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근조 : 가난한 이, 소외된 이들의 영원한 파수꾼

‘참 지식인’ 김진균 교수 돌아가시다!  
[근조] 가난한 이, 소외된 이들의 영원한 파수꾼
등록일자 : 2004년 02 월 14 일 (토) 14 : 22    
  
  대표적 진보학자인 서울대 김진균 명예교수(66)가 14일 오전 별세했다. 지난해 2월 35년간 강단 생활을 마치고 퇴임한 이후에도 민주노총 지도위원, 사회진보연대 대표 등 활동을 활발히 벌여왔던 김 교수는 지병인 대장암으로 이날 오전 9시40분께 별세했다.
  
  고인은 70-80년대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4.19세대 중 대표적 사회학자로 80년대 중반 진보적 소장학자들의 연구단체인 ‘산업사회연구회’(현 한국산업사회학회) 설립을 주도해 비판적 사회과학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인은 또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등 교수운동을 비롯, 빈민운동, 노동운동, 인권운동 등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참 지식인의 길을 걸어왔다.
  
  현재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돼 있으며,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80년, 신군부에 의해 해직되기도
  
  김 교수는 37년 경남 진주 출신으로 67년 서울대 상과대학 교수로 임명된 뒤 35년간 서울대 상대 및 사회과학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김 교수는 1979년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에 연루됐으며, 80년 신군부에 의해 해직당하기도 했다. 신군부 집권에 대한 지식인 134인 성명서와 서울대 교수 시국선언문 참여가 빌미가 됐다.
  
  김 교수는 1984년 복직 이후 진보적 소장학자들의 연구단체인 ‘산업사회연구회’ 초대회장(1984-1987),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공동의장(1988-1991),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1993-1996), 한국산업노동학회 회장(1994-1996)을 지내는 등 비판적 지식인으로 현실참여에 앞장서왔다
  
  김 교수는 1972년 10월 유신 선포 직후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는 글을 학술논문집에 실었다가 논문이 통째로 사라지는 등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시절 세번의 필화 사건을 겪기도 했다. 특히 박종철군 고문 치사 사건이 폭로된 87년, 해직을 각오하고 박종철 열사의 죽음에 대해 써 <대학신문>에 기고한 칼럼이 대학 총장의 저지로 다른 글로 대치되자, 김 교수는 이 글을 이듬해 서울대에서 열린 1주기 추모행사에서 낭독한 뒤 박종철군 아버지에게 전하기도 했다.
  
  민주노총 지도위원 등 진보운동에 앞장서
  
  김 교수는 또 사회진보연대 대표, 민주노총 지도위원, 진보정당 창당위원회 공동위원장, 진보네트워크 대표 등 진보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생전에 그의 이력을 보면 1백여개에 가까운 단체대표 혹은 공동대표를 역임할 정도였다.
  
  김 교수는 이러한 사회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해 <진보에서 희망을 꿈꾼다> < 21세기 진보운동의 기획> <사회이론과 사회변혁> <노동과 발전의 사회학> <저항, 연대, 기억의 정치 1, 2> 등 책을 펴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김 교수가 세상을 뜬 날,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인 인터기업에서 근무하던 박일수(50)씨가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요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자살했다.
  
  김 교수는 자신이 대표로 있었던 진보네트워크(www.jinbo.net)에 최근까지 ‘김진균의 불나비처럼’이라는 고정꼭지에 칼럼을 기고해었다. 그중 고인이 지난해 12월, 그해 가을 있었던 노동자들의 잇딴 분신을 안타까워하며 쓴 글을 싣는다. 평생 이 땅의 낮은 곳을 돌아다봤던 비판적 지식인이자 큰 어른으로서 고인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장례위원
  
  장례위원 명단이 신문 광고에 나올 때마다 소름이 끼친다.
  
  정말 행복하게 이 세상을 떠나는 지인(知人)이야 친구들이 모여서 오순도순 그의 생애를 기리고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슬프지만 따뜻하게 장례를 치루고 장지에서나마 남아 있는 친구들이 술 한 잔 나누어 망자를 기리고 살아 있는 자들이 서로 격려한다면야 흐뭇하기조차 할 것이다.
  
  이런 장례가 아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작은 잘 못된 일을 고치고자 분신을 하고 끝내 죽음으로 가는 그런 사람들의 장례이다. 그 작은 사회적 모순은 억울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온 가족의 목숨을 잡아 쥔 그런 무게의 억압이자 숨통 막히게 하는 일이고 ‘가진 자’에게는 하루 한끼 밥값에도 해당되지 않은 작은 돈이 드는 것인데도 인간에 대해, 이웃에 대해 인색한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생기는 그런 문제인 것이다.
  올해만해도 그런 이유로 분신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있다. 모두가 노동자들이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는 나이는 아직 30대와 40대이다.
  
  누구는 말한다 : 분신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누구는 말한다 : 민주노총 단위원장 머리가 의심스럽다.
  말하자면 그의 머리에 ‘분신과 죽음의 계획이 서 있다’는 뉴앙스를 풍긴다.
  
