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노동조합 4월 20일자 성명서(진상규명촉구)

외환은행 잠재부실론 등에 관한 KEB 전직원의 입장
론스타와 그 비호세력의
마지막 발악

2003년 불법매각에 직간접 연루된 고위 관료들을 중심으로 “당시 외환은행은 부실이 심각한 상태였다”며 론스타를 두둔하고 나서는 세력이 최근 고개를 들고 있다. 이들은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팔지 않았다면 제2의 금융위기가 왔을 것’이라느니 ‘론스타가 아니었다면 파산했을 것’이라느니 온갖 망발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권하고 싶은 것은 딱 한가지다. A4 한장짜리라도 좋으니 공식적인 근거를 제시하라는 것이다.

2003년 당시 외환은행의 실제 BIS 비율은 금감위의 매각심사 직전인 6월에 9.56%, 매각승인 해당시점인 9월에 9.48%였다. 당시 외환은행이 일시적인 어려움은 있었지만 투기펀드에 매각할 상황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공식적인 문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반면 이를 부인하는 자들이 인용하는 것은 출처불명의 괴문서 몇장 뿐이다.

일개 은행의 팀장이 봤더라도 쓰레기통에 집어 던졌을 자료들이고, 모두 론스타의 불법적인 로비에 사용된 의심을 받고 있는 것들이다. 이는 중대한 문제다.

국제결제은행과 한국 정부가 제시한 기준에 따라 각 은행의 공식 재무라인과 회계법인 실사에 이어 감독당국의 검증을 거친 정부 공식자료를 정부 고위관료가 인정하지 않겠다면 그런 주장을 하는 당사자 자신부터 옷을 벗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BIS비율이라는 기준 하나로 해고된 5만명이 넘는 은행원과 당시 문을 닫은 모든 은행을 원상 회복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이 살고 론스타를 살릴 수 있다면 대한민국 금융산업의 원칙과 기준, 금융정책 및 금융당국의 존립근거마저도 손바닥 뒤집듯 부인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나라의 고위 당국자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양식의 수준인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것은 19일 명백하게 드러났다. 미국계 투기펀드 론스타와 한국의 경제부총리가 같은 날, 같은 주장을 했다. 마치 짜맞춘 것처럼 이들이 똑같이 내세운 것은 ‘론스타가 없었다면 외환은행 연말 BIS비율은 4.4%가 됐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아마 외환은행의 연말 BIS비율에서 분모는 그대로 두고 1조4천억원을 차감해서 만든 수치일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는 불법매각의 핵심가담자로 지목 받고 있는 전 재경부 금정국장이 지난해 처음 이 얘기를 꺼낸 이후 지금까지 공식 대응한 적이 없다.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유치한 이야기를 일국의 금융정책을 총괄했다는 사람이 오직 자신이 살겠다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한 얘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를 그대로 옮긴 19일 발언의 경우 은행회계를 알 리가 없는 투기펀드 론스타의 회장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현직 경제부총리까지 나선 만큼 이들만 모르는 기본상식을 누군가는 말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분자가 되는 자기자본 규모가 문제가 됐다면 분모가 되는 위험가중자산의 감축에 나섰을 것이 분명한 문제를 사후에 거론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이지만 이들이 흔히 들고 있는 외환카드 문제부터 보자.

2003년 12월의 경우 카드부문의 연체는 460억원 증가한 반면 충당금은 9000억원을 추가 적립했다. 경제여건이 좋아지고 이익창출이 꾸준한 상황에서 기준 이상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충당금 규모가 은행부문을 포함, 1조원대에 달했던 것을 감안하면 론스타의 신규자금 1조750억원은 사실상 없어도 되는 돈이었던 것이다.

