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