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이라크 상황 호전’은 새빨간 거짓말”
[독립언론인 다르 자마일의 현지 르포] 프레시안 2008-01-08
지난해 말부터 미국 언론을 중심으로 이라크 상황이 호전됐다는 보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군 병력 증파의 효과로 치안이 안정되면서 폭력 사태를 피해 바그다드를 떠났던 주민들도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얘기들도 들려왔다. 폭탄 테러로 몇 명이 숨졌다는 보도는 특히 한국 언론에서 슬슬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지에서 이라크 사태의 추이를 직접 취재하고 있는 독립 언론인 다르 자마일에 따르면 그같은 보도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다르 자마일은 7일 독립 민간통신사인 <인터프레스서비스>(IPS)에 보낸 바그다드발 기사에서 이라크 상황이 나아졌다는 2007년은 미군과 이라크인들 모두에게 최악의 해로 기록되고 있다고 고발했다.
자마일에 따르면 미군의 일부가 철수했다는 보도도 사실과 다르고, 이라크를 탈출한 난민들이 귀환한 것은 치안이 나아져서가 아니라 이민국에서 쫒아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돌아온 것이며, 지난 한 해 미군 사망자는 그 어느 해보다 더 많았다.
물론 폭력 사태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경향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 역시 바그다드 내 종파별 거주 지역을 콘크리트 장벽으로 구별해 버리고, 과거 저항세력의 전투요원들에게 300달러의 월급을 지급한 결과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돈으로 산 평화라는 것인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방식의 평화 유지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레바논계 미국인으로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등 중동 분쟁을 르포 중심으로 심층 보도해 온 자마일은 <네이션> <가디언> 등 영미권 언론에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있다. <프레시안>에서는 2005년 ‘자르카위를 찾아서’ 시리즈 등 그가 쓴 기사를 다수 소개했다.
이라크 상황이 호전됐다고 하지만 2007년은 최악의 한 해였다.
2월 중순 시작된 이라크 주둔 미군 증강은 2007년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움직임 가운데 하나였다. 최악의 폭력적 상황에 내몰렸던 바그다드와 서부 안바르주의 치안을 안정시키겠다는 목적에서였다. 그에 따라 6월까지 2만8000명의 미군이 추가로 배치되어 전체 미군의 수는 16만명 이상이 됐다.
가을이 되면서 이라크 주둔 미군은 17만5000명으로 늘어 이라크 전쟁 이래 최대가 됐다. 미국은 계속 일부 병력을 철수한다고 얘기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부시 미 행정부는 종파분쟁을 막고 미국이 지원하고 있는 누리 알 말리키 정부의 개혁을 위한 시간을 벌어주는 것도 병력 증강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라크 귀환자 증가와 종파간 폭력 감소의 진짜 이유
이라크 적신월사(이슬람권 적십자사)에 따르면 미군 병력이 증강되는 기간 동안 자신의 집을 버리고 떠난 이라크인들은 4배 늘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은 2007년 말까지 230만 이상의 이라크인들이 집을 버리고 국내를 떠돌고 있고, 또 230만 이상의 사람들이 국외로 떠났다고 추정했다. 이라크의 현재 인구는 약 2500만명이다.
국제 난민구호엔지오 ‘레퓨지스 인터내셔널’(Refugees International)은 이라크인 난민 문제를 “세계에서 가장 급속히 악화되는 난민 위기”라고 말하고 있다.
이라크인들에게 비자를 요구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였던 시리아는 지난해 10월부터 비자를 발급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일부 이라크인들은 바그다드로 돌아가야 했지만 그 수는 5만명 이하였다.
UNHCR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자발적으로 이라크로 귀환한 가족은 이라크를 탈출한 전체 숫자의 18% 이하였다. 이라크 귀환자들의 대부분은 비자가 없거나 돈이 떨어져서, 혹은 추방당해서 돌아온 것일 뿐이었다.
종파간 살인 행위는 최근 몇 달간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바그다드 거리에는 매일같이 살해된 시신들이 버려지고 있다.
종파간 폭력이 줄어든 하나의 이유는 바그다드 대부분의 지역을 종파별 거주 지역을 뚜렷이 구분해 놓았기 때문이다. 각 지역은 수 미터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주민들은 엄격한 검문을 받는다. 일상의 생활은 거의 없어진 상태나 다름없다.
이라크 적신월사는 난민 10명 중 8명이 바그다드에서 나온 사람들로 추산하고 있다.
이라크인들의 처참한 일상
2007년 말이 되면서 점령군에 대한 저항 공격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 숫자는 여전히 월 2000회 이상이다. 상수도와 전력 같은 국가 기반시설이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전쟁 전 수준으로 회복되지는 못했다. 고용 사정과 석유 수출도 마찬가지다. 이라크 정부에 따르면 실업률은 60~70%에 달한다.
국제 구호단체 옥스팜은 지난 7월 이라크 국민 70%가 안전한 음용수를 마시지 못하며 43%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간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긴급 원조가 필요한 사람은 800만 명에 달한다고도 밝혔다.
옥스팜 보고서는 또 “이라크인들에게는 식량, 구난기구, 물, 하수도 시설, 의료기관, 교육기관, 고용시설 등이 점차 줄어간다”며 “식량 배급에 의존해 살아가는 400만 인구 중 60%만이 정부 배급 시스템에 의해 배급을 받고 있는데 2004년의 96%에서 크게 떨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부실한 배급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는 인구는 거의 1000만명 가까이 된다. 이라크 정부는 지난 11월 “기금 부족과 악성 인플레” 때문에 배급하는 식량 품목을 10가지에서 5가지로 줄인다고 발표했다. 인플레이션은 공식적으로 약 70%로 알려지고 있다.
높아지는 빈곤과 실업 문제를 해결할 조치들이 취해지지 않는다면 2008년 초부터 시작될 식량 배급 품목 축소는 사회적 위기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이라크 어린이들이 받는 고통은 최악의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전쟁 전 경제 제재 기간 동안 19%였던 아동 영양실조 비율은 현재 28%까지 상승했다.
저항세력에게 월급 주고 관리
2007년은 또한 미군 점령 기간 중 가장 피를 많이 흘린 해 중 하나였다. 미국 외교정책의 개혁을 목표로 하는 독립 기구인 ‘올바른 외교정책’(Just Foreign Policy)은 이라크 전쟁 발발 후 현재까지 사망한 이라크인들은 총 113만9602명이라고 집계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 희생자를 집계하는 웹사이트 ‘ICasualties.org’에 따르면 2007년 사망한 미군 병사는 총 894명으로 전체 점령 기간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현재까지 이라크에서 사망한 미군 병사는 최소한 3896명이라고 미 국방부는 밝히고 있다.
미군은 폭력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과거 저항세력의 전투요원이었던 이들에게 돈을 지급해왔다. 2007년 말 미군은 ‘요주의 시민’(concerned local citizens)이라고 불리는 그들에게 300달러의 월급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그 정책으로 안바르주에서의 폭력 수준이 줄어들긴 했지만, 요주의 시민의 대다수가 수니파인 관계로 수니파들과 집권 시아파 정당 사이의 정치적 분열 또한 깊어졌다. 말리키 총리는 시아파 민병대 출신 요원들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정부 안보 기구에는 요주의 시민을 절대 고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군 증파의 또 다른 중요한 실패는 미군이 지원하는 말리키 정부가 과거보다 더 분열적이고 화해의 가능성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미 와 영국 가 최근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수니파의 98%와 시아파의 84%가 이라크 미군의 철수를 원하고 있다.
황준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