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영리에 대한 ‘허수아비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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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영리에 대한 ‘허수아비 공격’

-의료기관의 영리법인 허용 관련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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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는 5월 13일, 의료기관의 영리법인 허용 등을 골자로 한 ‘의료서비스육성방안’을 검토하여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참여연대가 즉각적인 논평을 내고 철회를 주장했다. 18일에는 참여연대를 비롯한 민주노총, 경실련, 녹색연대,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46개의 NGO들이 나서서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즉각적인 철회를 요구했다.

NGO들이 내세우는 반대의 논거들은 2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영리법인 허용은 한국의 의료체계(건강보험)를 붕괴시키고 의료 이용의 양극화를 초래한다. 둘째, ‘의료 공공성’을 무너뜨리고 의료를 자본의 이윤추구 대상이 되게 함으로써 의료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의료비 폭등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대 논거들은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에 기초하고 있다. ‘자본’과 ‘영리, 비영리’에 대한 실재와 다른 ‘허수아비’를 만들어놓고 이를 공격함으로써 자신들의 의료이데올로기(공공성)를 관철시키려 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자본과 시장을 사악한 것 혹은 ‘공공의 적’으로 단정하고 공격함으로서 의료의 자본 참여를 막는 것이 공공성과 건강보험 발전의 중요한 전제인 것처럼 말한다.

NGO들의 이런 주장은 “‘의료’의 영역에까지 ‘자본’이 침투해 들어와 ‘이윤추구’하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을 근본에 깔고 있다. 만인에게 평등해야 할 의료는 자본과 시장의 영역일 수 없고, 오직 ‘공공’(=국가)의 영역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확고하다. 따라서 ‘자본의 침투’를 막고 의료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한가하게 검토하고 토론할 겨를이 없으며, 공공의 영역을 넘보는 자본에 대한 ‘투쟁’만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정부의 검토 방침이 나오자말자 우리나라 NGO들이 ‘장관 퇴진’까지 거론하며 발끈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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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들은 “모든 의료기관을 ‘비영리’법인으로 제한해 온 상황에서도 병원이 ‘돈벌이’에 치중하고 시장이 과잉되어 ‘공공성’이 취약한 형편인데, ‘영리’법인까지 허용하면 공공성은 아예 붕괴 된다”고 주장한다. ‘영리’라는 ‘공격용 허수아비’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돈벌이(영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비영리법인과 영리법인의 차이는 없다. 영리든 비영리든 돈벌이를 제대로 못하면 존재할 수 없다. 둘 간의 유일한 차이점은 이윤의 재분배(배당)가 법적으로 가능한가 여부이다. 여기서 ‘비영리’란, 병원이 돈벌이를 못하게 막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 근본 취지는 기부금 모집과 세제혜택을 법으로 보장해주는 대신, ‘민간자본’이 투여된 병원임에도 그 이익금 전체를 배당 없이 재투자 하도록 유도한다는데 있다. 즉, 다른 산업에 비해 수익성이 낮은 의료산업에 자본을 끌어들여 국민보건에 필요한 의료시설을 확충하는 한 방법인 것이다.

이에 비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영리법인’이란, 의료기반 시설이 이미 갖춰진 조건 속에서 의료산업의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다. 의료시장 개방에 대비하고 나날이 고급화되는 국민의 의료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적극적인 자본투자를 유도하려는 것이다. 비영리법인이 국가가 일정하게 법으로 자본을 보호해주는 형태라면, 영리법인은 전적으로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운영되는 자본이다. 끊임없는 투자와 R&D 등을 통해 고부가가치를 생산하고 의료소비자에게 선택을 받아 살아남도록 요구된다. 그 대가로 이윤과 배당은 당연하다. ‘의료’를 생산한다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시장질서 속에서 정당한 ‘이윤추구’는 적극 권장된다. 사회는 이런 ‘의료’ 영리법인체를 필요로 한다.

