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저지! 민중건강권쟁취! 의약품접근권강화!
<의약품과 민중 한미FTA저지 특별 4호>
발행일 : 2006년 6월 8일 목요일
발행하는 곳 : 공공의약센터(서울시 동작구 사당동 171 20번지)
담당 : 권미란 016-299-6408, rmdal76@hanmail.net
유시민의 눈가리고 아웅하기: 한미FTA와 약제비적정화방안
권미란(공공의약센터)
미국협상대표 왈, “약제비 적정화방안은 협상에 도움 안 된다”
6월 5일 한미FTA 1차 협상이 시작되었다. 한미 FTA 미국 측 수석대표를 맡고 있는 웬디 커틀러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보는 농산물, 자동차, 의약품을 핵심 협상 분야로 꼽았다. 그리고 우려했던 바대로 보건복지부가 5월 초에 발표한 ‘약제비 적정화’ 방안에 대해 “협상에 아주 도움이 되지 않는 발표”라고 밝혔고, 의약품 의료기기 분야의 워킹그룹을 별도로 만든 점을 상기시키며 앞으로 의약품분야의 협상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유시민 왈, “한미FTA와 약값 상승은 무관하다”
반면, 5월 3일 약제비적정화방안을 발표한 후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한미FTA와 약값상승이 무관하다고 말했다. 그는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한미FTA는 약값, 의료비 상승과 무관할 것이며, 건강보험 등 공보험체계를 건드리는 어떤 요구도 미국측으로부터 요구받은 바 없다고 못박았다. 한미FTA와 약값상승이 무관할 것이라는 유시민 장관의 말은 무슨 뜻인가?
5월 26일 한미FTA저지 지적재산권 부문 대책위원회와 보건의료부문 대책위원회에서 주최한 ‘한미FTA와 의약품에 관한 대중토론회’에서 보건복지부 정책홍보관실 한미FTA팀 맹호영 서기관의 말을 보자. 그는 유시민 장관의 발언이 “5.3약제비 적정화방안과 한미FTA는 절차상 연계 없이 별도로 진행됐음을 강조한 표현”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5.3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3년 전부터 준비해온 사안으로 FTA와 별개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며, “정치적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한미FTA협상 4가지 선결조건에 의약품 분야가 포함되어 있는지 밝혀 달라”는 질문에는 “공식 서류상으로는 그런 사실이 확인된 바 없다”며 “한미FTA는 한국이 원해서,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미FTA와 5.3약제비적정화방안은 정말 아무 관계가 없을까?
그러나 5월 26일 미국 통상전문지 <인사이드 유에스 트레이드>의 보도는 다르다. 이 보도에 따르면, 미국제약업계와 미무역대표부는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자유무역협정 이전에 새로운 약가시스템을 실행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며 5.3 약제비 적정화방안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였다.
한미FTA와 5.3약제비적정화방안은 정말 아무 관계가 없을까? 그렇다면 보건복지부는 ‘새로운 약가제도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 ‘서류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며 뒷짐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또한, 한미FTA와 5.3약제비절감방안이 무관하다고 억지부릴 것이 아니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을 조사하고 문책해야 한다. 유시민 장관을 필두로 보건복지부가 한미FTA와 5.3약제비적정화방안이 ‘절차상 무관하다’고 억지를 부려도 그 둘은 ‘유관‘할 수밖에 없다.
유시민 장관이 한미FTA를 반대하지 않은 채 약제비적정화방안을 밀어붙이다면, 그것은 민중에게 해악을 끼칠 뿐이다. 첫째 ‘절차상‘ 무관하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한미FTA가 체결되면(어쩌면 체결되기 이전에) 5.3약제비적정화방안은 제대로 시행될 수 없다. 둘째 한미FTA의 파괴적인 효과를 은폐시킨다.
정부협상력 높이면 뭐하나, 모든 결정권은 제약회사에 있다!
5.3약제비적정화방안이란 무엇인가? 이 방안은 비용효과성을 기준으로 의약품을 선별하여 보험등재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약가협상력을 가지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약제비절감을 목표로 삼고 있다. 기존에는,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면 모든 약을 보험등재해주었지만, 이제는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비용 면에서도 만족스러운 약만 보험등재를 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제약사간에 약을 선별등재목록에 포함시키기 위해 비용효과면에서 경쟁을 더욱 촉진하게 되고 결국 약제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5.3약제비 적정화방안은 약제비를 절감하겠다는 목표와 제약회사에 대한 정부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목표에 도달하기에는 그 자체로 한계가 있다. 기존 방식보다 선별등재방식이 도입되면, 비용효과성이 떨어지는 의약품을 ‘보험등재시키지 않을 권한’이 강화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제약회사에서 의약품을 한국시장에 판매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정부 협상력도 생기는 법이다. 어찌됐든 의약품을 시판할 것인지 말 것인지 그 결정권은 제약회사가 갖고 있고, 제약회사는 환자의 수요가 아닌 시장성을 기준으로 시판여부를 결정한다.