12월 한달, 카드부문 충당금만 9천억원을 추가 적립하고도 실제 BIS비율이 9.32%에 달했던 은행을 무슨 근거로 파산위기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이런 주장을 하는 자들은 혹시 대손충당금은 지급준비금 명목의 유보된 이익금일 뿐 부실여신과는 다른 것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당시 외환은행 직원들이 적정한 규모의 자본확충에 동의하는 분위기였던 것은 사실이다. 2002년 2월 경영개선권고를 탈피한 이후 보다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고자 했기 때문이다. 외환은행은 IMF 이후 단 한푼의 공적자금도 받지 않고 모든 부실을 자체 해결했다. 국민의 혈세를 축내지 않겠다는 의지에 따른 것이었지만, 자본금이 넉넉한 상황에 비한다면 거래기업의 일시적인 자금위기가 은행 자체의 문제로 연결될 소지가 컸고, 실제로도 그랬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투기펀드에 은행을 매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은행법은 금융기관이 아닌 사모펀드는 은행을 소유할 수 없도록 돼 있으며 동법 시행령의 예외조항 적용 대상인 ‘부실금융기관’은 실제 BIS비율이 2.0% 미만인 것으로 금산법과 은행감독규정 등에 규정돼 있다. 이들이 묻어가려고 했던 ‘등’ 또한 이에 준하는 수준이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2003년의 외환은행 매각은 △사모펀드의 은행소유가 법으로 금지돼 있는 점 △외환은행은 금산법과 감독규정에 따른 ‘부실금융기관’이 아니었던 점 △당시 외환은행의 실제 BIS비율은 6월 9.56%, 9월 9.48%, 12월 9.32%였던 점 △금융당국이 제시한 유일한 근거는 전망치였던 점 △이 전망치(6.2%)마저 출처불명의 괴문서를 별도의 실사나 검증도 없이 그대로 인용한 것인 점 등을 감안할 때 명백한 불법행위였음을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다.

이를 부인하는 론스타 비호세력의 ‘외환은행 잠재부실론’과 같은 주장은 지난 2년간 지겹게 나온 것으로, 새로운 내용은 아무 것도 없다. 최근 이들은 논리가 궁색한 나머지 “그럼 당시에 코메르츠는 왜 동의했겠느냐”를 비롯한 온갖 저급한 말장난으로 국민을 속이고 감사원감사 및 검찰수사의 초점을 흐리려 시도하고 있다.

코메르츠가 증자를 할 수 없었던 것은 독일 본사의 경영악화와 북핵사태 등에 따른 국내 증시침체로 인한 것이었지 외환은행을 투기펀드에 팔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는 당시 금감위 자료 등에도 정확하게 명시돼 있다.

국내외 10여개 기관을 접촉했지만 론스타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는 주장 또한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며, 론스타에 매수된 무리들이 지금에 와서 하는 변명을 우리가 믿을 이유도 없다.

특히 우리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당시의 론스타 매각 추진이 이강원을 비롯한 ‘3인방’이 주도한 것일 뿐 외환은행의 공식입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외환은행 전직원은 8월말 본계약 체결시점이 돼서야 자본유치가 아닌 론스타 매각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는 임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이 감독당국 등에 제출했다는 ‘전망치 5.4%’니 뭐니 하는 문서들도 공식 재무라인과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은 로비용 문건에 불과한 것이다. 이들 3인방에 불법매각을 지시하고 조종한 자들의 실체 또한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론스타를 위해서라면 멀쩡한 은행도 부실은행인 것처럼 조작을 서슴지 않고, 어떻게든 국민을 속여보겠다는 불법매각 주도세력의 작태는 3년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이들에 대한 추상 같은 사법처리가 불가피한 이유다.

이들이 있는 한 한국 금융산업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법과 원칙은 안중에도 없고, 범법자를 두둔하고 비호하는 금융정책을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전세계의 금융선진국은 투기자본을 잘 돌봐줘서가 아니라 금융정책의 투명하고 엄정한 집행과 그에 따른 국제적 신뢰로 탄생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론스타와 그 비호세력을 발본색원하지 않는 한 동북아 금융허브의 꿈은 지금 당장 접는 게 낫다.

2006년 4월 20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외환은행지부 위원장 김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