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books안철수·문재인, 제발 이효리만큼만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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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문재인, 제발 이효리만큼만 해라!
[프레시안 books] 박상표의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

 잊혀진 계절

한 2년 전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둘러싸고 2008년 여름에 벌어진 갈등을 놓고서 학자들끼리 갑론을박이 있었다. 당시 갈등의 한복판에서 취재를 했던 기자 자격으로 그 자리에서 몇몇 학자의 발표를 듣고 토론할 기회를 가졌다. 당시로부터 2년 전 온 나라를 들썩거리게 했던 사건에 대한 온갖 평가를 들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가장 불편했던 것은 일부 학자가 “광우병을 둘러싼 갈등”에 피로감을 호소한 대목이었다. ‘갈등’을 기피하고 ‘통합’을 강조하는 한국 사회의 지배적인 분위기가 반영된 반응이었지만, 그 자리의 성격을 염두에 두면 난센스 같았다. “광우병을 둘러싼 갈등”이 없었다면 그런 자리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을 테니까.

생각해 보자. 2008년의 그 뜨거운 여름이 없었다면, 광우병의 위험을 둘러싸고 전문가들이 내 편 네 편 갈라서 논쟁을 벌이고, 또 그것을 다른 이들이 평가하고 분석하는 흥미로운 일이 가능했을까? 2008년 그런 논란이 없었다면 ‘검역 주권’과 같은 생소한, 하지만 중요한 개념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게 가능했을까?

이뿐만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가 첫 단추를 잘 못 꿰고, 이명박 정부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온갖 문제가 공론화될 수 있었던 배경도 바로 그 여름의 열기 덕분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한미 FTA의 이른바 ‘선결 조건’이었다!) 더구나 그런 갈등 끝에, 결코 안전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미국산 쇠고기의 검역 절차가 상당히 강화되었지 않은가?

최근의 안철수 현상까지 염두에 두면, 2008년 여름의 가치는 더욱더 도드라진다. 당시 진보 세력은 결코 존경할 만한 지도자라고 할 수 없었던 전직 재벌 기업 사장을 대통령으로 만든 시민의 ‘묻지 마’ 지지에 잔뜩 주눅이 들었었다. 그 여름의 촛불 집회가 없었더라도 진보 세력이 그렇게 빨리 다시 목소리를 높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을까?

20년 만에 아들딸의 손을 잡고 시청 앞 광장에 다시 선, 삶의 무게에 찌들대로 찌든 40대 아저씨, 아줌마들이 ‘아, 세상이 다시 바뀔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은 어떤가? 수개월에 걸친 촛불 집회에도 꿈쩍 않은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새삼 ‘투표’나 ‘제도’의 힘을 시민들이 깨닫게 된 것도 2008년 여름의 소중한 성과다.

감히 말하건대, 학자들 사이에서나 이름이 알려져 있던 외국의 한 철학자를 단숨에 전 국민 멘토로 만든 <정의란 무엇인가>(이창신 옮김, 김영사 펴냄) 열풍도, 제 앞가림도 어려웠던 진보 언론에 대중이 분에 넘치는 관심을 모아준 것도, 더 나아가 최근의 안철수 현상도 2008년 그 여름이 없었다면 우리가 본 것과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 그 여름의 갈등이 낳은 유산을 정당히 평가하고 제대로 부각하는 노력이 없는 것, 이것이야말로 문제가 아닐까? 이런 점에서 박상표가 펴낸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개마고원 펴냄)는 각별하다. 당시 갈등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지식인이 그 여름이 남긴 중요한 유산 하나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라진 유산
지금 한국에서 사회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 치고 육식의 문제점을 한두 가지 정도 열거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광우병 혹은 조류 독감과 같은 전염병의 확산,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어죽는 상황에서 전 세계 곡물의 3분의 1 이상이 소, 돼지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어처구니없는 현실, 가축 사육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 기체 등.

돌이켜 보면, 2008년 그 여름 이전만 하더라도 이런 ‘진실’은 ‘상식’이 아니었다. 물론 그 때도 육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환경 단체 그리고 드물지만 언론 기사가 있었다. 또 제러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신현승 옮김, 시공사 펴냄)이나 마이클 폴란의 <잡식 동물의 딜레마>(조윤정 옮김, 다른세상 펴냄) 같은 훌륭한 책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에 주목하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2008년 여름, 안전한 쇠고기에 대한 열망은 육식의 문제점에 대한 각성으로 이어졌다. 공장식 사육이 아닌 방식으로 키운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생활협동조합을 통해서 구매하는 이들이 늘었다. 더 나아가 육식을 포기하고 채식을 선택하는 이들도 소수지만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뒤따른 구제역의 창궐은 이런 분위기를 더욱더 증폭시켰다.

