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지부장 징계 상정 결의에 대한 서울대병원지부의 입장]
‘보건의료노조 중집위의
서울대병원 지부장 징계 상정 결의를 즉각 철회하라’
보건의료노조 지도부는 각성해야한다
지난 9월1~3일 동안 전북 부안에서 보건의료노조 2004년 18차 중앙집행위원회(이하 중집위)가 개최되었고 여기에서 김애란 서울대병원지부장 징계를 중앙위에 상정하기로 결의하였다. 서울, 경기, 부산본부에서 조직질서를 문란하게 한 행위, 조직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 선언, 강령, 규약 및 결의사항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징계를 요청하였고 중집위 전체 무기명 투표에 의해 찬성 17명, 반대 8명, 기권 2명으로 징계상정을 결정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중집위의 징계 결의가 본조 지도부의 판단과 다른 입장을 취하는 모든 지부와 조합원들에게 강력한 ‘자갈’을 물리기 위한 하나의 본보기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징계로 민주노조 운동을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부당한 조치로 규정,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임을 천명한다.
■ 보건의료노조 중앙집행위와 징계 요청한 3개 본부는 왜곡된 사실을 징계사유로 들어 억지주장을 펼치고 있다.
징계 사유를 보면, 전국 상경투쟁이 이번 산별총파업 방침임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병원지부는 독자적인 지부파업을 전개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2004년 6월 1일 1차 쟁의대책위원회(10차 중집위) 회의에서 「최대한 파업대오를 조직화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병원로비파업을 할 경우 지역본부 논의를 거친다.」를 결정하였다. 서울대병원지부는 이에 근거하여 서울본부에 전야제부터 지부 로비파업과 고려대 노천극장 상경투쟁을 같이 전개할 수밖에 없다는 상황을 알렸고 서울본부는 이를 승인하였다.
그리고 서울대병원지부 전야제때부터 중앙거점투쟁에 최대한 합류하였다.
뿐만 아니라 쟁대위 회의 결정에 의해 병원로비파업(농성)과 상경투쟁을 동시에 진행한 지부는 서울대병원지부이외에도 몇몇 지부가 더 있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결국 보건의료노조 중앙집행위는 자신들의 결정과 승인에 의해 진행된 지부파업을 징계사유로 삼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유인물 배포를 징계사유로 삼는 것은 보건의료노조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억압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조합의 자유로운 활동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직장 내에서의 유인물 배포이다. 이에 대해 사용자도 표면적으로는 자신을 공격하는 유인물 배포를 징계 사유로 삼지 않는다. 현 정부에서도 노동자가 정부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작성하여 배포했다고 처벌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치․사상의 자유를 보장해야 할 노동조합에서, 서울대병원지부가 민주노총 집회에서 유인물을 배포하였다고 징계사유로 삼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인가? 보건의료노조가 얼마나 관료화되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산별노조는 모든 소속지부와 조합원들이 공개적이든 비공개적이든 상층에 대한 비판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보장할 때 민주노조로서 의미를 갖는다. 유인물을 통해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이를 ‘조직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규정하여 징계사유로 삼는 것은 조직을 폐쇄회로에 가둬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보건의료노조 소속 조합원이면서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이다. 하부의 입장이나 주장이 단위노조 지도부에 의해 부정된다면 노동운동 진영 전체로부터 검증 받기 위해 공개하고 공유하는 과정을 거쳐 해결점을 모색해갔던 것이 민주노조의 역사이다. 그런데 보건의료노조 지도부는 이를 아예 명예훼손으로 규정하며 민주노조의 건강한 역사와 운동방식마저 왜곡하고 자신들만의 억지스런 판단기준을 들이대며 서울대병원지부장을 징계하려 한다.
■ 보건의료노조 서울본부는 규약 제8조를 임의 해석하여, 서울대병원지부 조합원의 89.9%가 찬성으로 가결된 ‘조건부 탈퇴’ 찬반투표마저 김애란 지부장이 조합원들을 선동해 규약을 위반한 것으로 규정하고 이를 징계사유로 삼고 있다.
그간 보건의료노조 지도부는 산별합의안이 다수의 찬성에 의해 가결되었다며 주변의 다양한 문제제기를 외면했고, 토론회 개최 요청까지 거절하면서 ‘문제없다’는 입장만을 되풀이했다. 이렇듯 ‘다수결’로 모든 것을 합리화시키던 그간의 모습은 어디 가고, 서울대병원지부의 다수결은 ‘선동’되어진 ‘다수결’로 애써 외면하고 왜곡시키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한편, 서울대병원지부의 조건부 산별탈퇴는 조직형태변경이다. 산별노조 규약 제8조의 「조합의 가입과 탈퇴는 개별적으로 한다」는 조항은 조합원 개개인의 조합 가입과 탈퇴를 말하는 것으로 서울대병원지부의 조직형태 변경 결정과는 무관한 조항이다.
현재, 보건의료노조에 가입하는 방법이 조직형태변경을 통해서 가입하듯이 탈퇴 또한 마찬가지로 조직형태 변경으로 가능하고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더 이상 궁색한 이유를 징계사유로 삼아 자신들을 정당화시키려 하지 말았으면 한다.