점점 더 강화되는 제약회사의 ‘권력’
환자가 필요해서 약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약이 많이 팔릴까에 따라 생산을 결정하는 제약회사. 그 대표적인 사례인 에이즈치료제 푸제온을 보자. 푸제온은 기존의 에이즈 치료제가 감염된 세포내의 바이러스의 증식을 막는 것과 달리 HIV 바이러스가 면역세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중단시켜 효과를 나타내는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다.
초국적제약회사 ‘로슈’에서 판매하는 푸제온은 2003년에 미국과 유럽에서 환자 1인당 연간 약 2만달러, 약 2000만원에 시판되었다. 한국에서는 2004년 5월, 이 약을 수입하는 게 허가되었고 2005년 10월, 1병당 24,996원으로 보험약가가 결정되었다. 하루비용 약 5만원.
그러나 로슈는 한국에서 푸제온을 시판할지 말지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로슈가 요구한 약가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으로 보험약가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만성백혈병치료제 글리벡도 마찬가지였다. 푸제온은 이 약을 복용해야 하는 환자 수가 글리벡을 복용해야 하는 환자수보다 훨씬 적다. 결국 환자의 수요가 아닌, 이윤을 기준으로 의약품의 생산과 판매가 이뤄지는 시스템의 폐해를 더욱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시장성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기존의 보험등재방식이든 선별등재방식이든, 정부는 협상력 자체를 가질 수 없고 환자는 약이 있어도 약을 못 먹는다.
의약품의 연구개발과 생산을 제약회사에 맡기고, 게다가 특허신약의 경우 독점력까지 제약회사에 주고 나면 정부는 절대로 약가협상력을 가질 수 없다. 정부가 약가협상력을 갖고, 환자의 의약품접근권을 보장하려면 의약품의 연구개발과 생산까지도 개입해야 한다. 예를 들면 푸제온에 대한 ‘강제실시’를 하여 국내에서 생산하거나 필수의약품의 연구개발을 위한 공적펀드를 조성하거나 공공제약회사를 설립해야 한다. 시판 자체가 무시되고 있는 필수의약품을 다시 생산하는 방법을 함께 강구해야 하는 것이다.
안 그래도 제약회사의 악행이 잇따르고 있는 판국이다. 여기에 한미FTA가 체결되면 5.3약제비절감방안은 실행조차 할 수 없고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와 의료시스템의 발전을 위한 논의는 아예 불가능해진다. 한미FTA와 5.3약제비적정화방안은 절대 무관할 수 없다. 오히려, 한미FTA가 체결되면 5.3약제비적정화방안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미국 요구대로 되면 약제비 절감은 요원하다
첫째 선별등재방식과 공단의 약가협상력으로 의약품의 약가를 적절히 정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도 오리지널 특허약의 독점기간이 늘어나면 그만큼 약제비도 늘어난다. FTA를 체결하려는 미국은 특허승인과정만큼 특허기간을 연장할 것, 의약품의 유효성과 안전성에 대한 정보를 이용하지 못하게 할 것, 강제실시를 무력화시킬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미국의 요구는 실질적으로 오리지널 특허약의 독점기간을 연장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따라서, 미국의 요구가 관철될 경우에는, 약값을 조금 낮추더라도 약제비를 절감하겠다는 목표는 더욱 멀어지고 만다.
초국적 제약회사의 마음대로 가격결정, 그렇지 않으면 제소당한다
두 번째, 미국은 의약품의 약가결정에 대해 초국적 제약회사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독립적인 항소기구(혹은 절차)를 요구하고 있다. 선별등재방식과 한국 건강보험공단의 협상력을 통해 약가가 정해졌는데, 정해진 약값이 초국적제약회사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를 가정해보자. 이 경우, 제약회사들은 한국을 ‘제소’할 수 있다. 미국은 모든 신약에 대해 선진7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스위스)의 가격을 기준으로 약가를 정하라고 요구한다. 이 요구대로 안 되면, 초국적제약회사는 독립적인 항소기구나 절차를 통해 한국을 제소할 것이고,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환자는 꺼져가는 목숨을 안타까워하며 기다려야 한다.
