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16일(수) 오후 2:33 [한겨레신문]
[한겨레] 대학생 이아무개(22·여)씨는 지난해 9월 강남구 신사동의 한 성형외과에서 종아리 살을 빼는 수술(종아리퇴축술)을 받다 뇌를 다쳤다. 1시간이면 끝나는 간단한 수술이라는 애초 설명과 달리, 병원장은 1시간40분이 지나 “마취 경련이 심해 수술을 못했다”며 수술실을 나왔다. 황급히 종합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저산소증이 너무 오래 지속돼 이미 뇌손상이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된 상태였다.
이 성형외과에서 사용한 수면 마취제 ‘케타민’은 호흡곤란, 발작 등 부작용이 커 마취 전문의들도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약품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성형외과 전문의인 병원장은 직접 마취를 담당했다. 이씨는 6개월째 의식을 찾지 못하고 병상에 누워 있다. 이씨의 부모는 “마취와 응급 처치에 문제가 있었다”며 이 병원장을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지난 6일 경찰에 고소했다.
이른바 ‘전신 성형’이란 말이 돌 정도로 성형 대상이 넓어지면서 성형수술의 사고 위험성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강남의 한 성형외과 병원장은 “한 병원이 ‘첨단 시술’로 유명세를 타면 불과 몇 주일 새 다른 병원으로 급속히 번져나간다”며 “병원간 경쟁이 워낙 심해 솔직히 부작용이나 사고 위험성 등을 꼼꼼히 따져 볼 여유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전신마취 등 고위험 성형수술을 받다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 사고도 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월 턱관절 교정 성형수술을 받던 20대 남성이 마취 과정에서 뇌사 상태에 빠졌고, 얼굴 윤곽 성형수술을 받던 20대 여성은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의료소비자시민연대의 집계를 보면, 성형외과 의료사고 접수 건수가 2003년 52건에서 지난해에는 129건으로 5년새 2.5배 늘었다.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성형외과 수술에서 무차별적으로 전신마취가 이뤄지는 행태를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지난해 성형외과 개원의협의회가 조사한 바로는, 전국 800여개 성형외과 가운데 마취 전문의가 상주하는 병원은 단 네 곳뿐이다. 이 때문에 이른바 ‘보따리 마취의’가 병원을 돌며 마취를 담당하거나, 성형 전문의들이 직접 마취 시술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취과 전문의인 보건의료단체연합 백남순 조직국장은 “의사 자격증만 있으면 누구나 마취 시술을 할 수 있도록 한 의료법 등 관련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 성형외과의 경우 발작, 호흡곤란 등 응급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도 크게 떨어진다. 강태언 의료소비자시민연대 사무총장은 “개인병원들은 마취 사고 등에 대비한 응급 장비를 거의 갖추고 있지 않아 제때 손을 쓰지 못해 치명적 사고로 이어지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비전공 의사들이 아무 제한 없이 성형 분야로 뛰어드는 현상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현재 성형외과 진료 가운데 30% 가량은 비전공의들이 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의료 소비자들은 전문의와 비전공 의사를 구분하는 것조차 어렵다. 의료법 시행규칙에는 비전공의가 개원하면 ‘의원, 진료과목 성형외과’라고 표시하게 돼 있지만, 배경색 등을 이용해 이를 구별하기 어렵게 만드는 등의 편법이 성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사고 전문 신현호 변호사는 “의사와 환자 모두, 성형 수술이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의료행위라는 인식이 부족하다”며 “제도 보완이 필수적이지만 당사자들의 인식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