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 농성장에서 보낸 하룻밤-국회앞 국보법 폐지 천막 농성장 1일 취재

천막 농성장에서 보낸 하룻밤
국회앞 국보법 폐지 천막 농성장 1일 취재

민중의소리 임은경 기자

시끄러운 휴대폰 알람 소리가 단잠을 깨운다. 뒤로 갈수록 점점 커지는 멜로디. 여섯 시다.
  
  “… 오늘은 토요일이니까 일곱 시에 일어나도 돼. 제발 불 좀 꺼 주라.”
  
  졸린 목소리가 한 마디 한다. 만만치 않은 하루가 또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평일에는 여섯 시에 일어나 조용한 여의도를 깨우며 하루를 시작하지만 주말에는 피곤한 몸을 좀 쉬라고 일곱 시에 일어나기로 했다.
  
  아직 주변이 어두운 시각, 찬 공기를 가르며 다들 천막 농성장 앞에 모였다. 눈곱만 겨우 뗀 얼굴이지만 밝게 웃으며 서로 밤새 잘 잤느냐는 인사를 나눈다.
  
  “해병대 체조 시작하겠습니다. 하나, 둘, …”
  
  “자 저기 보이는 국회를 향해 힘찬 함성 한번 질러 봅시다, 야…!”
  
  20여 명이 내는 소리지만 푸른색 지붕이 떠나갈 듯하다. 체조를 하는 사이 날이 제법 밝았다.
  밤새 찬바람을 막느라 천막 입구에 덧친 두꺼운 비닐막을 걷어내고, 앞에 쌓인 은행잎과 쓰레기를 함께 치우고 주변을 정리하며 하루를 준비한다.
  
  신건수 농성단 상황실장은 어제 이곳에서 민주노총 집회가 있었는데, 끝나고 나니 쓰레기만 잔뜩 쌓였더라며, “동지는 간데 없고 쓰레기만 남았네”하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밤 늦게까지 불이 환한 국가보안법 폐지 농성 천막. ⓒ민중의소리

  토요일인 이날(27일)은 유난히 국회 앞 집회가 많다. 2시에 통일연대의 주한미군 철수투쟁 집회, 3시에 민주노총의 비정규 개악법안 철회 집회, 4시에 파병반대국민행동의 파병연장 반대집회 등이 줄줄이 잡혀 있다.
  
  하지만 농성단은 이와 무관하게 매일 해오던 거리 선전전을 변함없이 진행한다. 보통 아침 체조가 끝나면 팀을 나눠 지하철 선전전을 하며 출근하는 시민들에게 홍보물을 나누어주고, 다시 모여 아침 식사를 한 다음 국회 주변을 도보로 돌며 국가보안법 철폐의 뜻을 알리는 것으로 하루 일정이 진행된다.
  
  그리고 나면 또다시 하루 종일 선전전 및 1인 시위, 저녁 7시 매일 농성장 앞에서 열리는 촛불 문화제, 그리고 모두 모여 종례와 함께 하루 생활 점검과 반성을 하면 보통 밤 11시. 그제서야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단잠에 빠지는 것이다.
  
  특히 이번 주말 동안에는 주말 시간을 낼 수 있는 학생들을 많이 모아 활발한 활동을 벌이자는 ’56인 끝장투쟁’도 벌인다. 국가보안법 56년사를 상징하는 뜻으로 56명을 모으기로 한 것이다.
  
  신 상황실장은 “주말 시간이 비는 학생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이 일정들을 내내 단식을 하며 함께 하는 사람들도 있다. 백종호 한총련 의장을 비롯한 학생 4명과 송현석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정책위원장. 송 위원장은 더구나 잠자리마저 난방조차 안되는 좁은 모형 감옥이다. 감옥 밖에는 ‘국가보안법 폐지 단식 25일째’라고 쓰여있다.
  
  26일 밤에는 민족통일애국청년회(민애청)에서 단식을 하는 송 위원장을 지지 방문하러 찾아와 밤늦게 잠시 간담회 시간도 가졌다.
  
  이 힘겨운 농성을 끝내줄 ‘국가보안법 폐지’는 과연 언제쯤 오는 것일까. “오늘은 주말이라 단기 참가자들이 더 많이 와줄 것 같다”며 농성단은 힘을 내어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상황실 안의 게시판에 적힌 일정이 빽빽하다. ⓒ민중의소리

△26일 저녁 7시 천막 농성장 앞에서 열린 ‘여의도 천막촌사수’ 촛불문화제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이날 촛불문화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미군기지이전을 반대하는 평택주민 등 이날 국회앞에서 집회를 가진 많은 이들이 함께 참여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2004년11월27일 ⓒ민중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