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가 이정미 전 청구성심병원노조 위원장 별세
중소병원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 위해 평생 헌신
위암 투병 와중에도 활동 병행, 고인의 죽음에 안타까움 더해
노동운동가 이정미 전 청구성심병원 노동조합위원장이 19일 오전 3시 20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위암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2001년 위암이 발병한 후, 수술과 치료를 병행하며 투병하다 지난 5월부터 입원치료를 받아 왔다. 향년 39세.
고인은 98년 IMF 구제금융 시기에 ‘식칼테러’로 대표되는 청구성심병원 사측의 부당노동행위 근절을 위한 노동조합 활동으로 IMF 시기 노동탄압의 심각성과 중소병원 사업장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만천하에 알렸다. 2003년에는 사측의 탄압으로 인한 노동자의 정신질환 발병을 최초로 산재로 인정받는 소중한 성과를 남기기도 했다. 고인은 또한 위암 발병 이후에도 중소사업장을 지원하는 활동 등 노동조합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던 것으로 알려져 고인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고인은 사측의 부당함에는 단호했지만, 어려움을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청구성심병원 사측의 극심한 탄압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가스총을 소지하고 다녀야 하는 와중에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당당한 모습으로 조합원들을 챙기던 사람이었다. 위암 판정을 받은 후 위를 절제한 후에도 맨 밥 도시락을 싸들고 빈센트 병원의 파업장을 찾아가 조합원들과 함께 콘크리트 바닥에서 밥을 먹고, 장기 투쟁 중인 사업장의 콘크리트 사무실에서 새우잠을 자던 그녀였다.
강한의지로 투병해왔던 고인은 항암치료 과정에도 심한 부작용으로 온 몸의 잔털이 빠지고, 몸의 기력이 쇄한 상태에서도 “될 수 있으면 눕지 않아요. 낮 잠을 자는 30분을 제외하고는 앉아 있으려고요. 앉아 있는 것 보다는 서 있는 것이 낫고, 서 있는 것 보다는 걷는 것이 낫데요.” 라고 이야기하며,“어서 나아서 다시 일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투병 와중에도 단 한번도 운동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는 고인은, 지난 3월 ‘이정미 동지의 쾌유를 비는 후원의 밤’에 참석해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꼭 살아서, 훌륭한 활동가로 살면서 이 고마움을 꼭 갚겠다.”고 약속했었다.
1966년에 태어난 고인은 93년 청구성심병원에 입사, 94년 교육 선전부장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한 뒤, 96년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당선된 이후 병원노동조합 운동에 헌신해왔다. 98년 IMF 구제금융시기에는 청구성심병원 사측의 임금체불과 노동조합 와해공작 등 부당노동행위에 맞선 투쟁을 전개했다. 이 와중에 사측이 조합원 총회장에 난입해 식칼테러를 자행하기도 했으며, 위장폐업과 조합원 10인에 대한 부당해고를 자행했다. 그 해에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13건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받았으며 100일간의 투쟁을 통해 부당해고 조합원 전원의 복직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복직 이후에도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와 조합원들에 대한 집단 따돌림 등 탄압은 지속되었다. 2003년 청구성심병원 노동조합 조합원 집단산재 인정 투쟁을 전개해, 우리나라 최초로 사측의 탄압에 의한 조합원들의 정신질환 발병을 산재로 인정받는 소중한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중소병원 사업장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몸소 절감한 고인은, 2000년 전국보건의료 노동조합의 부위원장으로 출마해 당선 된 후 방지거 병원 투쟁 등 중소사업장의 투쟁에 헌신적으로 결합했다. 2002년에는 보건의료노조 ‘중소병원 담당 부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2003년에는 보건의료노조 회계감사로 활동했다. 2005년에는 전국병원노동조합협의회(병노협)의 미조직센타 활동 준비에 참여하기도 했다.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던 2001년 4월 위암이 발병해 위 절제시술을 받았으나, 수술 이후에도 활동을 중단하지 않았다. 2004년 1월 위암이 재발했고, 치료와 활동을 병행하던 2005년 10월 암이 악화되어 본격적인 투병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2006년 6월 장천공으로 서울대학교 병원 응급실에 입원한 이후, 치료를 계속하다 19일 새벽 3시 20분고인의 남편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명했다.
유족으로 남편 윤창훈(41)씨와 두 아들 윤동민(11)ㆍ윤동현(9)씨가 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대학교 병원 영안실에 마련되어 있다. 장례식은 22일 전국병원노동조합협의회장으로 치러지며, 오전 11시 30분 마석 모란공원에서 영결식을 진행하고 안장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