■ 보건의료노조 부산본부가 주장하는 징계사유는 모든 지부와 조합원들은 ‘밖에 나가서 입 조심하지 않으면 모두 징계 대상이 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부산본부의 경우, ① 산별합의안 10장 2조 폐기를 주장하고, 이와 관련된 토론회를 개최하고, 본조의 지원이 부족함을 문제 삼은 것을 ‘조직 질서를 문란하게 한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② 또한 10장 2조에 대해 본조와 상의 없이 유인물을 배포하고, 인터넷에 게시하고, 언론에 입장을 표명하고, 토론회를 개최한 것을 ‘보건의료노조 명예를 훼손한 행위’ 규정하고 있다.
부산본부의 주장대로라면, 징계 대상에 오를 단위 지부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어쩌면 대부분의 지부가 다 징계대상이 된다는 협박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어느 누구라도 합의안의 내용 중 문제가 되는 조항에 대해 폐기를 주장할 수 있다. 그것이 전체 노동운동 진영의 문제라고 인식된다면 공개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것이 민주노조이다.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면, 그 자체가 진리인가? 인간의 진보의 역사는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 확대 및 심화의 역사이기도 하다. 끊임없는 문제의식의 연속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표현과 문제의식의 확대 재생산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를 오히려 징계사유로 삼아 징계하겠다는 것은 역사를 거스르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뿐만 아니라 하부는 상부에 대해 그 지원의 부족함을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내용과 방식에 있어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지부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입 다물고 주는 대로 받고 만족해라’는 권위적이고 관료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본조와 다른 입장’을 갖고 유인물을 배포하고 인터넷에 게시하고, 언론에 입장을 표명하는데, ‘본조와 상의 없이 했다’고 ‘명예훼손’이라니…… 도대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표현의 자유 또한 보건의료노조에서는 ‘허가제’인가? 산별합의안에 대한 문제의식마저 본조에 ‘검열’을 받아 공개해야 하는가? 본조에 대한 비판마저 ‘허가’를 받고서야 가능한 일인가?
도대체 얼마나 더 권위적이고 폐쇄적으로 산별노조를 이해하려 드는가?
■ 분명 10장 2조는 지부 투쟁을 무력화시키고 노동자의 분열을 조장한다.
자본이 구조조정을 강요할 때, 최소한 민주노조라면 결코 다른 합의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것을 포괄해서 수용할 것인지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그것은 독립적으로 거부의 대상이다. 우리는 산별협약 10장 2조가 구조조정에 버금가는 제도적 장치라고 판단한다. 그러한 이유로 산별협약 10장 2조를 문제 삼는 것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산별노조이지만, 지부마다 다양한 상황과 조건이 있다. 특히, 기업별 노조 활동 경향이 강한 우리나라 노동운동 상황에서 이를 하루아침에 뛰어 넘을 수는 없다. 서구 유럽 산별노조와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이 때문에 산별교섭에서 기준협약을 만들고 있다. 근로조건을 후퇴시키는 산별합의안을 지부에 그대로 적용하라는 것은 조합원들의 요구를 무시하라는 것이며 조합원들을 투쟁의 주체로 조직할 수 없게 한다. 결국 현장은 약화될 것이고, 이것은 바로 산별노조를 약화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산별합의안은 서울대병원지부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지부에서도 사측이 지부 지도부를 무시하고 교섭을 회피하는 등 사실상 ‘족쇄’로 기능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서울대병원지부는 10장 2조 폐기를 요구한 것이다.
5․16쿠테타 이후에 노조 설립이 허가제로 전환되면서 이미 ‘단결권’을 제한 받고 있다. 병원노동자들은 직권중재라는 악법 속에 ‘단체행동권’마저 제한 당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2003년 자본과 권력은 주5일제 도입이라는 미명하에 근로기준법을 개악하였고, 이 과정에서 근로기준법을 상회하는 취업규칙과 단체협약 수정을 법제화시켜 ‘단체교섭권’마저 제한하려 했다.
산별합의안 10장 2조가 국가에 의해 강요되는 법이 아닌 ‘자본과 노동조합의 자율적 합의’라는 허울을 쓰고 제도적으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기능으로 작용하리라는 것은 이미 지부 투쟁과정에서 드러났다.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것을 막고자 할 뿐이다. 그것이 민주노조가 지켜야 할 원칙이라고 판단한다.
■ 보건의료노조 지도부는 더 이상 민주노조를 병들게 하지 마라!!
70년대, 80년대 노동조합 활동이 인정되지 않고 그나마 한국노총과 같은 어용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권리는 철저히 짓밟을 때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며 87년 노동자대투쟁을 전개하였고, 전노협을 결성하였고, 현재의 민주노총을 건설하였다. 수많은 열사들이 죽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구속되고 수배되고 해고 되었다. 그야말로 피의 노동조합이다. 이 과정에서 결코 손 놓을 수 없었던 것이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이었다.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조합원들의 요구를 바탕으로, 조합원들을 투쟁의 주체로 세워, 투쟁을 통해 요구를 쟁취하는 것이 민주노조 운동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조합원 찬반투표와 쟁대위, 지부장회의에서 통과되었기에 “10장 2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서울대병원지부장 징계 상정 결정은 민주노조 운동의 정신을 위반하는 것이다. 다수결 원칙에 따라 결정하지만, 소수의 문제제기가 있다면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여 문제점을 정확히 살피고 최대한 보완하기 위해 노력해야 된다.
서울대병원지부 조합원은 이번 결정의 철회를 강력히 요구한다. 그리고, 민주노조 운동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징계의 부당함을 알리고 10장 2조 폐기와 징계 철회투쟁을 강력히 전개할 것임을 밝힌다. 보건의료노조 지도부의 진지한 성찰을 기대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