명확하지도 않은 특허침해 주장, 값싼 제네릭(복제) 약 생산을 가로막는다
셋째, 미국은 식약청에서 의약품을 허가해 줄 때 ‘특허침해여부가 있다면 허가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특허권을 가진 오리지널약은 제네릭(복제)약은 훨씬 더 비싸다. 그래서 환자 입장에서는 더 많은 제네릭(복제)약이 생산되는 게 좋다. 그러나 특허권을 가진 오리지널 약을 생산하는 제약자본과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국은 아예 ‘특허침해여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의약품 자체를 허가해주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특허권은 사적인 권리이므로 어느 의약품이 특허권을 침해하였는지 조사할 의무는 특허권자에게 있다. 뿐만 아니라, 특허침해여부는 특허청은 물론 법원조차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어려운 사안이다. 실제로 특허청에 등록된 특허권 중 무효로 판정되거나 특허권자가 제기한 침해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밝혀진 사례가 매우 많다.
그런데 미국은 특허침해여부를 명확하게 확인하기도 전에, 특허자료만을 가지고 ‘제네릭(복제) 의약품을 허가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험등재이전에 의약품허가단계에서, 명확하지도 않은 특허침해여부를 기준으로 의약품을 걸러내면, 보험등재단계에서의 비용효과성 평가는 아예 무의미해진다.
초국적기업들의 이의제기, 공공정책 무력화시킨다
넷째, 우리측 협정문 초안 제 8장 투자조항에 포함되어있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nvestor-state claims)‘를 보자. 이 제도는 제약회사가 5.3약제비적정화방안으로 인해 투자상의 손해를 입었다며 한국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은 투자의 범위를 광범위하게 설정하여 지적재산권도 투자에 포함시키고 있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는 미국이 1994년 캐나다, 멕시코와 체결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처음으로 도입한 제도다. 이 제도는 미국 기업들이 FTA를 체결한 상대방 국가의 공공정책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로 인해 캐나다, 멕시코의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환경, 보건, 노동 등의 분야에서 채택한 공공정책들이 어떻게 무력화되었는지, 얼마나 많은 세금으로 미국회사에게 보상을 해주었는지, 이미 시민사회단체와 학계에서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이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지도 않고 직접 나서서 이 제도를 협정문에 포함시켰다.
명확하지도 않은 ‘기대이익 침해’, 초국적기업들의 무분별한 제소 낳는다
다섯째, 5.3약제비적정화방안은 비위반제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미-칠레 FTA, 미-싱가폴 FTA, 미-모로코 FTA, 미-중앙아메리카 FTA (CAFTA), 미-바레인 FTA, 미-호주 FTA 등 미국이 체결한 FTA에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위반제소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미국-호주 FTA 제21.2조(c)에 따르면 “내국민대우 및 상품에 대한 시장접근, 농업, 원산지 규정, 서비스에 대한 국경 무역, 정부 조달, 지적재산권에 따라 부여되었다고 합리적으로 기대한 이익이 무효화되거나 침해”된 경우, 분쟁해결규정을 적용하게 된다.
비위반제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제소의 원인이 되는 ‘기대되는 이익의 무효화 또는 침해’의 의미와 범위가 막연하고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초국적기업들의 무분별한 제소가 가능해진다.
초국적기업들은 이 조항을 근거로, 정부의 세금 부과, 광고 규제,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시정 조치 등을 문제 삼을 수 있다. 또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새로운 경제, 문화, 환경, 보건 정책을 도입하는 것이나, 특허권의 권리범위를 좁게 해석하는 법원의 판결들이 모두 비위반제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오리지널 특허약의 독점가격을 제약회사가 요구하는 만큼 인정해주지 않으면, 5.3약제비절감방안이 ‘기대되는 이익의 침해’를 발생시켰다며 일방적인 분쟁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유시민 장관은 한미FTA반대를 선언하라
결국 한미FTA는 5.3약제비적정화방안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나아가, 초국적제약자본이 특허권을 강화하여 더욱 독점적인 권한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국민건강보험제도, 약사법, 특허법 등을 바꿀 수 있는 엄청난 폐해를 낳을 것이다.
유시민 장관이 <한미FTA→약값인상→약제비절감방안 마련>이라는 도식으로 한미FTA를 바라본다면 이는 너무 단순한 발상이거나 속임수에 불과하다. 한미FTA의 효과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한미FTA는 분명히 약값상승을 불러올 것이고, 또한 그 영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유시민 장관은 외부충격에 의한 제도선진화, 체질개선을 통해 국내제약산업이 세계시장에서 도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좋은 약을 개발하면 환자에게 좋은 일이며, 약제비절감방안을 통해서 약값인상, 환자부담증가는 없을 것이라고 환자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한미FTA와 5.3약제비적정화방안은 절대 무관할 수가 없다. 유시민 장관의 결단이 온전히 실행이 되려면 한미FTA와 의약품문제가 정말 ‘무관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유시민 장관은 ‘한미FTA반대’를 선언해야 한다. 유시민 장관이 한미FTA를 반대하지 않고 약제비절감방안을 추진하는 것은 한미FTA의 파괴적인 효과를 은폐시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