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당사 첫 동성애 공식기구 떴다
△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준)에서 발언하고 있는 김혜경 대표. 김미영 기자
어젯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 발족<BR>“편견의 벽을 부수어나가자”
“성별과 상관없이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대시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지난 18일 저녁 7시,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엔 1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색다른 모임을 열었다. 다수 위주의 가치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받고, 차별받는 집단중 한 한 부류인 ‘동성애자’들이 이날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준) 발족식을 맞아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발족식은 오후 7시40분부터 시작됐다. 민주노동당의 김혜경 대표, 최순영 의원, 이정미 최고위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부대표, 최준원 친구사이 대표 등 동성애자단체 활동가들도 이 자리에 함께 했다. 이날 모임엔 민주노동당 가입의사를 밝힌 탤런트 홍석천씨도 모습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홍씨는 이 자리에서 입당원서를 쓰고 민주노동당에 가입했다.
△ 민주노동당 입당원서를 쓰고 있는 홍석천씨. <BR>
홍씨는 “정치적 문제에서 벗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커밍아웃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연대감을 갖고 생활하려 하지만 연예인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며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는데 세월 좋아졌다는 것을 느낀다. 앞으로 성소수자들이 재미있게 잘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성소수자들을 주빈이고 이들의 권익대변을 위한 위원회의 발족 덕분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사회의 편견 때문에 다른 집회나 모임과는 색다른 구석이 있었다. 사진촬영 등은 철저히 금지됐고, 옆 사람이 아는 척을 하기 전까지 먼저 아는 척을 하는 것도 금지됐다. 주위에 있는 사람이 이성애자인지, 성소수자인지 묻는 행위도 할 수 없었다. 주최쪽은 “그만큼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이 컸고, 사회의 편견의 벽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참석자들의 표정만은 밝았다.
△ 민주노동당 김혜경 대표와 홍석천씨가 포옹하고 있다.
김혜경 대표는 축사에서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성적소수자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 있다”며 “민주노동당 5만 당원이 앞장서 잘못된 생각을 고쳐나가고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바꿔나갈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최순영 의원은 “홍석천씨 입당이 후회없는 선택이 되도록 성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들이 법적·제도적으로 보장받고, 대접받는 사회를 만드는 데 힘쓰겠다”며 “민주노동당의 정책을 발의하고, 입법하는 내 의무에 충실하겠다”고 말했다.
이 모임의 초대 위원장으로는 현직 간호사인 동성애자인권연대의 건강증진팀장 여기동(43)씨가 추대됐다. 여씨는 “우리 사회에 뿌리깊은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뿌리뽑고,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모든 측면에서 해방돼 완전한 자유와 평등, 행복추구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드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행사는 성소수자들의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성소수자위원회의 출발은 2002년 대선을 맞이해 이반(성소수자) 민주노동당 당원들과 지지자들이 모여 만든 커뮤니티가 선거공간을 계기로 진보와 성정체성이 담긴 ‘붉은이반’을 결성하면서부터다. 붉은이반은 지난 2년간 커뮤니티에 민노당의 정책을 선전하고 홍보하면서 지지기반을 넓혀왔고, ‘친구사이’ ‘동성애자인권연대’ 등이 준비위원회에 결합했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는’ 민주노동당 내부에서도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의 벽이 있음을 깨달아야 했다. 이들은 좌절하지 않았고, 올해 당직자 선거를 계기로 붉은이반을 지지하는 이성애자 당원모임인 ‘붉은일반’이 결성됐고, 지난달 열린 중앙위원회에서 정식 부문위원회로 인준받았다. 우리나라 정당 사상 최초의 동성애 공식기구다. 이곳에서는 앞으로 성혼과 입양 등 동성애자의 법적·제도적 완전한 평등을 위한 정책을 개발하고 입법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 여기동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여기동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 일문일답.
- 성소수자위원회(준) 출범 의미는.
= 노동자, 농민, 서민 등 사회적 약자를 옹호하고 대변하는 정당인 민주노동당이 편견의 골이 깊고 가장 차별받는 동성애자 문제를 받아들인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특히 국내 정당 최초로 동성애자 문제를 다루는 위원회가 생겼고, 이를 계기로 동성애자들의 권익보호와를 위한 정책개발이 실효를 거두었으면 좋겠다.
- 공개 활동을 해야 하는데, 커밍아웃은 했나.
= 성정체성은 초등학교 때부터 고민했지만 확신을 가진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가족들에게는 3년 전에 했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어하셨는데, 지금은 많이 이해해줘 고맙다. 직장과 다니던 학교에서는 주변 사람들 일부에만 커밍아웃을 한 상태다.
- 초대 위원장을 맡게 됐는데.
= 정당 내에 동성애 커뮤니티가 생겼다는 것만으로 우리 사회에 큰 선물이다. 손가락질받을 일이 아니라 환영할 일이다. 특히 21세기는 다양성 사회라는 점에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사회적 제도적 차별을 고쳐나가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
- 향후 활동계획은.
= 당내의 교육사업에 주력할 것이다. 커뮤니티에 당의 정책과 사업을 소개해 지지를 끌어내고 성적 소수자에 대한 정책을 개발해 입법화하도록 하겠다. 결국 완전한 평등은 차별이나 억압을 받지 않는 것을 넘어, 법 앞에 평등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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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