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국 / 신동엽 님


祖  國

화창한

가을, 코스모스 아스팔트가에 몰려나와

눈먼 깃발 흔든 건

우리가 아니다

조국아, 우리는 여기 이렇게 금강 연변

무를 다듬고 있지 않은가.

신록 피는 오월

서부사람들의 은행 소리에 홀려

조국의 이름 들고 진주코걸이 얻으러 다닌 건

우리가 아니다

조국아, 우리는 여기 이렇게

꿋꿋한 설악처럼 하늘을 보며 누워 있지 않은가.

무더운 여름

불쌍한 원주민에게 총 쏘러 간 건

우리가 아니다.

조국아, 우리는 여기 이렇게

쓸쓸한 간이역 신문을 들추며

비통 삼키고 있지 않은가.

그 멀고 어두운 겨울날

이방인들이 대포 끌고 와

강산의 이마 금그어 놓았을 때도

그 벽 핑계삼아 딴 나라 차렸던 건

우리가 아니다

조국아, 우리는 꽃피는 남북평야에서

주림 참으며 말없이

밭을 갈고 있지 않은가.

조국아

한번도 우리는 우리의 심장

남의 발톱에 주어본 적

없었나니

슬기로운 심장이여,

물 속 흐르는 맑은 강물이여.

한번도 우리는 저 높은 탑 위 왕래하는

아우성 소리에 휩쓸려본 적

없었나니,

껍질은,

껍질끼리 싸우다 저희끼리

춤추며 흘러간다.

비오는 오후

뻐스 속서 마주쳤던

서러운 눈동자여, 우리들의 가슴 깊은 자리 흐르고 있는

맑은 강물, 조국이여.

돌 속의 하늘이여.

우리는 역사의 그늘

소리없이 뜨개질하며 그날을 기다리고 있나니.

조국아,

강산의 돌 속 쪼개고 흐르는 깊은 강물, 조국아.

우리는 임진강변에서도 기다리고 있나니, 말없이

총기로 더럽혀진 땅을 빨래질하며

샘물같은 동방의 눈빛을 키우고 있나니.

<月刊文學. 1969년 6월호> 서시  

* 조국의 하나됨을 가로막아…

  민족과 국토와 사상과 양심.. 하여 사람까지 둘로 나누어,

  피와 눈물과 대립으로 범벅된 야만의 20세기 한반도를 지탱했던,

  국가보안법의 완전한 철페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