  올해 배달호, 김주익, 곽재구, 이용석, 이해남, 이현중 -이런 사람들이, 노동자들이 이 세상을 분신으로 해서 떠났다. 이역만리 멕시코에서는 농민운동활동가 한 분이 분신자살하였다. 그리고 김승훈 신부가 떠났고 이주노동자들이 숨어 다니다가 올데 갈데가 없어서 죽었다.
  
  김신부는 참으로 명망이 있었고 민중의 삶에 가깝게 다가선 분이니 신부로서 그리고 민민운동권에서도 합심해서 장례를 장엄하고 엄숙하게 치루었다. 그 분의 장례위원회는 사회의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이주노동자는 겨우 겨우 장례를 치루었을 것이다.
  
  한 많은 이국땅에서 한을 품고 죽었다. 대한민국은 국적을 기준으로 인간을 차별하는 본보기를 이번 이주연수노동자 및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들어내 보였다. 멕시코에서 분신자살한 농민활동가는 wto가 주도하는 ‘세계화 전략’에 맞서 싸웠다. 그 세계화 전략이라는 것이 결국 미국에 근거하고 있는 농업 대 자본가 -그 들은 모든 산업을 세계적으로 장악하고 있고 지구에 ‘투자의 제국’을 굳건히 건설하고자 한다- 에게 세계 인류의 목구멍을 움켜지게 하는 그런 전략이다.
  
  그런데 노동자는 어떤가? 올해 들어서서 그 누군가가 노동자를 비난하자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내 몰아 가는 힘을 정부산하 기구나 대기업이나 어떤 규모의 기업도 얼시고 좋다고 밀어부치게 되었다. 그리고 서구에서도 일찍이 폐기된 ’손해배상청구‘를 노동조합의 일상적 활동 즉 단체교섭에서 생기는 작업일 훼손을 두고 조합간부들에게 무차별로 제기하는 짓을 서스럼 없이 감행하였다. 쥐꼬리만한 임금을 차압하는 작태, 그가 정규직으로 평생 일하서 받는 임금으로는 갚기가 불가능한 어마 어마한 돈을 청구하는 ’악마‘와 같은 자본가들 -이들에게 맞서기에는 그 동안 쌓아 온 전국단위의 민주노동조합도 속수무책이었을 뿐이다.
  
  비정규직을 철폐하라는 절규, 그리고 손해배상청구를 철회하라는 피맺힌 절규에도 사회의, 국가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90년대 초와 중반에 분신자살이 운동진영에서 자주 발생하였다. 길고 긴 군사독재정권을 청산하는 마직막 단계, 그리고 민주화로 가는 그 초 입구에 들어서기를 안간힘으로 최류탄을 마시고 의문사를 당해도 그 힘을 내기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열사’가 되었다. 당시 군사정권도 물론 그들이 키운 대재벌의 뒷받침을 받고 있었다. 올해 분신자살하는 사람은 노동자층이다. 정권은 시민운동에서 태생시킨 것이라고 평가받는 그런 정권이고 겉으로는 군사정권은 아니다. 지금은 노동자를 옥 죄우는 것은 자본가들이고 정권이 거들고 있다.
  
  80년대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열사라고 이름 부치는 사람들의 역사적 의의를 계승하기 위해서는 민민운동진영에서 ‘장례’도 하나의 투쟁이라고 인식하고 이것을 역사의 정사(正史)에 올려놓고자 하는 운동이다. 지금 노동운동이 치밀하고 사회일상생활에서 민주화를 정착시키는 가장 중요한 운동의 하나이고 보면 비정규직 철폐와 손해배상철폐 및 이주노동자 평등한 대우 등이 아주 역사적 계기를 만들어내는 사건이고 이를 몸으로 생명으로 증인해 주는 노동열사가 비통하고 장엄한 장례의 예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장례위원회가 구성되고 고문도 배치되고 장례위원장단이 서고 집행위원이 일을 맡고 장례위원들이 ‘동지’의 반열에 서게 된다. 특히 고문과 장례공동위원장의 경우 여러 사람이 배치되는데 운동계의 선배와 원로, 교수, 변호사, 목사, 신부와 수녀, 승려 그리고 민중단체의 책임자들이 들어선다. 이만하면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간 사람에게 ‘조-동-중’ 수구신문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명사’들이 즐비하게 장례위원이 되는 장례에 못지않게 ‘빛나게 ’진열되는 모습을 갖춘 것이다.
  
  옛날 남편도 참석 못한 박대통령 부인 영결식에 목사와 신부와 스님이 나와 명복을 비는 추모사를 하는 것을 보고 기독교 위주의 서양 사람들은 기이하게 생각하였다고 한다. 하기야 경찰에 붙잡혀 간 운동활동가를 목사와 신부 그리고 스님이 한 승용차에 타고 면회 가는 장면을 보고 어떤 신학자는 우리나라에서 비로소 종교간 화해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 배치가 ‘열사’들의 장례에도 나온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라, 아무리 장례가 엄숙하고 장엄하다고 해도 분신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한국사회가 사람 목숨을 이렇게 가볍게 대접하는가? 살아 있어서 절규하는 이야기를 왜 귀 담아 들을려고 하지 않는가? 우리나라가 어느 지경까지 추락하고자 하는 것인가? 내가 장례위원 명단에 들어갈 때마다 소름이 끼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이다.

전홍기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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