영리법인과 이윤추구가 허용된다고 해서 의료의 본질(professionalism)이 왜곡되거나 의료수혜의 양극화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자본의 이윤추구와 의료전문가의 프로페셔날리즘은 별개로 독립되어 있다. 미국에서는 병원비용(Hospital fee)과 의사의 행위료(Doctor’s fee)가 분리된다. 의사의 치료행위를 병원 자본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시키려는 발상이다. 미국 의료는 시장의 역할이 크지만, 자본의 지배와 이윤추구 때문에 의사의 직능이 왜곡되지는 않는다. 자본가에게도 ‘상도의’라는 게 요구되지만, 의료는 일차적으로 의사 전문가의 관할 하에 있다. 의료가 자본의 지배 하에 있는 것(시장 윤리)이 국가의 지배 하에 있는 것(관료 윤리) 보다 덜 윤리적이고 의학적 사명과 배치된다는 생각은 근거가 빈약하다. 오히려 자본과 국가가 적절히 힘의 균형을 이루는 의료제도 하에서 환자를 생각하는 의료 전문가의 자율성과 프로페셔날리즘은 보다 잘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의료수혜의 양극화 문제는 영리법인의 이윤추구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세금으로 국공립과 공보험을 운영하는 국가의 문제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하에서는 정부의 공공 투자도 시장질서 속에서 민간과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요구된다. 정부가 의료시장에 투자를 실속 있게 하고 그 성과를 저소득층 국민들에게 골고루 제공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정부 책임이다. 국가 자신이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을 이유로 ‘이윤추구는 나쁘다’고 시장을 탓하는 것은 한심한 ‘국가 혹은 공공 이기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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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들의 일관된 입장은 공공성을 강조하는 것에 있다. 이 ‘공공성’이란, 시장과는 ‘상극’에 있는 공공성이다. 이러한 공공성 론(論)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숨기고 있다. ‘공공’이란 하나의 가치일 뿐이고 그 실체는 결국 국가(정부)이다. NGO가 말하는 공공성이란, 의료에 대한 ‘국가의 지배’를 의미한다. 공공의료라고 해서 ‘공짜’는 아니다. 대신 세금을 더 내야 한다. 따라서 ‘시장논리’에 의한 자본의 지배가 문제라면, 반대로 국민의 세금을 재원으로 하는 ‘국가의 지배’는 문제가 없는가에 대한 논의도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래야 ‘공공성’ 주장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국가개입 문제에 대한 NGO들의 입장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의료는 이제까지 “시장이 너무 과잉되고 자본의 논리에 의해 지배당해 왔다”는 것이 주장의 전부다. 시장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의료에 대한 국가의 역할은 거의 전무했으므로, 이 ‘역할부재’ 말고 국가의 문제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 국가 개입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공공성 ‘관점’은, 그동안 한국 의료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초래해 온 문제(정부실패)의 심각성을 생각할 때 위험천만한 것이다. 사실은 국가의 ‘전근대적’ 의료지배가 배태시켜 온 문제들(취약한 공공비율, 낮은 건강보험 보장성)을 엉뚱하게 죄 없는 시장 탓으로 돌리고 국가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있는 ‘사기성’ 농후한 주장이다. 평등주의 의료이데올로기에 따라 사회주의적 ‘국가주의’ 의료체계를 확립하겠다는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면, 이러한 공공성 시각은 존립 근거가 없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두 골간을 이루고 있다는 ‘요양기관 강제지정제’와 ‘보험수가제’를 30년 넘게 운영해 온 주체는 정부였다. 이 때문에 의료는 정부의 전근대적 통제 하에 있었다. 시장다운 시장은 없었다. 세계 유례없는 ‘공급자 강제’와 가격결정의 대가로 정부가 ‘암묵적으로’ 용인해 준 ‘비보험’이라는 ‘유사시장’이 자본주의 시장을 대신했다. ‘시장이 과잉되었다’는 인식은 이 유사시장에 대한 일종의 착시현상일 뿐이다.

강제지정제와 한국 의료현실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생략한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시민단체들은, 의료에 대한 국가의 전근대적 지배와 ‘정부실패’ 때문에 발생한 의료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국가의 지배를 더욱 강화하여 전일적인 국영관리체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때 이 ‘국영관리’란 영국의 NHS와는 근본부터가 다른, 사적 자본에 대한 사회주의적 착취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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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법인은 허용되어야 한다. 이제까지 시장은 없고 국가와 관료만 비대했던 ‘관치의료’를 탈피하고, 보건의료 분야에도 시장의 경쟁 체제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 의료소비자에게 ‘의료선택권’을 돌려주고, 의료기관은 자율성을 갖고 서로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국공립, 공보험)도 민간과 경쟁하는 시스템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 국가의 독점적 지배 하에 빚어져 온 한국 의료의 고질적인 병폐들이 치유될 수 있다.

영리법인과 민간보험은 막을 수 없는 시대적인 흐름이다. 한국 의료가 ‘전근대’의 옷을 벗고 세계와 경쟁하는 선진의료로 거듭나기 위해 필수적인 부분이다. 영리법인과 민간보험이 건강보험을 붕괴시킨다는 시민단체 주장은 과장된 것일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의 취약성의 원인이 무엇인가 볼 때 거짓된 주장이다. 공공성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뒤에야 영리법인 허용도 가능하다는 주장도 건강보험이 민간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정부독점’이 계속되는 한, 공공성이 개선될 가망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타당하지 않다.

오직 비영리만이 허용되면서도 세제 등 혜택은 없는, 민간에 대한 일방적인 비영리 강요는 자본의 흐름과 건전한 영리활동을 왜곡시킬 뿐이다. ‘이윤추구’ 자체가 아니라, 정부가 왜곡해 놓은 시장구조 속에서 ‘왜곡된 이윤추구’에 내몰린다는 것이 문제다. 의료정책도 ‘작위적’ ‘이념적’ ‘정치적’이지 않고 시장의 큰 흐름에 조응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우리나라 시민단체들은, 더 이상 정책 없는 ‘슬로건’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시대적 변화와 의료욕구를 어떻게 제도적으로 수용하고 동시에 의료의 형평성을 기할 것인가 구체적인 영리법인 정책방안을 놓고 고민해야 한다.

홍성주 ( 의료와사회포럼 정책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