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도말부터 건강보험을 국민연금 등 다른 사회보험처럼 기금화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즉, 기획예산처와 국회에서 건강보험 재정을 기금화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주된 이유는 ‘건강보험의 재정 규모가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회보험과는 달리 기금화되어 있지 않고 그로인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통제권 밖에 있으며, 운용에 있어서 투명성과 책임성이 요구된다’라는 것이다.
우선 기금이란 무엇인가? 기금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어떤 목적을 위하여 적립하거나 준비하여 두는 자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은 그 해 진료비 지출에 따라 보험료를 징수하여 운용하는 단기 보험으로 여유자금 조성에 어려움이 많으며, 특히 진료비라는 것은 그 특성상 지출의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금의 축적이나 운용은 어렵고 단지 최소한의 유동자금을 마련해 놓을 뿐이다.
즉, 국회에서 말하는 국민연금과 고용보험과 같은 사회보험은 미래 시점의 소요자금을 일정 기간 적립한 보험원리금을 재원으로 충당하는 적립방식(fund)의 장기보험으로 기금관리가 필요한 사회보험이다.
반면 건강보험은 그 때마다 재원을 마련해 충당하는 소위 부과방식(pay-as-you-go)의 단기보험으로 기금 방식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단기적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금 정도를 보유하게 되고 그나마 준비금은커녕 몇 년 동안 차입운영을 해온 건강보험에서 기금화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또 다른 한 가지는 국회에서 주장하는 논리인 건강보험 재정운영의 투명성이다.
현재 건강보험재정은 정부의 관리감독과 국회의 국정감사(매년), 감사원 감사(격년) 등을 통해 재정운영의 투명성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가절차인 기획예산처의 검토와 국회의 심의를 받는다면 그야말로 불필요한 행정낭비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보험료, 수가, 급여범위 결정도 관계전문가, 가입자, 공급자, 보험자 등 당사자간의 결정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건강보험이 기금화되면 보험료와 수가 변동, 보험적용을 받는 질환과 급여의 확대 여부 등 건강보험과 관련된 주요 사안이 모두 국회의 심의대상이 되므로 사실상 국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지금도 수가조정 등에 어려움을 겪는 마당에 국회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 보험료와 수가조정이 파행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고 또 국민연금의 예에서 보듯 보험료가 올라가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국회가 통제를 할 경우 건강보험은 만성적인 재정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해 본연의 사업을 펼치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공단은 현재 65%수준에 불과한 보장성을 80%수준까지 확대하고자 추진 중이며, 제도발전의 전환점으로 삼고 전직원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 동안의 만성적자에서 이제 막 흑자로 돌아선 시점에서 그리고 제도안정과 발전을 모색하는 단계에서 기금화 논의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시기상조라고 본다.
그 보다는 우선 지금까지의 저부담·저급여 구조를 개선하고, 적정 부담·적정 급여와 함께 국고지원 유지와 보장성 강화 등 발전의 기회로 삼아야한다. 그래서 무엇보다 현재 70%도 안되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