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4~6일, 3일간 일본 민주의료기관연합(이하 민이렌)의 초청으로 한국의 의료인 8명이 히로시마를방문하였다. 그곳에서 ‘2012 원수폭(原水爆)금지세계대회’에 참가 후 민이렌 소속 의사 들과 간담회를 가졌다.이 간담회 를 통해 언론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후쿠시마 사태로 인한 구체적인 피해상황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반핵운동의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민이렌의 입장이라는 전제를 고려해야 하겠지만, 그들이 직접 들여준 생생한 이야기들은 한국의 반핵운동을 건설하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하 한국대표단은 한, 민이렌은 일로 표기)
한: 민이렌에서 펼치고 있는 반핵운동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었으면 한다.
일: 현재 일본의 47개 중 46개에서. 모든 현에 피폭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민이렌은 일단 의료단체이기 때문에 진료지원활동을 중심으로 펼치고 있지만 이와 병행하여 일본의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이끌어내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중 하나로 핵의 안전성을 설파하는 핵산업 지지들에 맞서 전국 각지에서 학습회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에 의견서를 내고 협상을 진행 중이며 다른 단체와 공동으로 “사요나라 원전” 활동 등을 전개하고 있고 도쿄전력과 국가의 배상을 요구하는 구체적인 책임을 묻는 활동도 진행 중이다.
민이렌의 반핵운동과 관련된 핵심 주장은 7개다. 1) 재가동 반대. 2) 피해지역 주민을 실질적인 건강 피해를 최소화 하는 것. 3) 식품안전을 지키는 것(유치원, 초등학교 등 급식에 안전한 식품이 제공될 수 있도록 강력히 경고하고 호소하고 있음). 4) 피난가신 분들의 그곳에서의 안전 추적. 5) 피해지역에서의 쓰레기 처리 문제. 6) 재생가능한 에너지에 대한 조사활동과 학습활동(에너지 정책 공청회 등에 적극 참여 중). 7) 탈핵을 주장하는 다양한 단체들과의 적극적 연대.
한: 최근의 활동을 소개해 주었으면 한다.
일: 최근에 체르노빌 지역에 대한 조사활동을 벌였다. 체르노빌은 26년이 지나서도 그때 당시와 전혀 변한 게 없었다. 국제적인 핵발전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자들의 선전활동도 계속 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 지역에 계신 분들은 아직까지도 건강의 위험을 받고 있었다. 히로시마 대학 교수가 2009년에 체르노빌 지역 사람들에게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그들의 상황은 처참했다. 핵사고의 피해에 대한 입증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견고한 핵산업 지지들은 피해를 축소시켜 선전했다. 결국 체르노빌 직접적인 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보호와 지원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주거지 및 자산을 상실하고, 근무하던 일자리도 잃고, 지역공동체도 파괴되었다. 강제이주 당한 곳에서는 결국 불안정한 단시간 노동밖에 할 수 없었으며 이로 인해 빈곤한 상태로 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사회로부터 완전히 배제된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자살을 선택했으며 핵으로 인한 피해인지 입증하기는 어렵지만 돌연사가 많이 발생하고 있었다. 사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 피폭자들에 대한 지원 사업을 해왔지만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민이렌조차 핵발전의 위험성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핵무기 문제에만 치중된 측면이 있었다. 일본의 원전은 다른 나라보다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해온 것도 사실이다. 후쿠시마가 일어나고,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한 방편으로써 체르노빌을 방문하면서 새롭게 히로시마, 나가사키를 돌이켜 보게 되었고 결국 이 모든 문제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핵무기는 반대하면서도 핵발전에 대해서는 별도로 보아온 시각에서 벗어나 하나의 통합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탈핵을 주장하는 운동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한: 체르노빌에서 한 조사처럼 후쿠시마 지역에서 한 조사는 없는가?
일: 있다. 최근 후쿠시마 현민 건강조사라는 것이 발표되었다. 안타깝게도 이 조사 결과 역시 체르노빌의 앙케이트가 보여준 것과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직접적인 건강의 피해를 규명하기엔 아직까지 여러 한계가 있지만, 거주, 직업, 교육, 식량, 환경 등 모든 것이 위협받고 있었다. 사실상 이들은 사회적 안정 모두를 빼앗긴 상태다. 피난한 곳에서도 이들은 상당한 차별과 소외를 겪고 있으며 특히 아이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 이에 대해 민이렌은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펼치고 있는가?
일: 민이렌의 전문강사진을 꾸려 전국에서 핵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강연회를 열고 있다. 특히 저선량 방사능의 내부피폭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제염작업에도 직접 동참하고 있다. 방사선에 노출된 모든 것을 치우는 이 작업은 상당히 위험하기 때문에 의료인들이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수 장비를 갖추지 않으면 제염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피폭될 수 있다. 그런 위험성을 철저히 경고하면서 제대로 된 진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감시하며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제염작업은 30년 정도의 기획을 갖고 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만 보아도 한번의 원전사고가 얼마나 큰 사회적 비용을 요구하는지 알 수 있다.
한: 후쿠시마의 상황에 대해 좀더 자세히 들여주었으면 한다.
