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의료사고 한번에 의사 패가망신?
최근 의료사고로 인한 소송에서 법원이 환자측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이러한 판결이 이어지자 의료계에서는 불만을 넘어 병원을 차라리 그만두는 게 더 낫겠다는 의견이 제기될 정도다.
지난달 서울고등법원은 뇌성마비 장애아 김모양과 가족들이 산부인과 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손해액의 60%인 1억6000여만의 배상판결을 내렸다.
지난 9일에는 뇌성마비로 태어났다 숨진 홍모군의 유족이 산부인과 병원을 상대로 손해액의 50%인 1억140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15일에는 파상풍으로 사망한 강모씨의 유족에게 병원은 2700여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도 있었다.
이처럼 병·의원에 대한 손해배상판결이 잇따르자 의료계에서는 “한번만 실수하면 완전히 망할 수 있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장기적인 경기불황에 환자수 감소, 저수가 정책 등으로 인해 병원 경영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막대한 손해배상액은 그야말로 폐업으로 직결된다는 것이다.
특히 의료계가 판결에 불만을 터트리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수가. 수가가 선진국의 1/10 수준에 불과한 데도 배상은 선진국과 동일한 수준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재판부가 의료과실로 뇌성마비가 발생할 수 있는 확률을 6∼8%로 잡은 것을 기준으로 “분만성공 시 수가가 12만원이고 배상금이 적어도 1억5000만원이라면 100건을 시행 1100만원을 벌고 9억~12억이 나갈 것”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고통받는 환자와는 또 다르게 의사에게도 진료를 계속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저수가 정책이 유지되고 의료사고에 대한 별다른 대책이 없는 이상 한번의 의료사고를 겪는다면 병·의원의 운영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과연 그 피해는 어디로 갈까.
의사나 의료계에 공익성을 외면한다는 비난을 하기 전에 제대로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역시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 만큼 중요하게 느껴진다.
박동준기자 (pdj28@dailymedi.com)
2004-03-17 1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