대중의 욕망을 읽는 데 타고난 감각을 가진 우리 시대 엔터테이너 중 한 사람인 이효리가 수많은 사회 문제 중에서 공장식 사육으로 생산한 고기를 소비하는 육식 문화에 정면으로 문제 제기를 한 것도 바로 이런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한 탓이 아닐까? 그녀의 말대로 2008년 여름 이후 대한민국은 “불편한” 진실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사정을 놓고 보면, 사실(fact)에 기반을 둔 집요한 문제 제기를 통해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둘러싼 논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수의사 박상표가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를 펴낸 것은 늦은 감이 있다. 왜냐하면, 그야말로 한국에서 이런 문제를 놓고서 가장 정확하고 깊이 있는 책을 써낼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2008년 이전부터 가축 사육 과정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항생제를 비롯한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을 오랫동안 지적해 왔다. 또 그는 이명박 정부 이전부터 노무현 정부가 광우병 위험을 무릅쓰고 (한미 FTA를 위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빗장을 풀려고 할 때, 완강히 저항하던 소수의 전문가 중 한 사람이었다.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는 이런 수년간에 걸친 저자의 실천과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오랫동안의 공부가 버무려진 책이다. 특히 이 책은 그간 육식의 문제를 다룬 외국 저자의 책에서 소홀하게 취급했던 대목을 강조하고 있어서 그 가치가 더욱더 크다. 이 책은 한국의 맥락을 염두에 두고서 구제역, 광우병, 조류 독감 같은 전염병 또 항생제 남용이 가져올 무서운 결과를 지적한다.

저자가 지적한 대로, 공장식 축산은 광우병, 조류 독감과 같은 새로운 전염병이 똬리를 틀고 인간을 향해 마수를 드러낼 기회를 준비할 최상의 보금자리를 제공한다. 더구나 가축에 수없이 투여한 항생제는 슈퍼 박테리아와 같은 항생제로 통제할 수 없는 세균의 등장을 초래한다. 소, 돼지의 저주가 이미 시작된 것이다.

뒤늦은 대답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 역시 화끈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박상표는 “채식이나 동물 해방이 대안”이라는 지식인연 하는 이들이 한두 마디씩 내놓는 손쉬운 대안을 되뇌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장식 사육에 기반을 둔 육식 문화는 그렇게 의식 각성으로 퇴출할 정도로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축이 행복에도 눈길을 줘야 하는 이유는 단지 윤리적 차원의 ‘이상론’에 그치는 게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현실론’에도 이유가 있다. 역설적이지만 우리 자신이 맛있고 안전한 축산 식품을 먹기 위해서라도 가축의 복지에 눈을 돌려야 한다. 식중독이나 전염병의 위험을 줄이려면 가축을 보다 인도적으로 사육해야 한다.” (17쪽)

“현대 인류도 여전히 동물과 식물을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는 잡식성 식습관을 가지고 있다. 특히 고기는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 그 어떤 종교나 신념 체계로 대다수의 인간이 고기 먹는 일을 포기하도록 만들지 못했다. (…) 인류가 종말을 고하는 그날까지 대다수의 인간이 아예 고기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243쪽)

“공장식 축산업은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식품 체계의 주요한 기둥이다. 특정한 한두 가지 기술이나 무항생제 축산 또는 유기농 같은 농업 방식의 변화만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 동물복지법을 만든다거나 로컬푸드 운동을 펴는 것만으로 가축의 행복과 인간의 건강이 보장될 수 있는 건 아니란 얘기다. (…) 현재의 축산업은 우리의 생활과 너무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245쪽)

이런 인식 속에서도 저자는 ‘절망’ 대신 ‘희망’을 말한다. 왜냐하면, 출구가 안 보이더라도 생산자(농민), 소비자(시민)가 손을 맞잡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또 사회적인 차원에서 공장식 축산업에 저항하는 것만이 인류가 살 길이기 때문이다.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는 바로 이런 저항에 나선 이들을 위한 친절한 매뉴얼이다.

“인간이 잡식성 동물인 한 육식을 멈추는 것만이 대안이라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인류의 역사는 노예 제도, 인종 차별, 여성 차별 등을 철폐하면서 도덕적으로 끊임없이 진보해 왔다. 동물을 잔혹하게 학대하는 공장식 축산 방식을 규제하는 것은 인간이 그만큼 더 윤리적으로 성숙해진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17~18쪽)

한마디만 덧붙이자. 앞에서 언급했듯이 지금의 안철수 후보나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2008년 촛불 집회의 가장 직접적인 수혜자다. 그들이 박근혜 후보와 똑같이 실체도 불분명한 ‘국민’ 타령만 하지 말고 그 여름 광화문 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촛불을 들었던 그 시민의 목소리에 화답했으면 좋겠다.

장담하건대, 그것이 바로 시대정신이다! 대통령이 되려면 효리만큼은 해야 하지 않겠나?
/강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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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프레시안에 10월 19일자로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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