일: 후쿠시마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주어졌다. 골자는 피해지에 남아서 생활을 할 권리, 그리고 후쿠시마로부터 피난할 권리, 이 두 가지를 모두 존중하는 것이다. 이들의 건강을 위해서는 피난시키는 것이 맞을 수 있으나 현실적인 여러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에도 피난한 사람들은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피난민의 경우 대부분은 엄마와 아이들이다. 제대로 된 지원대책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경제적인 여건 상 가장인 아버지는 후쿠시마에 남아서 돈을 벌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거리라는 물리적인 이유도 있으나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아버지는 가족과 잘 만나지 못한다. 수없이 많은 가족관계가 단절되었고 자연히 지역 안에서의 공동체 의식도 다 무너졌다. 이주한 현지에서의 생활도 쉽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이주한 지역사회의 피폭 당한 자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존재한다. 그 속에서 아이들이 받는 정신적 충격이 가장 큰 문제다.
한: 민이렌이 후쿠시마에 그러한 활동을 펼치려고 할 때 지자체와의 협조는 잘 이루어지는가?
일: 후쿠시마의 피해 상황은 여러분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떤 곳은 마을 하나가 통째로 이주를 해야만 했다. 원전으로부터 20km, 30km 안의 마을의 기능은 완전히 마비된 상태였다. 즉 무슨 얘기인가 하면 지자체가 민이렌과의 협력을 하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다른 분야도 그러하겠지만 의료인들이 직접 와서 지원한다는 것은 너무도 간절한 것이었다. 그만큼 핵으로 인한 피해는 한 지역을 완전히 마비시키는 대참사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 최근 민이렌이 개입하고 있는 핵문제와 관련된 사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일: 쓰나미로 인한 잔해의 양이 너무 많아서 각 지역으로 조금씩 가져가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이는 복잡한 문제다. 왜냐하면 타 지역의 공조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는 있으나 이 잔해들을 통해 방사능 유해 물질이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민이렌에서는 이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최근 내각에서 여러 단체들의 의견을 모으고 있는데, 여기서 민이렌은 단순히 재가동 반대 수준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에너지 전환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최근 20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도쿄 일본 수상 관저를 둘러싸고 시위를 했다는 고무적인 소식을 들었다. 이런 직접행동이 일본에서 벌어진다는 게 참 놀라운데 현재 일본의 탈핵운동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듣고 싶다.
일: 원전 재가동 반대 운동으로 일본내각은 에너지 전환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틀 수밖에 없었다. 앞서 말한 대로 현재 일본에서는 “에너지 정책전환에 대한 퍼블릭 코멘트”라는 이름으로 공청회가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어제도(8월 일) 전국의 11개 회의장에서 공청회가 열렸는데 민이렌도 여기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그 11개소에서 시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민의 70%가 “원전제로”를 원하고 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까지의 여론은 지금까지 일본에서 없었던 일이다.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다.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 상에서 바로 그러한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있다. 그리고 7월 17일 집회만 보도되었는데 그 전부터 꾸준히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매주 벌어질 것이다. 매주 금요일 도쿄 수상 관저 앞에서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집회를 하고 있다. 우리도 그 모임의 주최단체 일원으로서 참여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사회운동 진영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다수 집회에 처음 참가하는 일반 시민들이다. 이런 고무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핵마피아’들과 싸워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 오히려 한국에는 20만 명 가까이 모인 도쿄의 집회가 보도되었지만 일본의 언론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신문에 일면 기사로 보도된 그날 가장 진보적이라는 아사히 신문의 일면 기사는 ‘뱀장어 어획 철’이라는 기사였다.
한: 마지막으로 한국의 핵발전소 문제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 하나만 해주었으면 한다.
일: 한국에도 21기 정도의 원전이 있는 것으로 안다. 특히 고리 원전은 35년을 넘은 것으로 안다. 후쿠시마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듯이 노후한 원전은 정말 위험하다. 그리고 고리 원전이 폭발하면 서일본지역도 위험해진다. 이렇게 물리적으로도 핵발전소의 문제는 한일 양국 공동의 문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부터 가장 절실하게 교훈을 받아야 할 나라는 아직 핵사고가 나지 않았지만 위험성을 안고 있는 한국일지 모른다. 부디 이 교훈을 외면하지 않길 바라며 한국과 일본에서 핵발전소가 없어지는 그날까지 함께 싸워나가자.
정리 : 최규진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부장
**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全日本民主醫療機關聯合會(민이렌)은 ‘일하는 사람의 의료기관’으로 출발하여 1961년에 창립됐다. 민이렌은 의사 3천여 명을 포함한 7만 명 이르는 종사자, 병원, 의원, 치과, 약국, 복지시설, 그룹 홈 등을 아우르는 1754개소의 기관이 소속된 진보적 의료조직이다.
** 이 간담회는 이틀째인 8월 5일 히로시마에 있는 민이렌 소속 병원 회의실에서 진행됐으며, 일본 측에서는 후지스에 마모루 민이렌 회장, 코니시 교지 민이렌 피폭사고대책본부장, 카즈토 하라 일본반핵의사회 공동대표 등 민이렌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러 의사 분들이 참여하였다. 4시간 가량 진행된 간담회에서 다양한 문제들을 논의했는데 그 중 핵과 관련된 것만 정리한 것이다.