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쿼터 축소론이 은폐하는 ‘위험사회’

영화인대책위의 일일 논평을 퍼옵니다.
이번 스크린쿼터 논점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들이
담겨있어 참고삼아 퍼왔습니다. 그리고 일본 유바리
영화제에서 열릴 영화인들의 입장표명 관련 보도자료도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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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일 논 평
2006년 2월 25일 (토)

스크린쿼터 축소론이 은폐하는 ‘위험사회’

지난 2월 중순 국회문화관광위 여론조사에서 밝혀졌듯이 쿼터축소 반대가 75%에 이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주류언론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다음 같은 논지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영화만큼 보호받는 산업은 없다”, “왜 영화만이 보호받아야 되는지 모르겠다”, “고로 스크린쿼터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주류 언론이 여론의 큰 흐름의 결을 거스르기 위해 기를 쓰고 있는 꼴이다. 여론이 반전되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려는 이런 골빈 앵무새들의 반복된 억지 주장 뒤에는 정말 구리구리한 “냄새”가 풍긴다. 독자들을 바보취급 하는 구린 작태를 버리고 이제는 정말 숨은 의도를 솔직히 드러내 보이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98년 이래 누누이 설명해 왔지만 다시 한번 사실 확인을 해보자.

첫 번째, 영화만큼 보호받는 문화 산업은 없다?

이처럼 무지함을 드러내는 대목은 없다. 영화에 스크린 쿼터제가 있듯이 방송에는 국내 제작 프로그램을 일정 비율 이상 방영해야 하는 방송쿼터제가 있다. 음악이나 애니메이션의 스크린(1차 유통창구)에 해당하는 방송에는 일정 비율이상의 국내 음악과 애니메이션을 상영해야 하는 쿼터제가 있다. 2005년 전체 방송 쿼터는 80%였고, 음악은 대중음악 프로그램 중 60%,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 프로그램 중 45%를 한국 작품으로 방영해야 했다. 반면 한국영화의 방송쿼터는 25%에 불과했다. 미국 영화나 음악, 일본의 애니메이션의 방송시장 진출을 억제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제도이다. 이에 비하면 스크린쿼터는 소프트하기까지 하다.

문광부가 영화계에 쿼터 축소를 이유로 지원을 약속한 기금 2000억 원만 해도 그렇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운용하는 총예산은 838억 원으로 그 중에서 실제 영화계로 투여되는 사업예산은 438억원이지만 주로 영화진흥금고 예산이며, 문광부의 국고 지원 예산은 60-70억원에 불과하다. 반면 방송위원회가 운영하는 방송발전기금은 연간 2200억원에 달하고, 사업 지출 규모만도 1600억 원 이상이다. 음악, 애니메이션, 기타 문화 콘텐츠 등을 지원하는 주무기관인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연간 예산은 555억원이고 이는 매년 문광부를 통해 국고로 지원되고 있다. 게다가 문화산업모태조합의 2750억원이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 의해 운용될 예정이다.

문광부가 최근 지원 약속한 2000억 원은 이미 고갈 단계에 와 있는 영화진흥금고를 충원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으로 스크린쿼터와 관계없이 문광부가 해결해야 했던 과제였다. 극장수익의 5% 징수안 또한 스크린쿼터 축소 발표 훨씬 이전에 제안된 금고충원 방안이었다. 이를 마치 대단한 선심을 쓰듯 스크린쿼터 축소의 대안으로 선언하는 문광부의 비열한 작태에 분통이 터질 따름이다.

현재 문화산업정책은 영화보다 오히려 방송과 여타 문화산업 전체를 보호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왜곡하여 마치 영화만이 특혜를 누리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화계를 분열시키기 위한 치졸한 이간질일 따름이다.

다른 산업과 비교해 보자. 보호무역의 핵심 제도는 관세이다. 수입자동차에는 한 대당 8%의 관세가 매겨진다. 이는 소비자가격에 그대로 반영되므로 일정하게 구매억제효과를 낳는다.

그러나 영화는 수백만불 하는 영화 수입가격이 아닌 그 필름의 복사가격인 300만원을 기준으로 붙는다. 그마저도 영화의 티켓가격에는 반영이 안 되므로 소비자에게 관세로 인한 수입억제효과는 거의 없는 셈이다. 사실 관세를 통한 무역보호가 불가능한 것이 영화산업이고 문화산업인 것이다. 스크린쿼터라는 보호제도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반면에 일반 제조업은 높은 관세를 통해 매우 강력한 산업보호의 특혜를 받고 있다.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국산자동차가 9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그 덕분임을 모르는가? 그런데도 영화가 특혜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백치가 아니면 하지 못할 새빨간 거짓말이자 악의적 흑색선전에 다름 아니다.

두 번째, 왜 영화만이 보호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그 누구도 영화만이 보호받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영화계는 줄곧 모든 문화산업이 마땅히 보호받아야 하고, 영화도 그 하나로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해왔을 뿐이다. 또 국가 기간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주요 산업들도 마찬가지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현재의 국제법상으로도 통신, 에너지, 수송, 금융 등 중요한 국가 기간산업과 식량자원의 역할을 해야 하는 농업, 그리고 문화자원인 문화산업은 자유무역의 대상에서 정당하게 보호될 수 있는 항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MF의 규제조치에 맹종하여 정부는 경쟁력이라는 명분을 걸고 주요 국가기간산업들을 줄기차게 민영화하고 해외투기자본에 팔아넘겨왔다. 투기자본이 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자취를 감춘 수십조원의 공적자금, 빈껍데기만 남은 공기업들, 그로 인해 희생된 국민들이다.

사정이 이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왜 영화만이 보호받아야 되느냐고 하는 자들의 결론은 다른 분야도 이미 망했으니 영화도 보호하지 말자는 것이다. 영화도 지켜왔는데 하물며 농업은 얼마나 더 귀중히 지켜야 할까를 주장해야 함에도 말이다. 오히려 그 중요한 농업, 금융산업도, 공기업도 다 내줬는데 한 줌 밖에 안 되는 영화는 당연히 내줘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다. 다 같이 공평하게 망하자는 얘기다. 이것이 소위 국익을 들먹이며 여론을 형성하고 이끌어가는 언론이 할 소리인가.

이들이 교주로 모시는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신은 경악스럽고도 가증스럽기만 하다. 그 논리대로라면 국가의 모든 기간산업, 교육과 보건의료, 신문과 방송에 대한 외국자본 참여도 100% 열어야 한다. 미국의 거대자본이 자유롭게 독식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들이 맹신하는 시장 논리에 따라 미국의 거대자본은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매각하듯 거대한 시세차익을 챙기는 데만 몰두할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세계화의 상이다.

하지만 그런 사회는 ‘위험사회’라 불러야 한다. 10%의 부자들만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운신하며 시세차익과 이익을 불리는 가운데 90%의 국민들은 비정규직과 질병과 범죄의 벼랑으로 몰려야 하는 사회, 자본의 이익을 위해 문화와 교육, 보건의료와 사회안전망, 농업과 환경의 공공성이 파괴되어야 하는 사회로 나아가자고 지금 정부와 주류 언론들은 안달이 나 있다. 참으로 위험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