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ul><ul>
<h2>절 규</h2>
<h3>살고 싶어요 어머니.
어둠 속에 숨어서 히히덕 거리는 박쥐가 아니라,
이 눈치 저 눈치에 주눅드는 천덕꾸러기 아니라,
어머니 살고 싶어요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게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게
왜 죄가 돼야 하나요?
왜 이런 고통 속에 몸부림쳐야 하나요?
어머니
살고 싶어요, 사랑하고 싶어요.
이 땅에 발딛고 꿋꿋이 서서,
이 하늘아래 떳떳이 서서,
내 삶의, 내 사랑의 주인이고 파요.
사람을 빨갱이로 낙인찍는,
빨갱이 딱지붙으면 죽일 놈되는…
사상과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뿌리째 빼앗는
반인간적 국가보안법은,
국가보안법에만 있진 않았어요 결코 있지 않았어요.
동포를 이간질하고 갈라놓는
아, 저 저주스런 3.8선은 3.8선에만 있진 않았어요
우리들 가슴 마다마다에도 있었어요.
살고 싶어요 어머니.
사랑하면서 사람답게, 이땅의 주인으로 살고파요.
그게 남자든 여자든,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게
죄가 되지 않는 참세상 사람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그렇지 않다면,
아아 어머니, 정녕 그렇지 않다면,
저 죽어 차라리,
세찬 눈보라 맞으며 동구 밖 묵묵히 지키는
한 그루 고목이고 싶어요. 바위이고 싶어요,
그렇지 않다면, 정녕 그렇지 않다면,
찢겨져 펄럭이는 내릴 수 없는 깃발이고 싶어요
잠들지 않는 깃발이고 싶어요.
내 차마 원망할 수 없는,
아아, 사랑하는 어머니
우리 어.머.니.</h3> </td></tr></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